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 변리사]의 지식재산 이야기
내가 산 제품을 리폼하였는데, 상표권 침해가 된다? - 루이비통 상표 침해 사례
명품 가방을 리폼하여 판매하는 것은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화제이다.
서울중앙지법은 루이비통 가방의 원단을 사용하여 리폼을 한 리폼업자에게 상표권 침해를 이유로 루이비통에 손해배상금 1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뜨겁다.
"내가 산 가방인데, 왜 리폼을 하는 것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낡은 제품을 수선하는 것도 문제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당근에서 중고 가방을 팔 수도 없나"
유행이 지나 입지 않는 옷을 자신만의 패션으로 만드는 리폼. 10년 전부터 유행했다. 청자켓에 단추나 레이어를 달고, 빈티지 청바지로 손쉽게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만드는 재미를 선사한다.
기성품에 포인트를 주면서 손쉽게 자신만의 패션을 완성할 수 있다. 요즘 같은 경기 불황기에는 얇아진 지갑에 큰 지출 없이도 센스와 개성을 보여줄 수 있어 경제적이다.
예전과 지금의 리폼 문화는 사뭇 다르기도 하다. 예전에는 청바지나 잡화를 활용한 리폼이 유행이었다면, 이제는 명품 가방과 같이 조금 더 값비싼 브랜드를 리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브랜드 관리에 진심인 기업을 만나게 된다.
아직 대법원의 최종 판단까지는 긴 시간이 남았지만, 법원이 명품 브랜드의 손을 들어주게 된 뒷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명품 가방을 리폼해 주는 업체 A는 고객의 가방을 분해하여 그 원단을 이용해 새로운 형태의 가방이나 지갑으로 제작해 주고 개당 수십만 원의 제작비를 받았다.
명품 업체는 리폼업자의 리폼 행위로 인해 자사의 상표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번 상표 분쟁이 시작된 발단이다.
고객과 리폼업자 모두 자유 시장에서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거래를 한 것인데, 왜 지식재산권이 문제가 되었을까?
이미 판매된 제품을 리폼하는 것만으로는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산 옷, 가방을 수선할 때마다 판매자에게 허락을 받는 것은 이상하다. 오히려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소유자가 내 제품을 수선하거나, 제품이 필요 없어졌을 때 제 값을 쳐주는 사람에게 다시 파는 행위는 물건을 소유한 주인의 자유일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리폼을 한 제품이 시장에 돌아다니면서 원 제작자에게 피해가 생길 것 같기도 하다. 원래 제품을 바꿔서 판매하면서, 짝퉁이 유통된다면? 소비자들이 신상품이라고 헷갈리기 시작한다면? 장인이 열심히 바늘을 수놓은 자리에 조잡한 실밥이 튀어나온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에게 돌아간다.
리폼을 무조건 막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무작정 리폼을 허용하자니 기업의 브랜드에 영향을 미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상표 이슈가 생긴다. 상표권은 이러한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비록 짝퉁 상품은 아니지만, 변형된 상품이 유통되게 되면 브랜드 가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소비자와 기업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게임으로 귀결된다.
구매자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하고, 기업의 브랜드를 어느 정도까지 보호해줘야 할까?
백화점 1층을 가득 채우고 있는 럭셔리 브랜드. 입장을 하기 위해서도 순서표를 뽑아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상당하다. 오픈런은 이제 익숙한 문화가 되었다.
같은 디자인을 가진 가방이라도 단어 하나에 제품을 대하는 인상이 달라진다.
"Louis Vuitton" 로고 하나로, 170년이 훌쩍 넘은 대륙 너머의 프랑스의 정취와 그 헤리티지가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상표의 역할이다.
상표의 본질은 내 제품을 다른 상품과 구별하게 하는 힘에 있다.
100년이 넘는 기업의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는 자부심. 영롱한 브라운 컬러의 모노그램 패턴이 삶의 활력을 주기도 한다. 로고와 단어 하나가 달라졌을 뿐인데,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된 감성을 준다.
상표는 내 브랜드와 다른 브랜드를 구별하고 식별하게 함으로써, 브랜드 가치가 형성되는 근간을 마련한다.
길거리 떡볶이 맛집이 즐비하게 서 있음에도, 우리는 각자의 이름만으로 어떤 상품을 팔고 있는지 구별할 수 있는 것과 같다. 학창 시절 교문 앞의 동네 떡볶이 가게의 추억의 맛, 엽떡의 강렬한 매운맛, 그리고 할머니 가래떡의 쌀떡의 쫀득함까지 고유한 정취와 맛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상표를 통해서 그 브랜드 정체성이 더욱 확립된다.
그리고, 상표는 그 제품을 만든 출처를 표시하고,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사실 명품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을 지칭하는 것이다.
1800년대 루이비통이 명성을 얻게 된 계기도 좋은 품질의 제품 때문이었다. 루이비통은 자신만의 특별한 목공기술을 살려 견고한 가방을 만들었고, 당대 귀족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리면서 브랜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소비자들은 같은 상표를 부착한 상품을 보고 특정 기업이 만들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LV" 로고가 붙은 가방을 보고 소비자들은 100년의 역사를 가진 프랑스 브랜드에서 만들었음을 직관적으로 떠올린다. 상표를 통해 누가 상품을 만들었는지 그 상품의 출처를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비싼 비용을 내는 만큼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어낸 정교한 품질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 같은 상표를 가진 상품은 일정한 수준의 품질을 기대하게 하는 역할이다. 상표는 소비자의 신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상표는 내 브랜드를 다른 브랜드와 구별하게 하고, 상품의 출처를 표시하며, 품질을 보증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브랜드 관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리폼의 허용 여부는 '상표의 식별력이나 명성이 훼손'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상표권 침해를 따져봐야 한다.
로고나 명칭이 붙어 있지 않는 옷을 리폼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 흰색 티셔츠는 자유롭게 리폼을 해도 무방하다.
상표권 침해가 문제가 되는 리폼 행위는 '상표'가 붙은 제품을 변형하는 것이다. 변형된 제품에 상표가 그대로 부착되어 있다면, 브랜드 가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감이 완벽한 제품만을 판매하는 것이 브랜드 정책이었다고 생각해 보자. 리폼을 통해서 재봉선을 다 뜯고, 본사 디자인 컨셉과 다른 상품으로 재탄생하면서 원래 판매되던 제품의 품질과는 동떨어지기 마련이다. 소비자들의 브랜드 인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리폼 제품을 본 다른 사람들이 브랜드 출처를 혼동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리폼으로 제품을 변형한 것이 수선한 정도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리폼으로 오리지널 상품과 동일성을 해할 정도로 본래의 품질이나 형상에 변형을 가하게 되면, 상표가 부착된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이번 분쟁에서 피고는 리폼 제품이 시장에 유통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표법상 '상품'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면서 다퉜다. 1심 재판부는 양산성이 없더라도 상표의 출처표시기능을 보호하기 위해 리폼 제품도 상표법상 상품으로 보았다.
이러한 경우에도, 가방을 구매한 개인이 자신이 사용할 목적으로 리폼을 하는 것까지 막는 것은 아니다.
상품을 구매한 소유권자의 자유의 가치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상품을 구매한 소유자의 리폼으로 브랜드 가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자유의 대가를 치루어야 할 수도 있다. 상표가 보호하고자 하는 브랜드 가치를 존중하는 범위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글. 손인호 변리사. Copyright reserved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