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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 May 02. 2022

나는 나로서 충분하니까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 ‘유진’이라는 이름이 나 포함 5명이었던 적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유진아’ 하고 불렀을 때 고개를 치켜들어 대답하는 다섯명의 유진이들. 그 때 생각했다. “내 이름은 참 흔한 이름이구나.” 어느 순간부터 반 친구들은 헷갈리지 않게 나를 ‘홍유(진)’ 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후 나는 ‘유진’이라는 이름보다 ‘홍유’라는 별명이 더 내 이름 같이 익숙해졌다. 심지어 담임선생님과 엄마까지 나를 그렇게 부를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그 별명이 마음에 쏙 들었다. 김유진, 이유진, 최유진 등등 어떻게 보면 흔한 성을 가진 유진이들 중 ‘홍’이라는 성은 나에게 특별함을 더 해 주는 것 같았다. 뭐랄까 그냥 짜장면이 아니라 삼선짜장이나 간짜장 같았고 그냥 된장찌개가 아니라 꽃게 된장찌개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특별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스스로가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 아빠가 마치 서로 퉁 치듯이 나 한 번, 너 한 번 집을 가출했다 들어왔다 반복하던 어린 시절, 나는 스스로 뿌리가 뽑힌 채 물에 둥둥- 표류하는 썩은 나무줄기 같기도 하고 힘없이 밀려다니는 먼지 같이 여겨졌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존재라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누군가 나를 발견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내가 반짝반짝 빛나면 누군가는 나를 알아 봐주지 않을까? 나를 가치 있다 여겨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선생님은 책을 안 가져온 친구의 머리를 책 모서리로 때리면서 “너네 집 잘 사냐? 돈 많아?” 하고 물었다. 돈 많은 집 친구와 대놓고 차별하던 선생님을 보고 나의 현실이 그리고 다가올 미래가 암담하게만 느껴졌다. 나의 가정은 화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난했다. 친구들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들이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사치였었고 평범이라는 그 기준마저 나에겐 높이 쌓인 뜀틀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뜀틀을 뛰어넘게 해주는 디딤대 같은 존재가 있었는데, 바로 음악이었다. 음악을 들을 때면, 내가 노래를 할 때면, 그 뜀틀은 더 이상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것만 같았다.  


 음악은 나에게 있어 ‘홍유진’의 ‘홍’과 같은 존재였다. 시립합창단, 밴드부, 합창대회, 학교축제에서 틈만 나면 노래를 불렀다. 나의 학교 친구들은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또 잘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았고 특별해지는 느낌이었다. 밴드부 정기 연주회 때 자우림의 ‘일탈’을 부르며 관객들을 다 기립하게 만들었던 열정이 나를 살게 했고, 교회 생명의 축제에서 ‘밀알’을 부르며 사람들을 울게 만들었던 간절함이 나를 살게 했다.  


 그렇게 음악과 함께라면 죽을 때 까지 행복할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흘러 나는 지금 음악과는 상관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음악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것 마냥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흔하고 흔한 ‘유진’이 되어버린 것 만 같아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언제든지 예전과 다른 새로운 ‘홍’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나를 반짝거리게 해주는 것은 꼭 한가지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배우자가 되기도 하고, 나의 자녀들이 되기도 하고 또 작가라는 새로운 꿈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불리는 호칭에 상관없이 나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고 가치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나의 존재를 사랑한다. 딸, 아내 그리고 엄마 등 나를 수식하는 수많은 이름과 나를 둘러싼 상황과 환경들 속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로운 내가 되길 바란다. 나는 나로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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