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IP의 흥망성쇠 : 3편 장수하는 IP 특성 살펴보기
1. 인기있는 IP의 평균 나이는? 무려 39.2세!
2. IP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은?
1) 헬로키티와 뿌까 : 상품 디자인에 최적화된 캐릭터 + 글로벌 진출!
2) 포켓몬스터와 메이플스토리 : 꾸준한 업데이트 + 낮은 진입장벽!
3)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 플랫폼을 다양하게!
3. 정리해보면 : IP 수명 연장의 비법
4. 이번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 아직 우리 IP의 수명은 짧다..!
시리즈 <우리 IP의 흥망성쇠>의 1편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을 휩쓸었던 우리 IP를 살펴보았고 2편에서는 찬란했던 우리의 IP가 사라진 이유를 분석해보았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생태계의 전환이 이뤄지던 혼란기를 잘 이겨낸 IP도 존재하죠. 이번 콘텐츠에서는 20년 이상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 장수 IP의 특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콘텐츠 산업에서 IP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기업이 확보한 IP의 양과 질이 곧 기업의 경쟁력으로 직결되죠! 하나의 IP는 개별 콘텐츠로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됩니다. 앞선 스토리에서 설명했듯이 소설 해리포터가 시리즈 영화, 스핀오프 영화로 제작되는 것을 넘어 각종 굿즈와 게임으로 제작되는 것이죠. 이용자는 하나의 IP에서 출발한 콘텐츠를 잇달아 소비하며 개별 미디어가 아닌 IP 단위로 애정을 쌓아갑니다. 소설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독자가 영화를 챙겨보고, 마법 지팡이를 구매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며 해리포터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죠. 따라서 흥행한 IP를 성공적으로 사업화할 경우 기업은 n개의 콘텐츠와 무수히 많은 팬들을 확보할 수 있죠!
IP 사업화에 성공할 경우 IP의 수명은 놀라울 정도로 길어집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보고서에 따르면 흥행한 글로벌 IP 20건의 평균 IP 지속기간*은 39.2년이라고 합니다. 10대 청소년과 50대 중장년이 동일한 콘텐츠를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것이죠!
*IP 지속기간: 1차 저작물이 제작된 후부터 가장 최신의 저작물이 제작된 후까지의 기간
그러나 모든 IP가 장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40년 이상 수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각종 생태계의 변화와 혼란을 IP가 견뎌내고 더 나아가 이를 기회 삼아 성장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IP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2000년대 초 생태계 전환기를 극복하고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로컬/글로벌 IP를 통해 그 비법을 알아봤습니다!
먼저 헬로키티입니다. 헬로키티는 산리오에서 1974년 개발한 고양이 캐릭터인데요. 헬로키티는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이 아닌 동전지갑의 형태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산리오는 작은 선물로 큰 웃음을 준다는 철학 아래 슬리퍼, 찻잔과 같은 일상용품에 귀여움을 더해 판매했습니다. 귀여움을 더하는 방식으로 산리오가 택한 건 직접 개발한 캐릭터를 그려넣는 것이었죠. 헬로키티도 이 전략의 일환으로 처음부터 상품 디자인에 최적화된 형태로 개발되었죠. 헬로키티는 일본의 주부, 여대생, 여자 초등생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다양한 연령층의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상품이 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영국 출신, A형, 착하고 그랜드 피아노를 즐기는 부유한 여자 고양이라는 설정이 추가되었죠. 이렇게 1970년대 중반 키티는 일본을 장악했습니다!
1970년대 세상에 등장한 키티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는 건 일본을 넘어 세계를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1976년 산리오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매장을 열고 헬로키티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애니메이션과 같은 콘텐츠가 없는 헬로키티를 알리기 위해 산리오는 고객의 집에 직접 방문해 물건을 팔기 시작했죠. 그러나 만족스러운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산리오는 여기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발 나아가는 전략을 택합니다. 미국에 디자인 팀을 꾸려 일본 상품을 미국에서 파는 방식이 아니라 미국 맞춤형 상품을 개발했고 미국 전역에 산리오 기프트 게이트 매장을 열었죠! 그 결과 1980년대 산리오 기프트 게이트는 아이들의 천국으로 여겨졌죠.
이후 헬로키티가 인기를 이어가도록 도운 건 산리오만이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 부터 산리오는 헬로키티 라이선싱 사업을 본격화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기업들은 온갖 헬로키티 상품들을 내놓았고 더불어 패리스 힐튼, 레이디 가가, 케이티 페리 등 유명인사가 헬로키티 아이템을 애용하며 헬로키티 상품은 꾸준히 인기를 끌었죠.
국산 IP 뿌까도 헬로키티와 비슷한 전략으로 인기를 이어오고 있죠! 뿌까는 VOOZ사에서 2000년 제작한 캐릭터입니다. 2000년대 등장한 다른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플래시 기반의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등장했죠. 모바일 생태계로의 전환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 플래시 기반 IP들과 달리 뿌까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꾸준히 한국 캐릭터 상품 수출액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처음 자료를 접하고 놀랐던 건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 이후 인기가 줄어든 것과 달리 외국에서는 뿌까가 여전히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었죠. (개굴)
뿌까의 전략은 헬로키티의 전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한국에서 플래시 콘텐츠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2000년대 초 뿌까는 글로벌 시장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2003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워너 브라더스와 같은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고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죠. 뿌까는 애니메이션 보다는 캐릭터 자체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각종 패션 아이템에 뿌까를 그려넣었고 자기 감정에 솔직당당한 뿌까 캐릭터는 각종 패션 브랜드와 어우러져 여성 고객들을 사로잡았죠.
이처럼 장수하는 캐릭터 IP는 다양한 상품으로 제작될 수 있도록 상품화에 최적화된 형태로 개발되며, 로컬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장수 IP라면 포켓몬스터와 메이플스토리를 빼놓을 수 없죠! 포켓몬스터는 1996년에, 메이플스토리는 2003년에 발매된 게임인데요. 이 두 IP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용자에게 사랑받고 있는 비결을 저희는 꾸준한 업데이트와 낮은 진입장벽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먼저 꾸준한 업데이트를 살펴보면 포켓몬스터와 메이플스토리 모두 부지런히 후속 게임과 게임 패치를 제공해왔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포켓몬스터는 1996년 1세대 포켓몬스터 레드·그린을 시작으로 1-2년 주기로 꾸준히 후속 시리즈 게임을 공개했는데요. 가장 최신 게임인 2022년 9세대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까지 꾸준히 새로운 포켓몬스터를 공개했을 뿐 아니라 포켓몬의 능력치를 계산하는 방식, 진화 단계, 주요 플레이 지역 등에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메이플스토리 역시 꾸준히 게임을 업데이트 해왔습니다. 게임 패치를 통해 새로운 직업군, 몬스터, 마을 등을 추가해 게임 속 세상을 확장해 왔습니다. 콘솔 게임인 포켓몬스터는 새로운 후속 게임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PC 게임인 포켓몬스터는 패치 방식으로 꾸준히 IP의 즐길거리를 늘려온 것이죠. (위잉)
두 게임의 강점은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귀여운 몬스터가 가득 등장하며 이들을 잡는 방식도 과도하게 잔인하거나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더불어 일정 수준까지는 다른 게임에 비해 비교적 어렵지 않게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플레이의 진입장벽도 낮은 편이죠. 물론 포켓몬스터의 경우 몬스터 타입에 따른 상성을 알고 플레이하는 것, 메이플스토리의 경우 일정 레벨 이상에 도달한 후 경험치를 쌓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단계까지 이르지 않고도 단순한 조작으로 게임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죠!
이처럼 장수하는 게임 IP는 오랫동안 게임을 즐겨 온 이용자에게 꾸준히 새로운 재미를 제공하되, 새롭게 게임을 즐기고자 하는 이용자도 어렵지 않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해 이용자층을 넓고 깊게 유지한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2000년대 초 우리를 즐겁게 한 플래시 애니메이션 중 살아남은 IP를 찾지 못했습니다. 뿌까처럼 캐릭터 IP로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는 있지만 플래시 애니메이션 자체가 인기를 유지하는 경우는 보이지 않더라구요. 2000년대 초 인기를 끈 플래시 콘텐츠는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2020년을 끝으로 어도비 플래시가 서비스를 종료하며 더이상 웹브라우저에서 즐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특정 소프트웨어로만 구현이 가능하거나 제한적인 디바이스에서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해당 소프트웨어나 디바이스에 의해 수명이 결정되어 버리죠. 따라서 IP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선 다양한 플랫폼에서 IP를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표적으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게 된 케이스가 있습니다. 1980년대부터 2010년 중반까지 스튜디오 지브리는 명작 애니메이션을 선보였습니다. 온라인으로 콘텐츠를 공개하는 것을 꺼려하던 지브리는 2020년 큰 결정을 내립니다. 넷플릭스에 21편 지브리 콘텐츠를 공급하기로 결정한 것인데요. 콘텐츠 소비에 있어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수하던 지브리가 영상 유통 플랫폼을 다변화하기로 결정한 것은 IP를 소비하는 창구를 다양하게 마련하지 않으면 IP의 명맥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것을 보이는 듯 합니다.
캐릭터 IP를 통해선 글로벌 시장 공략과 용이한 상품 디자인화의 중요성을,
게임 IP를 통해선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한 세계관 확장과 낮은 진입장벽을 통한 이용자층 확대의 중요성을,
애니메이션 IP를 통해선 콘텐츠 제공 플랫폼 다변화의 중요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종합해보면 아래 그림과 같이 4가지 IP 수명 늘리는 법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방법만 따르면 IP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IP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선 IP 자체가 담고 있는 이야기도, IP를 향유하는 이용자층도, IP를 제공하는 방식도 보다 깊어지고 넓어져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죠!
<우리 IP의 흥망성쇠> 시리즈를 통해 제 초등 시절을 빛내주었던 IP들을 살펴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다만 평균 약 40년의 수명을 이어가는 글로벌 IP들과 달리 우리 IP는 위기를 이겨내는 힘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우리 IP의 평균 지속기간은 8년이라고 합니다. 2000년대 초 등장한 인기 IP 중 다수가 2008-2010년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기까지도 약 8년에서 10년이 소요되었죠. 우리 IP는 트렌디하고 다채롭지만 단단하지 못합니다. 흥행한 개별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넘어 수많은 흥행 콘텐츠의 씨앗인 IP가 우리나라에서 보다 잘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개굴) 뿌까가 해외에서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이번 시리즈를 작성하며 처음 알았습니다..! 해외팬들을 사로잡은 뿌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과연 국내팬들도 그 매력에 공감할까요?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IP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잉) 장수하는 IP로 메이플스토리를 소개하기는 했으나 메이플스토리의 최근 행보에 대해선 한 명의 플레이어로서 아쉬움이 큽니다. 게임 IP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선 Pay to Win 방식의 게임과금 시스템에 의존하는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