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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바비앙 Feb 02. 2021

잘하는 건 없습니다.

다시 시작

잘하는 게 무엇일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아무리 떠올려도 생각나는 게 없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다 못하는 사람인가? 그건 또 아닌 거 같은데....

어릴 적 잘한다는 말을 듣기보다는 '열심히 한다.', '바르다.', '착하다.' 이런 이야기들만 들어 본 것 같다.

바로 밑에 동생은 머리가 좋았다. 공부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는데 밤새 불 켜놓고 공부한 나보다 성적이 좋았고, 오감이 뛰어나 예체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농땡이 대장이었다. 3살 터울의 우리는 서로에게 곧 잘 비교의 대상이었다.


'한놈은 죽어라 해도 성과가 별로이고, 한놈은 조금만 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낳겠구먼...’


어릴 적 엄마의 단골 멘트였다. 가끔은 동생의 뛰어남이 부럽긴 했지만 남도 아닌 동생이니, 시기나 질투 따위를 해 본 적은 없다. 잘하는 게 없는 나는 열심히라도 해야 그나마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그냥저냥인 사람이다.






 작년 온라인 세상에 좀 더 깊숙이 침투해 보겠다고 시작한 SNS 세계에서 처절한 패배감을 맛보았다.

동생과의 비교는 말도 꺼내지 못할 상황이다. 늘 잘한다고 생각했던 동생도 이 세계에 들어오면 벌거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릴 것 같다는 생각 들었다.(다행인지 동생은 온라인 세상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은 오죽할까.... 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지만 당시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무엇이든 1등만이 살아남고 기억되는 세상이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예체능 쪽은 그 현상이 더욱 심하다. 무슨 대회에서 얼마나 큰 상을 몇 번 탔는지, 학교는 어딜 나왔는지, 유학은 다녀왔는지 등등

흔히 말하는 본캐에서 조차도 2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것 외에는 별 달리 내세울 게 없는 나.

이제는 젊음의 패기로 밀어붙인다는 말조차도 멀어져 버린 중년의 아줌마.

취미활동이라도 여태까지 지키고 있었으면 부캐라는 것이라도 가질 수 있었을까?

이 모든 사실은 나를 철저하게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동안 너는 무엇을 하고 살았냐는 비난과 독설도

서슴없이 퍼부으며 한순간에 시궁창 속으로 끌고 가버렸다.






잘하는 게 없다면 하면 잘하겠다 싶은 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모르겠다고 했다.

나란 사람은 여태 무엇을 해도 잘하는 게 없었던 사람이었으니 이제 와서 그 무엇을 한다고 잘한다는 소리를 듣겠는가 싶은 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럼 결과와 상관없이 그냥 마음이 끌리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이 들어온다.


요리, 베이킹, 사진, 외국어.....


"하고 싶은 거 많으시네요. 하나씩 시작해 보세요. 잘하든지 못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일단 관심이 가는 게 있고, 상황이 허락해 준다면 그냥 시작해 보세요."이 말에 마음이 조금 흔들린다.

'그냥 한번 해 볼까?'


능력의 유무를 떠나 하겠다고 시작하면 웬만해서 중도포기는 없다. 늘 그랬듯 나는 열심히 해야 평균에 겨우 미치는 사람이니까... 굳이 내세우자면 끝까지 과정을 마치는 건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때마침 코로나로 대부분의 강의들이 온라인 세상으로 들어왔다. 강사님들도 처음 시작이니 바깥세상에서 몸값이 높으셨던 분들도 처음부터 강의료를 다 받을 수 없으셨나 보다. 내겐 기회였다. 시간이 안 맞아서 들을 수 없는 강의, 높은 수강료에 선뜻 시작할 수 없었던 강의 등, 그동안 내가 안된다고 지나쳐버린 것들을 시작해 볼 수 있었다.

시작했으니 나의 최대 강점을 발휘할 시간이다.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땅굴까지 파고 들어가 어둠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를 잊고 싶어서였다. 잘할 수 있는 거라고는 성실하게 하는 것뿐인 내가 못하겠다고 포기 선언을 하면 나는 영영 땅굴을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나마 스스로에게 위안이었던 '열심히 했잖아.'란 말조차 해 줄 수 없으면 내 인생이 슬퍼지니까 잠을 안 자면서 까지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고 싶은 건 웬만큼 다 해본 지난 일 년이었다. 직접 해보니 계속하고 싶다는 것과  생각과 달리 여기까지라고 선을 그을 수 있는.. 더 이상 못할 것 같은 일에는 깨끗하게 인정하고 물러설 줄 아는 판단의 눈도 어느 정도는 장착된 것 같다.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고 했던가? 비록 몸과 마음은 너무 힘들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본캐만큼  아니!, 부캐로 인생역전을 하는 사람들도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 좋아하는 것을 그냥 계속했다는 사실이다. 누구에게 인정받으려고 했던 게 아니라 스스로 좋으니까 그냥 쭈~~ 욱!!

여태 그런 것 하나 모르고 산 인생이지만 더는 좌절하고 싶지 않다. 계속해 보고 싶은 일도 생겼으니 나의 주특기 '성실하게'만 버리지 않고 가져가면 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누가 아는가 나 역시 몇 년 뒤 부캐로 경력 전환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될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벌려놓은 바람에 그것들을 다 해내려고 하다 보니 과부하도 걸렸다. 두서없이 많은 것을 벌렸다면 올해는 선택과 집중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가지고 가고 있는 나의 일과 새로운 것을 찾고 싶은 일 사이에서 현명한 균형을 맞춰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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