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번째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오늘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올해로 113년을 맞은 세계 여성의 날은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참정권 투쟁으로부터 시작됐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자본주의 체체가 자리잡기 시작하던 19세기, 집에서 가사 노동이나 육아만 담당했던 여성들은 집 밖으로 나와 노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남성들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비용을 받으며 열악한 환경(대부분 방직/직물 공장 등)에서 긴 시간을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1857년, 의류업에 종사하는 수천 명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부당 임금, 하루 12시간(~18시간)의 노동 시간과 직장 내 성희롱에 항의하는 시위를 일으켰으나 안타깝게도 여성들의 노동 환경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1908년, 많은 여성 노동자가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화재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분노한 1만 500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뉴욕 러트커스 광장으로 뛰쳐나와 "우리에게 빵(노동권/생존권)과 장미(참정권)를 달라(Bread for all, and Rose, too)!"고 외쳤다. 당시 시위는 역사상 여성들의 첫 대규모 시위로 기록되었고, 미국에 '전국 여성의 날'로 지정되었다. 그들이 외친 빵은 성별 임금 격차로 인한 굶주림 해소를, 장미는 노동조합 결성 권리와 남성처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을 의미하며, 현재까지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독일의 혁명가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은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 세계 여성의 날을 제안했고, 1911년부터 기념되기 시작했다. 이에 1911년 3월 19일에는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에서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 행사가 개최되었으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잠시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은 쉬지않고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1917년 2월 혁명(러시아력으로는 2월 23일, 국제적으로는 3월 8일)을 통해 '빵과 평화'를 위한 시위와 총파업을 벌이며 참정권을 얻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러시아는 1965년, '세계 여성의 날'을 공휴일로 선포하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행사들로 여성들의 투쟁을 기념하고 있다.
10년 뒤 UN에서는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했고, 1977년에는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며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한 것이 지금까지 여성의 날로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여성들이 일궈낸 현재는 과연 온전히 평등한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는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할까. 세상과 기술은 빠르게 변하지만 대한민국은 9년 연속 OECD 29개 회원국 중 임금격차가 가장 큰 국가로 보고되었고(2019년 기준), 작년 한 해 동안에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N번방 사건)을 비롯한 여성 대상 범죄(불법 촬영, 성폭력, 가정 폭력, 폭행)와 고용 차별 등의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그뿐인가. 몇 해 전부터 이어진 스쿨 미투와 예술계 미투, 각종 방송 및 콘텐츠에 녹아있는 성차별적 관념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잠시 지칠지라도 절대 주저앉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여성들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성추행, 강간을 저지른 남성들을 직접 응징하는 여성 단체인 '그린갱'이 등장했고, 부끄럽지만 딥 페이크 성범죄물 등록수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에서는 딥 페이크 성범죄물을 잡아내기 위한 기술을 개발한 대학생들이 등장했다. 이렇게 여성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빵과 장미를 달라"는 외침은 백여 년 전 과거의 것에 불과하지 않다. 여성들에게는 더 많은 빵과 장미가 필요하다. 우리는 여전히 배가 고프고, 우리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으로, 보수동 쿨러의 0308이라는 음악을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는 것 같은 도입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멋진 Funk/Disco 리듬의 사운드와 '우리는 서로를 비춰봐, 우리는 끝이 없을 거야'라고 반복되는 훅이 마음에 박혀 괜히 주변을 둘러보게 만드는 곡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여성들과, 앞으로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여성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 진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주변의 여성들에게 고마움과 용기를 전하는 여성의 날이 되기를 바란다. 돌아보면 주위에 항상 서로가 있음을 잊지 않기를, 우리가 서로의 롤모델이자, 용기,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무언가를 깨트리는 것은 경계를 부풀리는 새로움을 전해줄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비춰봐, 우리는 끝이 없을 거야.
출처 및 참고자료
International Women’s Day 2021: History, marches and celebrations / BBC / 2021.03.03
International Women’s Day 2021 theme – “Women in leadership: Achieving an equal future in a COVID-19 world” / UN WOMEN
Why do. E celebrate International Women’s Day? The History / National Women’s Council / 2013.03.07
국가가 여성을 보호하지 못할 때 등장한 여자들 '그린갱' / 최형미 / 여성신문 / 2019.09.20
"딥페이크 악용 차단, 여성에겐 달려드는 트럭 막는 생존기술이죠" / 이주빈 / 한겨레 / 2021.03.08
[라이프] 세계 여성의 날… 이날의 상징은 왜 빵과 장미일까? / 김도균 / SBS NEWS / 2017.03.08
[여성농단] 3.8 여성의 날 계보 잇기 / 김양지영 / 여성신문 / 2019.03.07
여성 외치다 “우리는 사람이며, 이성을 가진 존재이다”[플랫] / 김보미, 이혜리, 이아름 / 경향신문 / 2021.03.08
[조한혜정 칼럼] 빵과 장미 / 조한혜정 / 한겨레 / 2013.03.12
"한국, '유리천장 지수' OECD 국가 중 꼴찌" / 박광수 / 중앙일보 / 2019.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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