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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서 Feb 08. 2024

아는 맛이라 더 무섭다, 초콜릿이 그러하듯

영화 《웡카》(2023)

이 리뷰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초콜릿을 닮은 '아는 맛'의 힘

    다이어트를 위해 식단조절을 할 때면 먹음직스러운 음식 앞에서 흔들린다. 평소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도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유독 먹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우린 되뇌인다. 먹어봐야 우리가 아는 바로 맛이라고. 지금 참지 못하고 먹어봐야 새로울 것도 없고, 아는 맛만 느낀 후회만 막심할 거라고. 하지만 이런 자기 최면도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 우리가 유혹에 흔들리는 이유가 바로 '아는 맛'의 힘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몰랐다좋았을 텐데, 하필 맛을 알고 있는 우리는 언제나 음식의 유혹 앞에 고통스러워한다.

    《웡카》는 너무도 잘 '아는 맛'으로 관객을 유혹하는 영화다. 마치 초콜릿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을 어필하듯, 다이어터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달달하면서도 풍미 있는 초콜릿의 '아는 맛'을 닮았다. 이전에는 볼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제공한다거나, 참신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거나, 상상도 못 한 전개로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뮤지컬 영화나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하는 '가족영화'를 경험한 관객이라면 낯설지 않을 영상미와 캐릭터 설정, 스토리 전개 방식을 채택한다. '이 다음엔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겠지'라고 생각하면 다음 장면은 그 기대와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총천연색의 영상과 아름다운 넘버들이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즐겁게 만들어주지만, 《웡카》만의 특출 난 무언가를 찾아보긴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웡카》가 클리셰로 가득 한 지루한 영화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웡카》는 '아는 맛'의 힘을 발휘하며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사람들이 이런 장르의 영화를 선택했을 때 기대하는 바를 안정적으로 풀어낸다. 사실 안정감과 지루함은 한 끗 차이다. 클리셰라는 표현이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된다고는 하지만, 사실 클리셰도 어떠한 장르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규칙이자 문법이고 그 문법은 오랜 시간 누적되며 창작자와 관객들의 선택을 받은 전략의 일종이다. 클리셰를 남발하면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영화가 되지만,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면 관객들에겐 그만큼 확실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안정감이 《웡카》가 가진 장점이다.


모두에게 달콤함과 감동을

    《웡카》는 자신의 마법 같은 초콜릿으로 디저트의 성지 '달콤 백화점'에 가게를 열고 싶다는 꿈을 가진 청년이다. 꿈과 열정이 가득하지만, 그 길순탄치 못하다. 스크러빗 부인의 계략에 빠져 세탁소에서 강제 노역을 하고, 달콤 백화점을 독점한 초콜릿 카르텔 3인방의 견제와 핍박을 받으며 죽을 고비를 넘긴다. 하지만 초콜릿에 대한 일념과 동료들의 도움이 있기에, 웡카는 결코 지지 않는다. 마침내 그는 더 많은 사람들과 초콜릿을 나누고 싶다는 꿈을 이뤄낸다. 카르텔이 독점했던 초콜릿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달콤함을 선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웡카는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간다.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초콜릿 공장을 세우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그의 상상 속에서 공장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렇게 《웡카》의 이야기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시작과 맞닿으며 막을 내린다.

    돈은 없지만 순수한 열정만은 가득한 주인공과 그를 반대하는 악당, 조력자의 도움과 함께 꿈을 이루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권선징악'의 서사까지. 우리가 익히 보아 왔던 할리우드 '가족영화'의 전형적인 서사다. 이러한 전형성은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린 시절 웡카의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을 만드는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그 비법을 전수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웡카는 그 비법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는 과정에서 초콜릿에 통달한 초콜릿 메이커가 되었고, 엄마와 재회할 날을 꿈꾸며 초콜릿을 팔기 시작한다. 하지만 카르텔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엄마가 남긴 마지막 초콜릿을 동료들과 나누어먹던 그는 황금색 종이에 적힌 편지-원작의 '골든티켓'을 연상시키는-를 읽고서야 깨닫는다. 초콜릿의 달콤함을 완성하는 건 그 어떤 재료나 기술이 아니라 초콜릿을 만드는 마음이라는 것을.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메시지는 할리우드 영화가 오랜 기간 구축해 온 감동서사의 대표적인 전략이다. 혹자는 이것이 식상한 전개라 말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관객들에게 확실한 감동을 전하는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것이 전 연령대의 관람객을 모두 아우르는 영화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소 교과서적이고 고리타분할지라도 누구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이런 영화의 미덕이다. '시네필'이 아니어도, 배경지식이나 복잡한 서사를 이해하지 못한 관객들도, 누구나 감동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웡카가 초콜릿 독점을 깨고 모두에게 '맛있는 초콜릿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선물했듯, 식상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영화들은 관객 누구나 '감동받을 수 있는 권리'를 선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동지애를 통해 회복되는 가족애

    이러한 익숙함 속에서 나름의 특별함을 찾아보자면, 바로 노동을 매개로 연대하는 동지애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웡카와 그의 동료들은 스크러빗 부인의 부당계약으로 인해 세탁소 강제노역에 시달린다. 이들은 세탁소에서의 착취를 벗어나기 위해 웡카의 초콜릿 판매 계획에 동참한다. 스크러빗 부인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노동자들의 연대를 통해 착취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시도인 셈이다. 노동자들의 연대는 아주 성공적인 결말을 거둔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용주인 스크러빗뿐만 아니라 그를 이용해 자신들의 착취를 강화함은 물론 '달콤함의 정의'를 훼손하는 카르텔을 물리친다. 그리고 이들은 착취의 일터가 아닌, 기존에 일하던 일상의 일터로 복귀한다. 배관공, 코미디언, 전화교환수 등 자신이 원했던 노동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연대의 과정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동지애는 매우 견고하고 끈끈하다. 초콜릿 장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때는 물론 웡카의 초콜릿 가게를 견제하는 카르텔 3인방의 계략으로 초콜릿 가게가 불에 타버렸을 때조차도 그들은 결코 분열하지 않는다. 외부의 공격으로 인해 내부의 결속력이 주춤해지는 모습을 보여줄 법도 한데, 《웡카》 속 동료들은 오히려 서로를 다독일 뿐이다. 서로를 불신할 만한 상황에도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친구와 동료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중요한 열쇠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으로 읽을 수 있다. 나아가,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창작진의 마음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연대도 결국엔 할리우드 '가족영화'의 이상향인 가족애를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말미에서는 카르텔 3인방의 수장 격인 슬러그워스와 웡카의 동료인 누들이 혈연으로 연결된 관계이며, 슬러그워스가 자신의 조카인 누들을 스크러빗 부인에게 버렸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를 통해 고아였던 누들이 자신의 부모를 찾아가는 것은 웡카의 중요한 목표가 된다. 그리고 카르텔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를 보면 코미디언 래리는 부인과 재회하고, 누들 또한 동료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엄마인 도로시의 품에 안긴다. 엄마를 그리워했던 웡카도 환상으로나마 엄마와 만나며 마음속으로 떠나보내지 못한 엄마와 진정한 이별을 한다. 작은 규모지만 노동조합을 연상시키는 이들의 연대를 통해 보여준 참신한 관계의 서사가 결국엔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되며 흐릿해진다. 가족애를 넘어, 더 다양한 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더라면 익숙한 감동 속에서도 새로운 영화적 감동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원작과의 연결성을 높이기 위함이겠지만, 그래도 움파룸파와 손을 잡고 공장을 꾸려나간다는 점이 나름의 시도라 볼 수도 있겠다. 이러한 관계성이 더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쓰라린 현실을 이겨내는 달콤함

    《웡카》는 제작 단계부터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의 프리퀄이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그만큼 아쉬움도 커지는 법이다. 《웡카》를 관람한 이들의 리뷰를 살펴보면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비교했을 때 프리퀄로써의 연결고리가 허술하다거나, 스펙터클이 부족하다는 평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동의하는 바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 입장에서 《웡카》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보다 원작을 오마주한 새로운 영화에 가까워 보인다. 기존의 영화는 물론 소설에서 윌리 웡카의 서사 가 많이 다루어진 바가 없는 만큼, 그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은 프리퀄을 만드는 창작자의 마음이다. 하지만 원작과 프리퀄 사이의 간극은 언제나 팬들에게 상당한 아쉬움을 남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웡카》가 익숙하지만 확실한 달콤함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 팀 버튼은 이전까지 경해보지 못한 낯설고도 화려한 맛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대표적인 감독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도 그는 새로운 맛으로 관객들의 환상을 자극했다. 하지만 《웡카》는 익숙한 달콤함으로도 충분히 관객들을 매료시킬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한다. 콘텐츠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시대, 신선한 즐거움을 갈망하는 관객들을 향해 "이것이 당신이 잊고 있던 맛입니다"라고 어필하는 듯 보인다. 특히 《웡카》의 흥행에 대해 일각에서는 블록버스터 경쟁작이 없는 시기를 잘 공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어쩌면 새로움에 대한 강박으로 자극적인 작품을 선보여 온 영화계 속에서 잔잔하지만 그리웠던 '아는 맛'을 향한 관객들의 그리움이 투영된 결과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상의 모든 좋은 일은 누군가의 꿈에서 시작했단다." 현실 앞에서 쓰라린 좌절을 마주할 때면 웡카는 엄마의 말을 되새긴다. 꿈속에 존재하는 좋은 일을 현실로 만드는 것, 어쩌면 이것이 《웡카》같은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누군가에겐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1964)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파라마운트픽처스의 《윌리웡카와 초콜릿 공장》(1971)이, 이후의 누군가에겐 팀 버튼과 조니 뎁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이 그래왔던 것처럼, 폴 킹과 티모시 샬라메의 《웡카》는 언젠가는 현실이 되고야 말 꿈의 시간들을 선사한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다 해도 이런 영화들이 있기에 우리는 믿을 수 있고, 또 믿게 된다. 꿈속의 좋은 일이 언젠간 내게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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