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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바비앙 Feb 03. 2021

금쪽같은 남의 새끼

일상의 더하기 빼기

내 사업이라고 시작한 지 올해로 21년 차, 스무 살 때부터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으니 그 기간까지 생각해보면 시간의 흐름에 깜짝 놀라곤 한다. 세월만큼 많은 아이들, 엄마들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은 좋은 학부모님에 착하고 순수한 아이들을 만났으니 긴긴 세월을 무던하게 걸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의 학부모도 만나게 된다. 어릴 적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부모님들이라 그저 섭섭하기만 했으나, 이제 웬만해서는 내가 그들보다 연장자가 되다 보니, 못마땅 한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나이 먹었다고 유세를 떠느냐고,  사교육 선생도 선생이라고 꼰대 질이냐 비웃어도 내 할 말은 하고 싶었으나 최대 갑인 학부모 앞에서 나는 그저 꼬리를 내리는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또래들 사이에서 미움받는 아이들의 유형은 정해져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 예쁜 척, 잘난 척하면 바로 아웃이다. 어른들처럼 속내를 감추고 맞장구쳐 주지 못하는 순수한 아이들은 그런 행동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다. 내가 봐도 저렇게 척을 하면 아이들이 사이에서 미움받겠다 싶은 아이가 있다. 또래는 물론이고 조금 더 윗 학년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한테 놀림감의 타깃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날도 그랬다. 평상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 공주야! '를 대놓고 외치는 A양 들어왔다. 그날따라 그 시간에 남자아이들만 있었다. 잠자코 듣자 하니 뭔가 새로운 물건을 샀는지 자랑 중이다. 아이들이 보여 달라고 모여드는데 안 된다고 감추게, 저러다 또 시비가 붙겠다 싶었다. 쌍방에게 주의를 주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가 잠시 볼일이 있어 아래층에 총알같이 내려갔다 왔다. 역시나 잠시도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녀석들이다. 그 찰나의 시간에 남자아이 하나가 발을 날렸나 보다. A양이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지만 A양은  집에 가서 분명히 이야기할 테고 엄마는 득달같이 달려올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평상시 조그마한 일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엄마다.


때린 아이는  우리 학원의 최고 순둥이다. 그런 녀석이 발을 날렸을 때는 오죽이나 화가 났을까 싶었다. 이유를 막론하고 네가 먼저, 그것도 여학생 얼굴을 발로 찼으니 사과하라고 했다. 얌전한 아이니 별 저항 없이 바로 사과를 한다.


예상대로  A양 엄마에게 득달같이 전화가 왔다. 그 아이 집 전화번호를 달라고 막무가내다.  속으로는 당신 딸이 밖에서 어떤지 아느냐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다. 그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서 죄송하다고 때린 아이 어머니께는 잘 말씀드리겠고 몇 번이고 사과를 드렸다.


“선생님. 그런데 그때 남자아이들 밖에 없었다면서요. 어떻게 여자아이 혼자 있는데 자리를 비우실 수가 있어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 자식만 하야디 하얀 백로이고, 남의 자식은 다 까마귀라는 것인가...


“어머니, 저도 딸 가진 엄마 입장에서 무엇이 걱정되신 건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같은 아파트 이웃, 그래 봤자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인데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앞으로 좀 더 주의할게요.”


세상에 이렇게 경우가 없는 사람도 있는가 싶었다.

요즘 엄마들  배울만큼 배운 교양 있는 엄마들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자식 한대 얻어 맞고 왔다고 (티도 안 난다.) 저렇게 이성을 잃을 수 있는 것인가?

아이 말만 듣고 전후 사정을 물어보러 전화하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내 자식만 당했다는 생각에 앞뒤 안 가리고 흥분하는 게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학생들이 무슨 범죄 아이들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 부들부들 떨렸고,  그 앞에서 입바른 소리 한마디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한 달 뒤 등록 날짜가 되자 그만두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번에 그 일 때문에 그런 건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말란다. 나도 붙잡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이 보내주셔서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도 없이 알겠다고 했다. 그것만이 내 구겨진 자존심을 다시 펴는 유일한 반격이었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나이 어린 일부의 아이들이 못 된 짓을 한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하는 세상이다. 그렇게 방치되고 낙인찍힌 아이들이 커서 나쁜 어른이 될 테니 아이를 반듯하게 잘 카워야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 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요즘 자녀의 수가 현저히 적다 보니 정말 애지중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끼고 키운다. 내 자식 내가 귀하게 키우겠다는 것에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내 자식이 금쪽같은 내 새끼이면

남의 자식도 금쪽같은 새끼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의 자식들을 귀하게 여기며, 사랑으로 키운다면 이다음에 흉흉한 어른으로 크는 일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보는 날이다.



덧붙이면 때린 아이의 엄마가 전화를 주셨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이야기하는데 제가 그 아이 엄마한테 사과 전화드릴게요.”

참으로 대조되는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는 모습을 다시 한번 가슴에 깊이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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