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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an 21. 2024

부력

장사를 하나 접었다. 오픈 한 지 1년 하고 3개월 만이다. 


딸 재이가 태어나던 해였다. 배우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수익이 불안정했고 결혼 후에 운영하게 된 카페의 수익도 온전치 못했다. 작고 가벼운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평생 집중해서 해본 일이라고는 연기밖에 없는 내 인생에서 온갖 경험을 끄집어냈다. 카페, 와인바, 학원, 배달대행업체, 백화점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무엇을 배웠고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했다. 


준비 자금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옥탑방에서 한 몸 건사하기도 위태롭던 서른 중반의 무명배우가 가정을 꾸리게 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내가 뱃속에 품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고 신혼집을 구했다. 대출을 잔뜩 당겨 쓰면서도 가족의 도움이 필요했다. 서른 중반이 되어도 엄마와 형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한탄하면서 통장에 박힌 돈을 임대인에게 송금해 겨우 집을 구했다. 


예술을 한답시고 매달 생활비를 버는 것에 만족하며 목숨을 부지하던 삶에 환멸을 느꼈다. 누군가는 라면을 먹어가며 십 년을 버텨 비로소 40대에 명배우가 됐다는 선배들의 얘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노견이 되어가는 공칠이와 배가 불러오는 아내, 점점 형태가 선명해지는 아이의 초음파를 볼 때마다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아이가 태어나고 때마침 한 콘텐츠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대본을 쓰거나 연출하는 일을 맡아줄 수 있냐는 제안이었다. 연봉도 괜찮고 다달이 월급이 들어오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으나 문제는 출근이었다. 사무실이 있는 경기도까지 주 4,5일은 기본적으로 출근을 해야 하고, 결정적으로 촬영이나 오디션이 잡혔다고 해서 무조건 결근이 가능하지 않다는 답변에서 머뭇거렸다. 


좋은 가장이 될 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족의 생계는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과 반평생을 마음에 품고 살아온 배우 인생의 경계에서 고민에 빠졌다. 배우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항상 일정을 조율해 주는 곳에서만 일해왔고, 다른 곳에서의 근무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레 대본이나 영화를 보는 시간이 줄어드는 나를 발견한 지 오래였다. 억지로라도 배우로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어놔야 작품이 없어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을 수 있었기에 할 일이 없을 때에서야 대본을 펼치고 연습을 하던 나와 마주했다. 과연 내가 바쁜 일상 속에서도 배우라는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던 중 형의 제안으로 와인바를 하나 운영하게 되었고 다행히 배우 생활을 유지하면서 가게를 운영해 일정의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매장이 위치한 이태원에서 오픈과 동시에 큰 사고가 터졌다. 가게는 시작부터 위태로웠지만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애썼다. SNS는 점점 장사꾼의 계정으로 바뀌었고 지인들도 모두 가게로 불러 그들의 카드를 단말기에 꽂아가며 사는 일 년 남짓의 시간이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목숨을 바쳤는가 하면 그렇지 못했고, 그렇다 해서 될 대로 돼라 방치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개인적인 기준으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엄연히 따져보자면 여러 일을 동시에 해내려고 한 욕심이었고, 결국 부진한 매출의 연속은 가게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일 오전부터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계속 움직여야 했던 삶에 '열심히 산다'는 합리화를 시켜봤지만 지지부진한 성과만이 남았다. 결과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삶이라도 실패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나를 도와주려고 힘을 실어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스스로를 믿었던 자만심, 실패해도 괜찮다는 안연한 생각이 불러온 손해는 모두 나의 책임 같았다. 


문을 닫고 일주일 가까이 딱히 이렇다 할 일을 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정리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단순히 속 시원한 마무리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직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가게가 자꾸 눈에 밟히고, 나와 우리 가족의 미래가 막막하고, 한 편으로는 새로운 삶의 시작 앞에서 설레기도 한다. 


나는 이럴 때마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상상을 한다. 열심히 팔과 다리를 구르며 앞으로 헤엄치는 것도 아니고 물의 압력을 뚫고 깊은 곳으로 잠수해 새로운 세상을 탐구하는 것도 아니지만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중력과 부력 사이에서 몸을 띄운 채 유유히 바람 소리를 들으며 사색에 잠긴다. 깊은 사색을 마치면 다시 육지로 향해 두 발을 땅에 디딘다. 바다 위보다 무거워진 나는 땅을 밟을 때마다 모래가 움푹 들어가도록 발자국을 남긴다. 걸어 나갈수록 뒤에 남겨놓은 발자국은 서서히 차오르는 물에 그 형태를 잃어가지만 그 기억은 내 발바닥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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