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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알 Oct 16. 2020

너는 샌프란시스코

미국, 샌프란시스코

이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것이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의 시도조차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저 시간이 흐르면 어떤 것이든 자연스레 잊히기 마련이고, 볼 뜨거웠던 젊은 날의 시간들도 그렇게 정해지지 않은 앞으로의 여행으로부터 힘없이 밀려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내게 다가오면 너는 내 안에 차지하고 있던 그 공간을 조금씩 그에게 양보하다 결국 모든 공간을 내어주고 나가게 될 것이다. 나는 믿었다. 샌프란시스코가 그렇게 내 마음에서 무뎌지기를.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그리고 너는 누구에게도 너의 공간을 뺏기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너를 기억하기로 했다.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 시도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일을 시작하려 한다. 이것을 다 쓰게 되면 나는 네가 있는 방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네가 스스로 나갈 수 있도록 나는 너를,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너는 그 자체로 샌프란시스코였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적이 없고, 샌프란시스코를 여전히 사랑하며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휴가로 멕시코에 있는 휴양지를 두어 번 가봤고, 미래에는 뉴질랜드의 자연 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고 말하지만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용기는 없다. 샌프란시스코에는 한 뼘 크기의 재팬타운이 있다. 그 안에 일본의 전통식 건축물이 소소하게 있었는데, 너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아시아를 느끼는데 충분했다. 너는 정말 샌프란시스코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에 대한 찰나의 첫인상은 슬픔이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넌 혼자 관광객들로 붐비는 시끌벅적한 피어에 가서 그런 얼굴로 바다를 뒤로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나는 티가 나게 너를 경계하며 멀찍이 걸었고, 그런 너는 오히려 나에게로 걸어와 내 걸음을 맞추었다. 나의 경계심을 눈치챘는지, 너는 수다쟁이처럼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에 알카트라즈섬과 바다사자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영화 김종욱 찾기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세렌디피티도, 비포 선라이즈도 다시 보았다. 이런 유의 영화는 정말 영화라고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한번 해봤다. 드라마와 영화는 스크린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엔딩을 장식하지만 현실에선 일말의 여지도 없다. 그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걸 매 순간 배운다. 너를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트윈픽스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너에게 키스하고 싶을 정도였다. 바람이 많이 불었고, 이미 도착한 사람들은 자기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그곳을 즐기고 있었다. 그곳에서 너는 너를 믿지 않았던 나에게 증명해 보이겠다면서  갑자기 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곧장 흙바닥에 주먹을 대고 한 손으로 팔 굽혀 펴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내 따라나가서 뭐하는 것이냐며 그를 일으켜 세웠고, 그는 이미 벗겨진 살갗에 달라붙은 모래알을 툭툭 털어내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말했다. 나 정말 너에게 거짓말하지 않아.



한국에 돌아와 너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나갔던 너의 집, 네가 졸업한 학교,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아파트,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네가 좋아하던 전망대, 아빠와의 추억이 있는 비밀장소.. 몇 날 며칠을 밤새워가며 구글맵에서 우리들의 장소를 따라가려 했지만, 다시 찾지 못한 곳도 있었다. 그 하나는 바로 너의 집. 알록달록 다른 듯 하지만 서로 비슷한 샌프란시스코의 집더미에서 나무 한그루가 가린 파란색 집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너를 찾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네가 정말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너는 살면서 가끔씩 한번 나를 추억하지 않아도 돼.

우린 다시 만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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