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로맨스: 3편 러브버라이어티
1. 러브 버라이어티 과잉 공급의 시대!
2. 사랑이 빠진 러브 버라이어티, 1990년대 - 2000년대의 짝짓기 예능
3. <짝>이 가져온 러브 버라이어티의 변화, 리얼한 사랑의 민낯을 밝히다
4. 다시 돌아온 러브 버라이어티에서 엿본 오늘날의 사랑
(1) 토크 패널의 등장: 사랑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낭만적 편집증
(2) 과몰입: 우리도 모두 누군가의 X였다
(3) 솔직한 욕구의 전시: 우리는 무엇에 끌리는가?
5. 러브 버라이어티의 키워드는 #분석 #과몰입 #솔직한 욕구
예능의 다른 이름은 버라이어티 쇼(Variety Show) 입니다. 버라이어티는 변화, 다양성이라는 뜻으로 버라이어티 쇼는 이름에서부터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채로운 내용을 담아내고자 함이 드러나죠. 형태와 내용에 정해진 틀이 없는 버라이어티 쇼는 다른 장르보다 우리 사회를 더 예민하게 캐치해 콘텐츠에 담아냅니다.
러브 버라이어티의 다른 이름은 짝짓기 예능입니다. 사랑을 찾는 사람들이 등장해 짝을 이루거나 이루지 못하는 과정을 담아내죠. 특히 2022년은 짝짓기 예능의 붐이었습니다! 한 해에만 30여 개의 러브 버라이어티가 공개되었죠. ‘사랑 찾기’라는 기본 컨셉트 아래 출연진의 연령, 가치관 등에 변화를 주어 프로그램을 차별화하고 있죠. 그렇다면 다양한 러브 버라이어티에 비춰진 우리 시대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요?
1990년대에 방영한 초기 러브 버라이어티는 ‘맞선형’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정형화된 스튜디오에서 결혼을 전제로 한 남녀의 만남을 그리는 형태였죠.
2000년대 러브 버라이어티는 연예인 출연자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강호동의 천생연분>, <리얼로망스 연애편지> 등이 있는데요. 짝을 이룬 연예인 커플이 커플 게임에 참여하는 모습을 주로 담아냈습니다. 연예인이 출연하기에 만남 그 자체보다는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통해 재미를 주는 데 초점을 두고 있죠.
가상연애 콘텐츠의 문을 연 것은 2008년 방영을 시작한 <우리 결혼했어요>입니다. 연예인 커플이 게임을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가상 결혼 생활을 하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인데요. 이미 정해진 연예인 커플이 가상 부부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짝을 이루는 과정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가상 연예인 커플의 모습에 대리만족한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나 과도한 ‘설정’으로 인해 몰입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청률이 급락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이처럼 2000년대까지의 러브 버라이어티는 사랑에 대한 보수적인 사회 풍토, 사랑 보다는 재미에 초점을 둔 프로그램 설계로 당대의 사랑을 리얼하게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 변화를 가져온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바로 SBS 예능 <짝>입니다.
<짝>은 2010년 신년특집 다큐멘터리로 처음 방영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은 6-7명의 남성, 5명의 여성이 애정촌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는데요, 예능이 아닌 다큐멘터리로 처음 출발한 만큼 ‘리얼리티’를 강조합니다. <짝>은 2014년 종영까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짝>의 영향으로 이후 등장한 러브 버라이어티는 사랑의 리얼함을 담아내는 데 초점을 두기 시작했죠.
2022년은 러브 버라이어티 전성시대였습니다. 쏟아지는 짝짓기 예능 중 큰 인기를 얻은 프로그램을 꼽아보자면 <환승연애2>, <나는솔로>, <솔로지옥2> 가 있는데요. 과연 이 세 프로그램이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개굴)?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난 우리 시대의 사랑의 모습은 어떨까요?
알랭 드 보통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사랑에 빠진 주인공을 ‘모든 것에 의미를 읽어내는 낭만적 편집증 환자’라고 비유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의 작은 행동, 흘리듯이 한 말, 스치듯 마주친 눈빛에 숨은 의미를 읽기 위해 애를 쓰죠. 오늘날의 러브 버라이어티는 그 역할을 토크 패널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토크 패널들은 출연진들의 감정을 되짚어주고 행동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연애 전선을 예측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 역시 한 명의 분석가처럼 토크 패널의 대화에 공감하거나 반박하게 되죠.
‘과몰입’은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감정적으로 크게 관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새로운 표현인데요. <환승연애>는 시청자들의 과몰입을 유발한 대표적인 러브 버라이어티입니다. <환승연애>는 다른 러브 버라이어티와 달리 전애인이 출연합니다. 출연진들은 새로운 사랑에서 느끼는 설렘과 지나간 사랑에서 느끼는 질투심, 애틋함 사이에서 혼란을 겪죠. <환승연애>의 강점은 시청자들이 그 혼란에 완벽히 ‘과몰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모두 누군가의 X였기 때문이죠. 오늘날의 러브 버라이어티는 이야기 진행의 설정은 최소화하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의 배경을 설정함으로서 ‘과몰입러’들을 생산하고 있죠.
<솔로지옥>은 한국판 투핫이라 불리며 인기를 끌었는데요. 화려하고 몸매를 부각하는 옷차림의 남녀가 등장하는 것이 눈에 띄죠. 기존의 한국 러브 버라이어티는 사랑의 감정을 아름답게 보여주는데 집중했다면 <솔로지옥>은 원초적인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전략을 택했죠.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랑의 원초적인 모습을 효과적으로 끌어내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바로 <나는 솔로>인데요. <나는 솔로>는 <짝>을 연출했던 남홍규 PD가 만든 러브 버라이어티입니다. 솔로나라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출연자들은 영숙, 영수, 정숙, 옥순, 영철 등 주어진 이름으로 불리며 생활합니다. 결국 누가 인기를 얻는 가를 살펴보면 사람들의 솔직한 욕구가 엿보입니다. 자기소개를 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첫 인상 투표에선 여성과 남성 모두 수려한 외모의 출연자가 몰표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기소개 후 여성의 경우 여전히 뛰어난 외모의 출연자가 인기를 얻는 반면, 남성의 경우 직업과 경제력이 뛰어난 출연자가 새롭게 인기를 얻죠. <나는 솔로>는 이 과정을 솔직하게 전시하고 각 출연진이 자신의 선택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인터뷰를 통해 설명합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러브 버라이어티는 좀 더 솔직하게 사랑에 담긴 우리의 욕구를 드러냅니다 (위잉).
요약해보면 오늘날의 러브 버라이어티는 과거에 비해 1) 관찰과 분석의 형태를 하고, 2) 시청자의 과몰입을 유발하고, 3) 솔직한 욕구를 사실적으로 드러냅니다. <하트시그널>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Lu(2020)의 연구에 따르면 러브 버라이어티는 시청자들의 관음증적인 욕망과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데 특화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랑의 과정을 샅샅이 살펴보고 싶은 욕망은 일반적인 욕구라는 것이죠.
러브 버라이어티의 대가 남홍규 PD는 <짝>과 <나는 솔로>가 ‘100년 후 인류의 사랑과 짝을 만들어가는 방식에 대하여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자료’로 여겨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힙니다. 이는 드라마와 웹툰과는 다른 사랑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특화된 러브 버라이어티만의 강점을 보이는 것 아닐까요?
(위잉) 지난번 살펴본 웹툰 속 로맨스에서도 솔직한 욕구가 담겨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는데요! 웹툰에서 드러나는 욕망과 러브 버라이어티에서 드러나는 욕망이 조금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개굴) 연애도 결혼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는 요즘입니다. 그 흐름과 반대되게 많은 러브 버라이어티가 공개되고 또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이 두 대치되는 현상은 어떻게 관련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