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더하기 빼기
처음 코로나 소식을 접했던 건 작년 설 연휴쯤이었다. 동네에 중국 출장을 다녀온 어떤 사람이 처음 들어본 전염병에 걸려서 왔다고 했다. 증상은 그냥 감기 같은 것이라고 만 전해 들었는데 문제는 이 바이러스가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엠뷸런스, 흰색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그렇게 심각한 일 인지 몰랐다. 그 후 각종 매체들 사이에서 거론이 되었다.
코로나 환자로 판명되면 그 사람이 다녀 갔던 곳들이 일제히 공개되면서, 일대는 썰물이 빠져나가 듯 다 빠져나가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도 하지 않는다.
코로나와 함께 하고 있는 일 년. 우리는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다. 한 번씩 집단 감염으로 확진자 수가 발생하면 다들 집안에 꽁꽁 숨어 있다.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기, 손 소독 열심히 하기, 마스크 꼭 착용하기, 아프면 집에서 머무르며 상태를 지켜보기 등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비법 밖에는 예방책이 없다. 약도 없고, 어디서 걸렸는지 제대로 알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리면 재수가 없었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걸려서 주위에 민폐를 끼쳤으니 죽을죄를 지었다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 건가...
코로나에 걸린 환자들이 겁나는 건 내 몸 아픈 게 먼저가 아니라 주변의 시선! 그것이 제일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완치 판정을 받고 지역 시회로, 일터로 복귀했을 때 그들을 맞아하는 시선은 말로 하지 않았다 뿐이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배척한다고 한다. 더 이상 그곳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스스로 떠나게끔 만들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그 대상이 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 안타까운 심정으로 덮어 둘 뿐이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남편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가 확진자 판정을 받았으니 빨리 가족들과 함께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증상 환자도 있으니 검사를 받으라고 동네 지하철 역 광장에도 임시 검사소가 생겼지만 어디가 특별히 이상한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도 아니니 굳이 받고 싶지 않았기에 외면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자의든 타의든 검사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나에게는 아직 오지 않았다며 안도의 한숨만 쉬고 있었다.
일요일이니 보건소만 검사를 실시한다고 했다.
문 닫기까지 1시간밖에 남지 않았기에 마음이 급했다. 자가용이 없는 우리는 택시를 타도 될지 그것부터가 걱정이었다. 보건소를 가자고 하면 혹시나 안 태워주면 어떡할까 싶은 게 짧은 순간이었지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고, 무사히 보건소에 도착을 했다.
생각보다 시시하게 끝났다. 엄청 아플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평상시 병원에 가면 면봉으로 코와 목구멍을 쑤시는 작업을 자주 하니 아무렇지 않게 검사를 받는다. 괜히 겁먹은 내 모습이 우습기까지 하다. 갈 때는 급해서 택시를 탔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도보를 택했다. 왠지 타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운동삼아 걸을 만한 거리이기에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 오빠 그러면 그 사람 회사 다닐 수 있을까? 사람들이 완치 판정받고 와도 슬금슬금 피한다잖아.”
“그러면 안되지. 그 사람도 피해자인데...”
“뉴스에서 나오는 일은 어쩌다겠지?”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가족들까지도 고통을 당한다는 이야기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미국에 사는 친구는 주변에 중국인도 없고, 아이 학교에 동양인은 아이 혼자 뿐이었는데도 친구들이 ‘코로나’를 와치며 놀린다고 속상하다는 전화를 했었다.
사람에 따라 후유증도 천차만별, 이상한 병에 걸린 것도 억울한데 사람들한테 왕따 아닌 왕따까지 당해야 하고, 일자리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 일이 내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건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들 누구도 당할 수 있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생활을 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울리는 확진자 수 알람이 오늘따라 더 요란하게 들리는 듯하다. 나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면 그들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남편 회사의 동료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웃으며 출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