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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kim Nov 26. 2022

우리 아기가 벌써 300일이라니

어쩌다 주간일기

300일 기념사진을 찍기로 마음먹었던 때는 200일 기념 촬영을 하면서였다. 성장앨범을 계약한 사진관에서 50일, 100일 사진을 찍긴 했지만 내 욕심에 집에서 셀프 촬영도 병행하고 있었다. 왜인지 사진관에서는 진짜 50일, 100일보다 조금 뒤로 예약을 잡아줬기 때문에 당일 기분을 살리고 싶어 셀프 촬영을 시작했는데, 나름의 장점이 있어서 계속해오고 있었다. 사실 100일 상 셀프 촬영과 사진관 촬영본 차이가 너무 심해서 셀프 촬영을 그만둘까 싶기도 했는데, 또 200일과 300일은 계약이 되어 있지 않아서 집에서 한 번 더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고심해서 고른 200일 셀프 촬영 세트가 도착했고, 아기 방에 촬영용 소품들을 세팅해서 이틀간 찍고 보니 아기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자연광을 활용한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스튜디오에서 전문가들이 색감을 보정해준 느낌과는 전혀 달랐지만, 고생한 만큼 예쁜 사진들이 남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라면 300일 촬영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차올라서 그날 바로 300일 촬영용 소품을 주문했던 것 같다.


200일 촬영을 할 때까지만 해도 여름이었고, 더위를 많이 타는 우리 아기는 반팔 차림에 맨발이었다. 혼자 앉긴 하지만 배로 밀면서 기어 다닐 때였고, 무엇보다 사진으로 보니 참 작아 보였다. 300일은 가을이 한창이었고, 더위를 타는 아기이긴 하지만 조금 긴 옷도 입어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200일 때부터 눈여겨보던 해리포터 컨셉의 세트에 있는 옷이 조금 길고 더워 보여서 고민했었는데, 300일은 11월 중순이니 입힐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아기 사진이나 옷은 다 엄마 취향이라지만,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해리포터를 좋아해 온 덕후였다. 솔직히, 아기 옷만 있으면 집에 있는 소품만으로도 촬영이 가능할 수준이었다.


어쨌든 그래도 꼭 해보고 싶던 컨셉이라, 여름부터 주문해두고 300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사실 이렇게 체감상 빠르게 아기의 300일이 올 줄은 몰랐다. 아기와 매일 하루하루를 보내고, 일주일과 한 달이 너무 빨리 간다고 생각했지만 100일이 이렇게 빠르게 흘러갈 줄 몰랐다. 그 사이에 우리 아기는 네 발로 기고, 잡고 서며, 모든 물건에 호기심을 가지고 입에 넣어보는 아기로 성장했다. 아기가 첫째라 간과한 사실이 있었는데, 200일은 몰라도 300일부터는 촬영 협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었다.


업체에서 아기 옷 사이즈를 확인하기 위해 연락이 왔고, 그때부터 300일 셀프 촬영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마칠 것인가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기가 커서 원하는 대로 협조가 안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잘 웃어주기도 하고 생활 패턴도 많이 잡혀있었다. 50일, 100일, 200일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셀프 촬영의 핵심은 '아기 기분이 좋은 시간'이었다. 자연광이 어느 정도 들어오면서도 아기가 기분이 좋을 시간인 첫 번째 낮잠 후 점심 먹기 전까지의 시간을 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아기가 아침에 일어난 직후에 빠르게 촬영 소품들을 세팅해둬야 했다.


시간이나 세팅은 그래도 경험이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왔지만, 끊임없이 기어 다니고 모든 물건을 탐구하는 아기 사진을 어떻게 잘 찍어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내가 소장한 해리포터 소품을 어디까지 꺼낼 것인가 고민이 되었다. 먼저 기어 다니는 아기가 잡아도 되고 입에 넣어도 안전한 소품을 아기 근처에 배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든 해리포터 뜨개 인형들을 활용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한참 구강기인 아기에게 뭐라도 쥐어주면 그 물건을 가지고 노는 동안만큼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가진 소품 중 유리돔, 레고 등 아직은 아기가 깨뜨리거나 파손했을 때 다칠 수 있는 소품들은 모두 제외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놀라운데, 부서지고 망가지더라도 '아기가 다치지 않을' 물건이 우선이었다. 모든 해리포터 물건이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꽤 고가인 플라스틱 호그와트 성과 허니듀크 미니어처, 헤드위그 실사이즈 인형을 추가로 배치하기로 했다.


사실 여기부터는 욕심이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아기와 외출을 해보면 안고 있을 때 가장 얌전하고 사진 찍기가 수월했다. 그래서 내가 아기를 안고 세팅된 환경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해리포터 세트장에 들어가려면 나도 호그와트 교복을 입어야 했다. 내가 덕후이긴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호그와트 교복까지 갖추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이 잠시를 위해 정품 교복을 구매하자니 아무리 나라도 그건 제정신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대여도 알아봤지만 진짜 5분 10분을 위해 대여까지 하는 것도 아까웠다. 그래서 적당히 일상에서 섞어 입을 수 있으면서도 호그와트 교복 느낌이 나는 옷을 골라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나는 회색 주름치마와 교복 느낌이 나는 꽈배기 니트 조끼를 샀다.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는' 옷이어야 했기 때문에 정말로 느낌만 비슷한 옷들이었다. 출산 후에 임신 전 몸무게를 회복하기 전까지 절대 옷을 사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 생각나서 양심이 매우 찔렸다. 그렇지만 올 겨울에 다른 옷들과 잘 매치해서 입으면 된다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갖고 있던 흰 셔츠와 함께 입으니 그런대로 교복 느낌이 났다. 물론 내 나이와 육아로 지친 얼굴 상태를 고려하면 그걸 교복으로 볼 사람이 없기는 했다.


아무튼 그렇게 300일 셀프 촬영 소품과 내 옷이 동시에 도착했다. 소품들이 다 잘 왔는지 확인하면서, 이걸 기획하신 분도 나처럼 보통이 아닌 덕후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토요일, 드디어 아기의 300일 아침이 밝았다. 아기가 아침에 일어나 아빠와 온갖 장난감과 책을 꺼내며 즐겁게 노는 동안 나는 소품을 전부 펼쳐서 세팅을 시작했다. 하나하나 펼치다 보니 해리포터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너무 신났다. 그리핀도르 깃발과 영화에 나오는 예언자일보 액자, 호그와트 입학통지서 편지와 호그와트 급행열차 기차표까지 덕후들은 바로 알만한 소품들이 나와서 신이 났다. 역시 예상대로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아기가 입을 호그와트 교복이었다. 나는 사려고 해도 이렇게 디테일하면서 귀여운 옷을 찾지 못했는데, 나와 똑같은 주름치마에 그리핀도르 색이 있는 니트, 입체로 된 타이까지 정말 귀여웠다. 아기가 입을 망토에도 호그와트 교표가 붙어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기의 첫 번째 낮잠이 끝나기를 기다려 촬영을 시작했다. 아기가 더워할까 봐 창문도 조금 열어두고, 자연광과 실내조명에 맞게 카메라를 세팅했다. 아기 옷을 갈아입히고 들어오자 예상대로 처음 보는 온갖 물건들에 아기의 호기심이 넘쳤다. 준비한 대로 아기에게 인형을 쥐어주고 이름을 부르며 사진을 엄청나게 찍었다. 그래도 파손 위험이 있는 물건은 바깥쪽에 한 번에 쥐지 못하도록 두었는데 그래서 이것저것 함께 구도에 걸리게 찍기가 조금 어려웠다. 아기에게 인형을 갖고 놀게 했기 때문에 인형까지 함께 예쁘게 나오도록 하는 건 포기해야 했다. 어느 정도 찍다 보니 낯선 느낌이 들었는지 많이 웃지 않고 조금 위험해 보이는 소품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웃는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이대로 끝낼 수 없어 내가 아기를 안고 중앙에 앉았다. 카메라는 남편에게 넘어갔고, 아기가 좋아하는 동요로 유혹하면서 함께 사진을 조금 더 찍었다. 찍고 보니 나만 싱글벙글 웃고 있고 아기는 내가 쥐어주는 마법사 지팡이와 헤드위그 인형에 시선을 거의 빼앗기고 있었다. 그래도 얌전히 그리핀도르 목도리까지 두르고 사진을 찍어줘서 고마웠다. 사실 하루가 지난 지금은 옷까지 맞춰 입고 신난 내가 약간 철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대로, 한 번뿐인 아기의 300일 사진을 꽤나 성공적으로 찍었다. 내 지인들은 대부분 내가 해리포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즐겁게 사진을 찍은 것에 대해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신나게 준비해놓고 사실 아기를 눕히고 찍는 것은 포기할 만큼 신나서 모든 물건을 입에 넣으려는 아기와 사진을 찍는 일이 힘든 건 사실이었다. 200일 때처럼 가만히 무언가를 바라봐주거나 앉히면 그대로 있어주지 않았다. 그만큼 잘 성장해서 신나게 기어 다니고, 물건을 잡고 모든 구도를 벗어나느라 바빴다. 고생은 했지만, 내 로망을 하나 실현한 것 같아서 기뻤다.


여기저기 사진을 자랑하면서도, 진짜 우리 아기가 300일이 되었구나 싶어 기분이 조금은 이상하다. 65일만 더 있으면 진짜 돌 어린이가 되는 것이다. 태어나서 100일까지는 시간이 정말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는데, 갈수록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요즘은 돌이 지나서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걷고 뛰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기도 저렇게 되겠지 싶어 기대되는 마음이 있다. 동시에 지금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조금만 더 이대로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괜히 아기에게 천천히 걸어도 된다고, 조금 천천히 커달라고 속삭이게 되지만 앞으로 더 예뻐지고 더 사랑스러운 행동을 배워갈 아기를 생각하면 내일이, 다음 계절이 기대가 된다.


아무튼, 우리 아기가 벌써 300일이라니. 기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기록하고, 더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나게 놀고 잠든 아기의 모습을 보며, 내일은 엄마랑 더 재밌게 놀자고 속삭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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