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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 Jul 10. 2022

브런치 '삼수생' 작가 인사드립니다

어깨 위의 짐 내려놓기

세 번의 불합격 판정을 받고 며칠 전 브런치 작가에 합격했다. 본격적으로 사회인이 되면서 브런치에서 작가로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했건만 이제야 이루어졌다. 솔직히 말해서 허탈했다.
‘이렇게 붙는다고?’


브런치에서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제출해야 하는 글과 양식들이 있다. 사실 이번에 합격한 글들과 이전에 3번이나 떨어진 글들을 비교했을 때, 딱히 큰 차이점이 없다. 작가의 서랍에 있는 글 중 2편 정도는 3번 동안 떨어진 내내 같은 글이었고 1가지 글을 다른 글로 교체하거나 다듬었을 뿐이다. 그런데 붙어버렸다.
이후 300자 정도 채워야 하는 작가 소개, 발행 계획, 등은 지난번보다 더 간결하게 썼다. 이전에는 다 쓰면 700자 정도가 나와 300자를 맞추기 위해 애써서 글을 지워야 했다면 이번에는 200자 정도를 쓰거나 300자를 겨우 맞췄다. 그런데 붙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오죽 허탈했을까.

3번째 떨어졌을 땐, 브런치에서 이미 작가로 활동하는 분에게 여쭈어보았다. 대체 어떤 글을 쓰셔서 합격했냐고 궁금하다고, 혹시 작가의 서랍에 정말 많은 글이 있는지, 또는 글의 주제가 좀 특별했는지 말이다. 왜 나는 3번이나 떨어질까? 그렇게 글로 많은 활동을 하고 상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능력이 없는 것이냐며 하소연을 했다. 그런데 삼수생 생활을 거치고 이번에 합격을 하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브런치에 도전한 작년 내내, 나에게는 힘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갑작스럽게 암 판정을 받으며 인생의 계획이 완전히 뒤틀렸고, 가장 꽃 피워야 할 스물다섯 살을 통째로 날려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썼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을 쓰는 것 밖에 없었다. 몸이 아파 움직이기 힘드니, 앉아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인 ‘글’을 선택한 것이다.


나는 이를 악 물고 글을 썼다. 여러 공모전에 글을 내어 수상도 했고, 여러 매거진에서 기자 활동도 하며 조회수 1위를 달리기도 했다. 수술하기 전, 마취하는 그 순간까지 모두 세세하게 기억하고 깨어나서의 그 느낌을 오롯이 살려 글로 모두 적어내며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콘텐츠로, 글로 써서 나만의 독보적인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리‘라는 다부진 각오를 했었다. 그렇게 투병을 하는 내내 ’ 뒤처지면 안 돼‘라는 마음으로 온몸에 힘을 꽉 주고 살아왔다.

올해도 사실 다른 건 없었다. 몸이 완전히 좋아지기도 전에, 나는 복학을 선택했고 복학하자마자 학교와 현장을 병행하며 뮤직비디오 한 편과 영화 한 편을 찍었고, 여러 사진 촬영 작업까지 합한다면, 그리고 봤던 오디션까지 포함한다면 숨 쉴 틈이 없었다. 그렇게 달렸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내가 늦은 것 같다는 조급함’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현장에 있는 배우, 감독님들은 늘 이렇게 한 소리를 하신다.
‘야 인마! 내가 너 나이면 돌도 씹어 먹었어!’
나는 조금 달랐다. 원하는 길을 그렇게 돌고 돌아 간절하게 왔고, 빨리 결과를 내보이고 싶었다. 자꾸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나에게 나보다 더 무섭고 독한 존재는 없었다. 스스로가 괴물같이 여겨졌다. 멈추지 못하는 폭주하는 기관차. 내가 죽어라 판 이 길이 어쩌면 나의 무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지쳐만 갔다. 


종강 후 바로 본가로 가겠다는 내 계획과 달리 종강 이후에도 약속된 촬영으로 열이 펄펄 끓는 내 몸을 끌고 예정된 다 스케쥴은 소화하고 나서야 본가로 갈 수 있었다.


나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먹고 자고의 반복이었다.

브런치 작가는 그렇게 2주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며 살다가 ‘시간이 남아돌다 못해 넘쳐서’ 지원하게 되었다.
이전에 지원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악을 쓰며 ‘합격해야 해’ 라며 글을 쓰지도 않았고 발간 계획에 대해서 이전과 달리 그리 구체적으로 쓰지도 않았다. 그냥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적었을 뿐이다. 글자 수가 넘쳐서 지우느라 바빴던 이전과 달리 글자 수를 다 채우지 못해 ‘이거 또 떨어지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했었다.

본가에서 쉬면서, 하늘이 참 예뻐서 찍은 풍경


그런데, 작가라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브런치 ‘삼수생’ 작가로서 얻은 건 단순히 작가로서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깨 위에 놓인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앞으로 이곳에는 그렇게 힘이 가득 담기지 않은, 담백하고도 깔끔한 글이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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