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이 글은 <친애하는X>를 너무 잘 보고 있던 나로서 '드라마 결말'의 답답함을 풀 곳이 없어 그동안 열렬히 푸시하는 알람에도 아는 체하지 않았던 '브런치'를 냉큼 찾은 얄미운 나 되시겠다.
<친애하는X>는 회차가 진행될수록 원작과 다른 부분을 조금씩 추가해 시청자에게 드라마만의 각색을 스며들게 했다. 사실 '문도혁'을 주요 인물로 다룬 것까진 신선해서 오히려 기대 점수를 더 줄 참이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역시 '원작 오브 베스트'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내가 다루고자 하는 캐릭터는 친애하는 X의 2번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윤준서'다.
좋아서라고? 절대 아니다. 빌런 중 가장 큰 빌런이지만 천사 역할을 포기할 수 없는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 1위인 좀먹는 녀석이라 열렬히 까고자(?) 한다.
(배우는 잘못이 없다.)
'윤준서'는 남주 롤보다 숨은 빌런이 어울릴 정도로 결국 저질러 버린 '동반 자살을 둔갑한 살인'이라는 그의 집착적인 사랑에 끝내 아진의 사랑과 공감을 못 받은 비운의 캐릭터다. 그리고 원작에 비해 윤준서에게 주는 벌이 너무도 약한 채 지옥으로 떠났기에 그 벌은 온전히 내 몫이 된 것만 같았다(?)
문도혁이 '마약' 같은 존재라면 윤준서는 '간접흡연'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간접흡연'은 마약보다 덜 나쁘잖아요?라며 억지로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 힘없는 시청자가 의견을 피력(?)하는 작은 몸부림이다.
백아진의 도 넘는 행동으로 인해 선량한 사람이 겪은 피해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최정호'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백아진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악질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일관적인 윤준서의 태도는 그들이 조금의 피해라도 볼 때 백아진을 악랄한 마녀라도 된 듯이 몰아세운다는 점이다.
그래, 사실 백아진이 겪은 피해 중 윤준서의 잘못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계모의 아들이라는 빌미로 백아진에게 온갖 가스라이팅을 당한 불쌍한 청년이라고 생각이 될 정도긴 했다. 당시 어린 윤준서는 대처할 마땅한 방도가 없었으며, 폭력의 수위에 겁먹어 방관한 것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훗날 키가 자란 그는 "나의 엄마 때문에 아진이가 이렇게 됐어"라며 잊을만하면 뻐꾸기처럼 말을 하는데, '윤준서'는 아진이의 트라우마의 원인을 알면서도 그녀를 진정으로 위로하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진짜 위로를 할 수 있는 '김재오'가 등장할 때마저 "네가 유일한 방법"이라며 그 역할마저 회피하고 만다. 결국 '아동학대'라는 트라우마 피해자는 아진뿐 아니라 '윤준서' 또한 깊게 잠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트라우마의 변질은 '드라마'에서 좀 더 부각된다. 원작에서 '레나'는 아진을 괴롭히는 잠깐 등장하는 빌런일 뿐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윤준서의 새로운 연인으로서 '레나'와 썸 아닌 썸을 타며 아주 물러터진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자신의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레나'를 향한 마음은 단순히 복수의 대상이 아닌 그 이상을 넘어선 행동으로 보인다. 여기서 문제는 백아진이 맞고 있는 것을 봤음에도 그 뒤 복수를 품는 백아진이 저지를 행동을 더 겁내하는 그의 행동이 자연스레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할을 모호하게 만든다.
더해 레나의 전연인이자 아진의 남자친구가 된 '허인강'과의 연애에 있어서도 백아진이 말한 '1년'이라는 허인강과의 연애 기한이 지나자 "진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라도 하는 거야?"라며 비꼬듯 말하는 태도 또한 백아진의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응원한 것이 맞을까 의문을 품게 한다. 진짜 사랑이었다면 할 수 있었던 본보기가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매번 빗나갔다.
표면적으로 말하면 '백아진이 정상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하지만 '백아진'이라는 캐릭터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 전제는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윤준서가 원하는 '정상'의 범주는 '백아진'이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가면을 쓴 모습과 가까울 것이다.
그녀가 그런 '연기'를 하는 이유 또한 "그렇게 해야만 그녀가 원하는 삶을 얻을 수 있어서"다. 애초에 그녀는 정상적인 삶을 얻기 위해 그 누구보다 노력한 유형이지만, 척박한 환경이 그녀에게 얼룩처럼 묻어 매번 방해받아 왔기 때문에 그녀는 결국 '정상적인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룩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은 '윤준서'보단 '김재오'였다. 사실 윤준서는 얼룩을 닦을 생각보다 그녀의 얼룩의 원인을 '내 손으로' 밝히기 급급했으며, 결국 얼룩을 묻힐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기 바빴다.
하지만 극 중 짧게 등장한 허인강의 할머니와의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아진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신의 얼룩을 감싸주는 '포용'이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결국 윤준서는 백아진에게 '얼룩'이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백아진에게 부디 얼룩으로 남지 않길 간절히 소망하며, 얼룩이 없어진 백아진과의 몇 없던 밝았던 시절을 꿈꿔왔을 듯하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생각에 갇혀 '백아진'이 '진짜' 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부터 원작 결말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항상 모든 스토리는 결말이 아쉽기만 하다. 특히 열광하면서 봤다면 더 그렇다. 웹툰 원작 또한 박수쳐 마땅할 결말이었지만 끝이라는 것에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드라마 결말을 보고선 '백아진'을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한 마리의 개미처럼 표현해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마지막 X였던 '윤준서'에게 주는 벌은 결코 '죽음'이 아니다. 감히 예측한 건데 <아진의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에 대실패해 홀로 지옥을 가는 윤준서를 시청자가 원한 것도 아니었다.
웹툰에서는 '백아진'은 자신을 가장 아래로 떨어뜨린 '윤준서'에게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은 삶을 살게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또한 백아진과 엮인 사람들에게 죗값을 덜기 위해 그들이 결코 망가지지 않도록 나서서 도와주기까지 한다. 물론 '김재오'도 허무하게 죽지 않으며, 백아진을 지켜주며 끝까지 곁에 머문다.
살아서 죗값을 갚는다는 마인드가 윤준서의 캐릭터에 더 부합했지만, 드라마에서의 '윤준서'는 김재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증거마저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 오직 자신만이 막아 세울 수 있다는 오만함을 보여준 또 하나의 가해자가 될 뿐이었다. 살아남은 아진에게는 더욱이나 큰 상실감을 안겨 준 그의 최종 복수라고 칭해도 마땅할 정도이다. 결국 친애하는 X는 곧 그였다는 타이틀도 아까울 정도로 손에 꼽을 정도로 꺼려지는 남주 포지션이었다.
(이상 백아진-김재오 응원론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