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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알 Apr 22. 2021

헤이, 파키스탄!

인도, 고아

네임텍에 버젓이 India라고 적혀 있음에도 파키스탄의 폭탄 테러를 피해 형과 단둘이 인도의 아름다운 해변 고아로 왔다고 했던 너. 부모님은 그럼 아직 파키스탄에 계셔? 연락은 돼? 하는 나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대답 대신 무거운 얼굴로 고개만 가로저었지. 내가 감히 너의 아픔을 느끼려는데 나의 슬픈 표정과 대조적으로 넌 이내 배를 잡고 크게 웃어버렸잖아. 


그때부터 나는 너를 파키스탄이라고 불렀지. 너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난 너를 향해 크게 “헤이, 파키스탄!”이라고 외쳤고, 그럼 너의 인디아 친구들은 다들 어리둥절해했었어. 너와 나만 아는 우리만의 암호. 멀리서 너는 나를 찾으면 내게 종종 휘파람을 불었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널 찾지 못해 두리번대면 여지없이 넌 날 향해 소리쳤어. “파키스탄!”


사실 우리에게 대단한 추억이랄 건 없었어. 그저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환한 얼굴과 미소로 서로에게 최고의 인사를 나눴고 그렇게 너는 언제부턴가 나에게 가장 반가운 사람이 되었지. 술을 잘 못하지만 그날은 스미노프 한 병이나 마셨는데도 기분 좋게 취해 있었어. 그렇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캐빈으로 돌아오는데 언제나 네가 서있던 그 자리에서 너를 만났고. 그리고 내일 떠난다고 했어. 


거짓말. 


항상 나에게 짓궂은 장난치기를 좋아하던 너지만 어쩐지 떠나는 너의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아. 기어코 너의 아이디카드를 쭉 잡아당겨 보았고, 정말 거기에는 2016년 10월이라고 적혀 있었어. 내가 아무리 몰라도 이곳에선 누구도 사인오프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알아.


이곳에서 이별은 너무나 쉽다. 매일 보던 얼굴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하고, 떠난 지 한 달이 돼서야 떠났음을 알아차리기도 한다. 누군가 떠나면 또 다른 새로운 얼굴이 오고 이 안의 작은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항상 이별이 서툴고 힘들었던 나는 그만큼 적응이 더뎠고 외로웠다. 


 

갑자기 사라지지 않고 나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해줘서 고마워. 안녕. 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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