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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바비앙 Feb 04. 2021

제가 독립투사는 아닙니다만...

일상의 더하기 빼기

작아도 사업은 사업인데 내 일을 하는 동안 고객(아이들)이 없을까 봐 걱정해 본 적이 거의, 아니 한 번도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늘 입학 대기자가 넘쳐났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들어오겠다는 아이들을 못 받고 돌려보내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작은 공간에서 혼자 가르치고 있으니 당연히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다. 간혹 여건이 되지 않는데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에 꾸역꾸역 입학시켰다가 어쩔 수 없이 수업의 질을 떨어뜨리는 선생님들을 보았다. 그때마다 원칙을 지키자는 나의 소신을  굽히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내 할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그 오랜 세월 동안 광고 한 번 없이 입소문으로만 유지가 가능했다.  말이 사업이지 공무원이나 별 다름이 없었던 나의 일이다.


교습소임에도 아이들 수가 제법 많았다. 주변에 계산이 좀 빠르신 분 들은 돈이 될 때 팔고 크게 확장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시나리오다. 내 일은 내 눈으로, 내 손으로 처리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인데 크게 확장해서 남의 도움을 받게 되면 자연스레 내가 챙기지 못하는 일이 생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판단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돈으로 사고 판다는 생각이 들자 그런 일은 죽어도 못 할 것 같았다.  너 혼자만 깨끗한 척하냐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렇더라는 말이다.






시장의 변화라는 것이 몇 년 전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디 할 것 없이 다 비싸지만 그 당시 주변보다 좀 비싼 아파트이기도 하고, 연식이 좀 되다 보니 내 고객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상황을 물어볼 곳이 딱히 없어 아래층 부동산 사장님께 여쭤 봤더니 까막눈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예감이 얼추 맞긴 했다. 조금만 가면 새로운 신도시가 형성되고 있는 중이니 젊은 층은 아무래도 신도시를 선호하기에 그쪽으로의  이동이 더 많다고 했다. 상황은 대충 파악이 되었으니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만 남았다. 그 무렵 아이는 학교를 갔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격하게 엄마를 찾고 있었다. 두 가지 고민이 나를 괴롭혔다. 코로나로 넉다운이 된 건 사 실지만 실상 나의 방황은 그전부터 시작인 셈이었다.




한 곳에 오래 있다 보니 시작 무렵 초등학교 4,5 학년쯤으로 만났던 아이들은 어느새 서른을 넘겼다. 아직 살고 있는 아이들이 있으니 오며 가며 한 번씩 들여다보고 간다. 홀로 조기 유학을 떠났던 아이도 방학이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피아노를 정말 치기 싫어했는데 나와 함께한 후 상황이 달라져 음악으로 진로를 정한 아이도 있었다. 늦깎이 대학생 제자는 벌써 초등 입학을 앞둔 학부모로 아이 손을 잡고 내게 다시 오기도 한다. 아빠의 주재원 발령으로 해외에 나갔다가 대학생이 되어 돌아온 아이는 옛 동네가 생각나 들렀다가 내가 있음에 화들짝 놀라고, 나 역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던 아이를 얼싸안으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선생님은 제 인생 최고의 스승님이십니다."


작년 대학입시를 치렀던 녀석이 나에게 수줍게 던진 고백이었다. 선생으로서 최고의 찬사를 들었는데 여기서 물러나도 한치의 아쉬움도 없다고 하면서도 물러나길 망설이게 되는 이유다. 나의 목표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진심이 통해서 일어난 마법과 같은 일 들이었다.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기에 돌아오지 않은 아이도, 자연스레 정리가 된 아이들도 있다. 혹시 몰라 작년 컨설팅 회사에 문의를 한 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들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 번도 알아보지 않았던 매매 의뢰를 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따져보니 내가 그걸 챙겨서 뭐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버티지 못하게 된다면 아이들을 팔아넘겼다는 일말의 죄책감 같은 것도 필요 없이 내 손으로 깨끗하게 폭파시키고 나오리라 마음먹었다.


이 상황에서도 배우겠다며 마스크를 쓰고 앉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봐 주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나 만큼이나 내 상황을 걱정해 주시는 학부모님들 때문에 그리고 힘든 상황을 함께 이겨나가 보자고 형편을 봐주시는 상가 주인 사장님 덕분에 오늘도 나는 사업가가 아닌 교육자로서의 나의 작은 사명감을 지켜나가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내 젊음의 모든 것을 바쳤던 지난날은 먼 훗날에도 내게 가장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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