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편지(To. Viktor Lowenfeld)
2021년 9월 26일
잠실에서
친애하는 로웬펠드 님,
오늘은 단 한순간도 로웬펠드 님 생각은 안 했습니다.
어제 잠실의 하늘은 '아름답다'라는 인간의 언어가 부실하게만 느껴질 정도로 완벽하게 아름다웠습니다.
로웬펠드 님은 산책을 즐겨하셨나요? 당신의 삶을 들여다보면 산책할 여유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35살 반유대 정책으로 미국으로 건너가고 이후 57세의 나이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기도 하셨고요. <인간을 위한 미술교육>을 쓰시고 말년에 산책도 하시고 연구도 하셨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 저는 자연 속에서 충분히 휴식을 하고 나면 글감도 잘 떠오르고 일도 잘 풀리지만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별 것 아니지만 니 하늘 내 하늘 니 구름 내 구름 구별 없이 사진도 찍고, 다른 이의 사진 앵글에 혹여 방해될까 몸을 숙이게 되죠. '아까 나도 저 하늘, 저 구름 찍었는데' 하며 슬쩍 그의 카메라 각도를 살피기도 하죠. 별의별 동질감을 다 느낀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타인에 대한 아량이 넓어지면 인간관계에 대한 그릇된 감정이 정비됨을 느껴요.
아주 작은, 티끌 같은 '하늘 찍기'로부터 '인간에 대한 이해심'까지 도착하는 것을 보면 로웬펠드 님이 빼곡히 써놓은 338p도 '아동발달단계에 대한 미술교육'으로부터 '인간의 고유성을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지요? 미술교육, 미술, 예술, 4차 산업혁명, 메타버스 등 언어가 만들어내는 불안감이 더 크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사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아닌것일 수 있는데 말이죠.
네 번째 편지에서는 제1장 2절과 3절의 내용을 바탕으로 문답을 시작하겠습니다.
제1장 ㅣ 미술을 통한 인간교육의 의미
1. 창의성을 위한 미술의 중요성
2. 미술을 통한 교육에의 접근방법
3. 미술을 통한 사고의 확장
흔들선 문:
제가 드로잉 워크숍을 진행하다 보면 전체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이끌긴 하지만 참여자 20%는 개별적 동기부여가 필요하겠고 그래서 고민스러울 때가 많아요. 교사가 학급 전체에 동기를 부여할 때, 즉 어떤 특별한 경험이 학급 전원에게 동기로 부여될 때 어린이의 창의성이 억제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 부분을 예시를 들어 설명을 해 주세요.
로웬펠드 답:
아무리 훌륭한 경기라도 관중이 적으면 별로 흥이 나지 않는 것처럼 똑같은 동기가 부여된다 하더라도 상황과 방법이 다르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요.(L.F. McVitty) 참여자 및 어린이에게는 창조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최종 작품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흔들선 답:
아직 이 부분은 명료하게 와닿진 않아요. 앞서 말씀하신 교육의 '유연성'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항상 어린이의 요구가 변하며 이러한 변화하는 요구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이죠.
전체와 개인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것 같아요.
흔들선 문:
어린이가 작업을 시작하려면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하셨는데요. 이러한 '어떤 것'은 가끔 사소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은 항상 어린이 자신과 그 자신의 경험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사고의 폭(the frame of reference)을 넓혀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에 대해 고민이 됩니다.
로웬펠드 답:
사고의 폭을 넓힌다는 것은 미술교육에서나 그 밖의 일반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메리(Mary)가 도화지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메리에게 크게 그리라고 요구하거나 종이 전체를 사용하라고 말하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아요. 커다란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폭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어요.
"메리 스케이트장에 가본 적이 있니?" "너 혼자 스케이트장 전부를 사용할 수 있다면 한쪽 구석에서만 탈 거니?" "이 종이를 스케이트 장이라 생각하고 크레용으로 스케이트를 타보자" 이렇게 접근하면 사고의 폭이 훨씬 확장되죠. 아이의 자유를 존중하면서요.
흔들선 문:
"우리 아이는 비행기만 그려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하셨죠? 저도 부모 참여 드로잉 워크숍을 하면 자주 듣는 말입니다. "-만 그려요"라는 말이요.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하죠 "한 가지를 계속해서 그리면 그것을 완벽하게 그릴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리기 기술도 탁월하게 발전하고요"
로웬펠드 님의 답변은 어떻습니까?
로웬펠드 답:
저는 어린이가 반복적으로 그려서 얻을 수 있는 안정감을 빼앗지 말라고 합니다. 아이가 비행기만 그린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고요. "네 비행기는 어디를 날고 있니?" "또 어디를 착륙할 거니?"라고 말이죠.
특히 어린이가 흥미 있어하는 자신의 문제를 억지로 바꾸게 하거나, 다른 재료로 자꾸 자극시키는 것도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만약 비행기에 대한 집착에 개입을 원한다면 평면 그리기에서 입체적 형태로 확장시켜주거나 하는 거죠. 어린이들은 자유로워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답니다. 바뀌기도 쉽다는 거죠.
흔들선 문:
3절에서 가장 와닿은 문장이 있습니다. 창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는 '그리고 있는 대상에 더욱 민감해지는 것이라는 문장'이요. 이는 창작을 해 본 사람들이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글을 쓰는 일 그림을 그리는 일 또는 영상을 만드는 일, 요리를 하는 일, 청소 잘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 등 위에 말한 '어떤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그 부분에 굉장히 민감해지는 것을 뜻하죠. 사과 한 알을 깎더라도 사과의 울퉁불퉁한 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칼을 돌려 깎죠. 로웬펠드 님이 예시로 제시한 조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로웬펠드 답:
조니는 뒤뜰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무와 그네, 울타리, 메리, 아버지, 로디, 보브를 어디에 그려 넣을지 결정해야 하고 이 모든 대상을 의미 있게 구성해야 합니다. 대상의 위치와도 관계가 있고 색과 모양을 부여하죠. 조니는 사과와 메리의 옷을 관찰하면서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보다 풍부해집니다. 그러면서 독자적으로 그 자신의 형태와 개념을 창조하게 되죠.
'민감해지는 것' 이것이 창의적 정신의 가장 기본 요소라 할 수 있어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벌써 서문과 제1장을 마쳤습니다.
제2장 초등교육에서 창의적인 활동의 중요성, 제3장 교실에서의 미술교육은 조금 깊숙하게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이후 제4장 난화기, 제5장 전 도식기, 제6장 도식기, 제7장 또래 집 단기, 제8장 의사실기, 제9장 결정기, 제10장 청소년기는 제가 가진 드로잉을 공유하며 편지 문답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제가 연구한 바로는 7장부터 청소년기는 합쳐져야 하는 부분이 꽤 보입니다.
제11장 조형요소와 원리, 제12장 미술 영재아 교육, 제13장 미적 인식의 발달과 미적 교육 제14장 각 단계의 요약에는 다양한 참고서적과 함께 병행해서 문답을 이어나갈 예정이고요.
생각보다 분량이 길 것 같지 않습니다. 전체를 모두 담기보다는 2021년 재해석할 수 있는 부분들을 위주로 언급하려 합니다. 이미 많이 연구된 부분들을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러니 로웬펠드 님도 열심히 답변해주십시오. 지치지 마시고요.
참, 최근에는 메타버스(METAVERSE)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 및 NFT(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뜻으로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신을 대표하는 토큰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는데요.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로웬펠드 님보다 4년 늦게 태어난 브루노 무나리 님(1907년-1988년)을 모시고 함께 문답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시각커뮤니케이션 및 미술 교육서 '아트와 놀자', 그림책, 디자이너 등 다방면으로 능하신 분입니다.
세 명의 대화가 순조롭도록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존경과 진심을 담아
흔들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