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필 Nov 08. 2024

임산부 좌석에 숨은 2가지 진실

배려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예비 아빠가 되고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임산부 배려석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매일 아침, 신분당선 열차를 타고 출근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배려'라는 단어의 무게를 생각한다.


배려란 무엇인가.

사전은 말한다.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정의는 왜 이리 얇게만 느껴질까.

마치, 칠흑같이 어둡고 깊은 바다의 표면만을 살짝 스치는 것 같다.

볼록한 배를 쓸어 만지며 아내가 들려주는 지하철 풍경.

분홍빛 임산부 배려석에 관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먼저 비워주고, 누군가는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고 한다.

특히 중년 여성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 때, 임산부와 마주하는 순간의 정적이 불편하다고.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나도 화가 났다.


'왜 모른 체하며 비켜주지 않는 거야.'

'배려가 그리 어려운 건가?'

'내가 함께 있었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생각이 깊어질수록 다른 시선들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각자의 그릇에 담긴 만큼만 나눌 수 있다.

누군가의 그릇은 쟁반처럼 크고, 누군가의 그릇은 간장 종지처럼 작다.

어떤 날은 그릇이 넘치고, 어떤 날은 바닥을 보일 때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이해해야 할 첫 번째 진실이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도 각자의 사연이 있다.

허리가 아프거나, 무릎이 좋지 않거나 어쩌면 그날 하루가 유난히 힘들고 지쳤을지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바닥났을 수도 있다.

우리는 쉽게 판단하고, 쉽게 비난하지만,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일까?


또 다른 면도 보인다.

자리에 앉기 위해 누군가를 일으켜 세워야 하는 임산부의 마음은 편안할까.

배려를 '받는다'는 것 역시 때로는 무거운 짐이 된다.

자리를 양보받는 행위를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는 임산부는 많지 않다.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불편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주는 미안함과 부담감.

이것이 우리가 이해해야 할 두 번째 진실이다.


배려는 물결과도 같다.

누군가의 마음에서 시작된 작은 파동이 다른 이의 마음에 닿고, 그 마음은 또 다른 마음을 움직인다.

하지만 그 물결이 언제나 부드럽고 기분 좋지는 않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거북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진정한 배려는 무엇일까?

단순히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를 넘어, 서로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여유로움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고,

나의 불편함이 누군가에게는 안도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때로는 비워두는 것이, 때로는 채워두는 것이 더 나은 배려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


매일 저녁,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그릇을 안고 살아간다.

깊이도, 너비도 모두 다른 그릇들.

때로는 넘치고, 때로는 비어 있는 그릇들.

그 그릇의 크기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그릇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배려가 아닐까?


오늘도 임신한 아내가 마주하는 임산부 배려석은 우리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어떤 배려가 자리 잡고 있는지.

당신의 그릇에는 얼마만큼의 여유가 담겨 있는지를.




매거진의 이전글 번아웃에 무너지지 않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