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2024. 12. 08.
11시, 독서 토론
소년은 그토록 기다린 노인이 돌아왔을 때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노인의 작은 어선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지만 그가 마시는 물 한 잔은 회한의 것은 아니다.
그는 피로한 노구를 침대에 뉘이고 깊은 잠에 빠져 사자 꿈을 꾼다.
불우한 노인의 이름은 산티아고.
많은 사람이 고생은 할 대로 하고 얻은 것은 없으니 불행하다고 말하겠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은 패배하게 만들어진 게 아니야."
비록, 어업 도구를 잃고 커다란 물고기도 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씩씩하다.
상어 떼와 거친 풍랑이 그의 몸에 상처를 내었지만 그의 영혼은 굳건하다.
'박살이 나서 죽을지언정 지지는 않는다'는 그의 말은 '아 Q'의 정신 승리와 다르게 숭고하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 이 책을 처음 읽었다.
그땐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허망한 존재이며, 삶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빈손으로 떠나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 애달픔을 느꼈다.
그리고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바다는 여전히 거대한 존재감으로 다가오지만 집으로 돌아와 사자꿈을 꾸는 노인의 위대함에 삶의 찬란함을 느낀다.
나는 죽으며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
멋지고 커다란 청새치가 집안에 가득한 것도 좋겠지만 끈기 있게 살아온 나의 영혼을 유언으로 삼는 일은 어떠한가?
산티아고가 위대한 건 그의 숭고함이 살고자 하는 몸부림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인생을 위해 대단한 행위를 기반으로 움직일 수 있겠으나 작은 행동이 쌓여 멋진 인생이 되는 건 조그마한 결심이 바탕이 된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을 하고 꾸준히 독서를 하며 타인에게 상냥해지려는 노력 말이다.
그것이 바로 삶을 잘 살고자 치는 몸부림이 아니고 무엇일까.
우린 모두 삶에 쉽게 박살 나는 유약한 존재이다.
밤낮없이 일하지만 휘청거리는 부동산 시장에 담보 대출 상환을 걱정하는 유리琉璃들이다.
그럼에도 뜨거운 김치찌개와 흰 밥 한 그릇에 피곤한 몸을 기대면 다시 일어날 용기를 갖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산티아고들이 사자꿈을 꾸길 바란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는 법이다.
토론 후 사족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