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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알 Oct 17. 2020

네덜란드에서 온 삐삐

이스라엘, 베잇이츠하크

치키띠따

그녀는 처음으로 늦은 밤에 이곳에 도착한 사람이었다. 방에 들어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는 다시 밖으로 급히 나갔다. 누군가와 통화하는 그녀의 히브루가 열린 창문 틈으로 들렸다. 사뭇 진지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는지 방으로 돌아온 그녀가 기운 빠진 모습으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이 곳에 오고 나서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그녀는 슬퍼 보였다.


한 달 전에 그녀는 이스라엘에 왔다. 그녀의 할머니는 쥬이시고 그녀는 자신에게도 쥬이시의 피가 흐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3년 전 처음 이스라엘에 왔었는데 그때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 그녀가 여행을 마치고 네덜란드로 돌아간 후에도 그들은 장거리 관계를 지속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남자는 같이 있지 않으면 결국 헤어지게 될 거라고 비관했다. 결국 그녀는 남자와 함께 있기 위해 로테르담의 집을 정리하고 직업이었던 무용수도 그만두었다. 그렇게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왔다. 


남자는 그녀가 이스라엘에 오기만을 오랫동안 기다렸고, 그녀는 남자와의 결혼을 꿈꿨다. 그러나 그들의 앞길은 한 달 만에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녀를 늦은 시간 낯선 곳에 데려다준 것은 바로 남자였다. 그녀는 남자 친구의 농장이 경제적으로 너무 좋지 않아서 잠시만 이곳에서 지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쳐 보였지만 자신 있게 목소리를 냈던 그녀는 끝내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그와 함께 있고 싶어..


그녀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고 풍성한 갈색 웨이브 머리를 가졌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잠을 자기 전에는 곱게 땋아 내렸고, 일할 때는 하늘 위로 높이 올려 묶었는데 마치 말괄량이 삐삐 같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분명한 자신만의 소신이 있었고, 고집스럽기보다는 대화하고 타협하는 쪽이었다. 또한 그녀는 좋은 컬러감과 독특한 패션센스로 빛났는데 그녀의 유쾌하고 밝은 성격과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남자와의 일을 떠올리면 금세 초조해했다. 어느 날 그녀는 남자와 통화를 마치고 그와 헤어지게 될 것 같다며 몹시 우울해했다.


처음에는 무조건 오기만 하라고,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고 하더니, 이게 뭐야. 그녀는 며칠만 이곳에서 지내면 곧 남자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고 강하게 믿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남자를 다시 보지 못했고 대신 매일 밤 남자와 전화통화를 했다. 그녀의 바람대로 그녀는 얼마 후 여기를 떠나게 되었지만,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리더인 아밀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아서였다. 아밀에게는 어린 두 자녀가 있었는데, 애연가였던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는 여기보다는 먼, 그래도 남자 친구의 농장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냈다. 혹시라도 준비가 되면 남자가 힘들여 오지 않도록.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네덜란드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 자신을 종종 자책하기 시작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면 입으려고 준비했다는 원피스를 몸에 갖다 댔다가 도로 내려놓으며 이따위 걸 왜 챙겼는지 깊이 한탄했다. 또 다른 한쪽에서 핑크색 면도기가 다발로 나오자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이마를 짚더니 우는 듯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떠나는 날 네덜란드의 전통 신발이라고 소개했던 나무 굽으로 만들어진 멋스러운 가죽 롱부츠를 신었다. 가방에 넣고 가져가기엔 너무 무거워서 차라리 신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첫 번째 허그. 그다음에 이어지는 이스라엘 식의 양 볼에 키스 두 번.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려고 하자 그녀가 다시 껴안으며 말했다. 네덜란드는 세 번의 키스를 하지. 씽긋 윙크를 하며 그녀는 세 번째 키스를 마쳤다. 그리고 그녀는 씩씩하게 떠났다.     



나는 술보다 마리화나가 좋아. 술은 진탕 마시면 고꾸라지게 하지만 마리화나는 업 시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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