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자 마자 임신해서 애낳고 키우느라 문화생활하기 참 힘들었다. 나는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것에 관심을 두기 힘든 멀티가 안되는 사람이라, 아이들이 어릴때는(지금도 어리지만) 밖에 나가서 여유있게 차마시고 영화보는건 상상도 못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상상만 했다.
보통 그렇다. 다 늘어진 옷이나 헐렁한 남편 티셔츠를 입고 하루종일 집에 붙어있다가 친구들이랑 약속 잡고 카페 가고 영화라도 볼라치면
‘에효 씻기 귀찮다’, ‘입고 나갈 옷이 없네’ 하며 머뭇거리다가 널부러져있는 집안꼴을 보고는 포기하고 만다.
‘청소나 해야지.’
하지만 또 다 알것이다. 가끔이지만 밖에 나가서 콧구멍에 바람 넣고 집에 돌아온 날은 나도 모르게 설거지 하다가도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는 걸. 그저 시간낭비 일 것 같은 시간들이 오히려 찌들었던 내 일상을 리프레쉬 시켜준다.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한 '철학하는 엄마'라는 에세이를 통해 영화 '툴리(tully)'를 알게 되었다.
올해 들어서는 유난히 엄마의 삶에 대해 개인적으로 묵상하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 고백부부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소름끼치도록 현실적인 엄마의 인생에 공감 했고,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나의 지금과 미래를 보았다. 그리고 '툴리(tully)'를 보고선 위로를 받았다.
독박육아 중 계획밖의 셋째를 임신함으로 자신을 쓰레기를 싣고 다니는 배로 여기는 엄마. 독특한 아들로 인해 학교에서 재적을 다하는 과정 가운데 나타나는 그녀의 분노를 보면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저녁 시간 아이들에게 냉동 피자를 던져주고 모든 진이 다 빠져 앉아 있는 그녀에게 아들이 물을 쏟아버리고 말자
그자리에서 웃통을 벗어버리는데, 37살의 나이지만 처질대로 처진 가슴과 뱃살이 실랄하게 보여지는 그 장면에서
딸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Mom... what's wrong with your body?"
허탈함이 밀려왔다.
첫째를 낳으면서 한가지 마음속으로 다짐한 적이 있었다.
부유한 엄마는 되지는 못할지라도 마음이 가난한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아이에게 찌들어있는 모습이 아닌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엄마가 되어야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할 수록, 나의 시간과 정성을 아이에게 모두 쏟을 수록 내 마음은 가난해지고, 내 모습은 찌들릴대로 찌들려 있었다.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은 오히려 아이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서 아이들을 바라보니,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사치로 여기지 않고 스스로에게 투자할 수록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마음의 환기가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나 스스로 "나는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게 최선이야" 하며, 나 스스로의 한계를 그어 놓고 지낸 시간들이 많았던 거 같다.
툴리의 주인공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인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돌봐야해. 내가 모든 것을 다해야해. 하지만 결국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바닥을 보게 된 엄마는 야간보모를 구하게 되었고, 그녀는 일상의 여유를 되찾는 듯 했다.
(더 이상은 스포이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
영화 결말의 반전은 나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한 마디.
"나도 우리를 사랑해"
그 한 마디에서 그녀의 가족을 향한 희생과 헌신 그리고 사랑이 느껴졌고 동시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가족이 있기에 희망도 있었다.
요즘 여기 저기서 임신과 출산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러면 나의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과 절대로 잊고 싶지 않은 행복했던 순간이 공존한다. 분명한 것은 나는 그 시간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깨닫고 성장했다는 것.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타인이 되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부모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는 바로 "타인이 된 나"이기 때문이다.
나지만 나는 아닌 존재.
나로부터 태어난 또 다른 나
- '철학하는 엄마' 중...
세계여행을 꿈꾸던 내가 20평도 안되는 집에서 우주의 신비인 새생명을 돌보며, 새로운 차원의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많이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아름답고 신비하기도한 아이러니와 역설이 가득한 순간들.
"육아"는 아이를 기른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육아" 즉, 내가 자라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 같다.
쉽지 않은 이 순간들을 82년생 김지영처럼, 고백 부부의 마진주처럼 그리고 툴리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진심으로 마음 다해 응원한다. 진심으로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