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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서 May 27. 2024

아이돌을 집어삼킨 학교 이데올로기

MBC <소년 판타지: 방과후 설렘 시즌2>

2023년 제 26회 방송문화진흥회 시민의비평상 입선하고 <정교한 초현실의 현실화를 꿈꾸다>(한울, 2023)에 수록된 원고를 일부 수정/보완한 것이다. 이 글은 2023년 3월 30일부터 6월 8일까지 MBC에서 방영된 11부작 오디션 프로그램 <소년 판타지: 방과후 설렘 시즌2>(이하 <소년 판타지>)를 비평의 대상으로 한다.


아이돌, 주류가 된 저항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 있어.

(...)

됐어(됐어) 이제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 「교실 이데아」(서태지와 아이들, 1994)


    K-POP 문화의 시원(始原)을 말할 때면, 대부분 ‘서태지와 아이들’을 언급한다. 그들은 학교 교육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의 관념들에 대한 저항을 노래하며 청소년들을 사로잡았다.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라고 말하는 경쟁적 교육제도에 대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다고 외쳤다. 10대를 중심으로 한 저항문화의 탄생이었다. 그렇게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중음악을 넘어 대중문화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체계적인 프로듀싱이 더해진 ‘1세대 아이돌’이 등장한다. H.O.T.와 젝스키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러했듯 여전히 교육제도에 저항했고, 청소년들은 열광했다. 기획사라는 자본의 힘이 더해졌지만, 여전히 저항은 이들을 상징하는 주요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모든 저항문화도 언젠가는 주류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저항으로 시작된 아이돌문화도 마찬가지다. 1세대 아이돌의 탄생 이후 아이돌 제작 시스템은 점차 체계화되었고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제작을 담당하는 기획사들은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저항이 아닌 주류사회를 이끄는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와 함께 아이돌을 주축으로 한 K-POP 또한 저항의 감각을 점차 잃어갔다. 본색을 드러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K-POP 문화의 진정한 목표는 사회구조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저항심리를 가지고 있는 10대 고객들을 마케팅적으로 공략하는 것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마케팅의 성공과 함께 10대들의 저항문화 속으로 파고든 K-POP 산업은 이제 그들이 저항하고자 했던 경쟁 중심의 교육제도를 더욱 충실히 흡수하며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아이돌 산업을 지탱하는 연습생 제도가 대표적인 산물이다.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새로운 아이돌 그룹을 탄생시키는 서바이벌 오디션은 방송사를 막론하고 흥행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되었고, 또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본 고에서는 가장 최근에 방영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소년 판타지>를 통해 한국의 아이돌 문화를 점령한 학교 이데올로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장르의 문법에 더해지는 학교의 언어

중간고사 나 한번 잡아봐라,
기말고사 화나면 잡아봐라,
내신성적 화나면 이겨봐라,
수능시험 내가 일등이야

- 「학원별곡(學園別曲)」(젝스키스, 1997)


    모든 장르에는 나름의 문법이 있다.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에는 서바이벌 오디션을 통해 신인 아이돌 그룹을 론칭하는 포맷이 그 중심에 있다. 2015년 Mnet에서 방영된 <프로듀스 101>을 필두로, 많은 방송사들이 아이돌 연습생 오디션 프로그램을 선보여왔다. 이 과정에서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1]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고 그 문법 또한 견고해지고 있다.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참가자들 개개인의 기량 발휘와 경쟁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의 오디션과 달리 최종 우승 혜택인 ‘아이돌 그룹 데뷔’라는 목표하에 그룹의 기준에 적합한 멤버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끊임없는 교육과 연습을 경험하며, 이 과정에서 이들의 성적은 ‘등급’의 형태로 평가된다. 주어진 교육과정 하에서 매 학기 시험과 성적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평가받으며, 대학 합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학교 시스템과 상당히 닮아있는 문법이다.


    <소년 판타지>는 자신들이 속한 장르의 문법들을 충실히 구현해 낸다. 심지어 이러한 문법에 학교의 언어를 더해 학교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한다. 시리즈 전작(前作)의 주제목이자, 본작(本作)의 부제목인 ‘방과후 설렘’만 봐도 그렇다. 방과후란 ‘학교에서 그날 정해진 과업이나 과제를 끝낸 뒤’를 뜻한다. 즉, ‘학교’라는 이데올로기를 전제한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표현을 제목으로 채택했다는 것은 <소년 판타지>가 학교 이데올로기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선언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소년 판타지>에서의 활동은 ‘파이널’과 ‘세미파이널’ 이전까지 총 4개의 관문으로 구성되는데, 각각의 관문은 모두 1학기, 2학기, 3학기, 4학기라는 학기제의 형태로 명명된다. 매 학기 마지막에는 시청자투표를 통해 결정된 순위를 바탕으로 탈락자를 발표하는 ‘순위 발표식’이 진행되는데, 이는 학생들의 성취도를 평가하기 위한 기말고사를 연상케 한다.

    최초의 관문인 1학기는 ‘입학평가’인데, 해당 평가를 통해 참가자들이 본격적인 학교 이데올로기로 진입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특히 입학평가에서 학생들이 학생증을 태그하면서 평가 장소에 입장하도록 한 연출은 이러한 암시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낸다. 참가자들은 입학평가에서 받은 성적에 따라 1~3등급으로 배정되고, 그 중 3등급에 해당하는 학생 20명 중 5명만이 트레이닝과 재평가를 통해 프로그램에 최종적으로 합류한다. 이는 상대평가에 기반한 학교 교육의 석차등급제 시스템, 그리고 학업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보충학습 시스템과 맞닿아있다. 이렇게 참여자들은 아이돌을 꿈꾸는 한 명의 학생으로써 아이돌 산업이 만들어 낸 거대한 학교 이데올로기의 일원이 된다.


    <소년 판타지>는 학교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활용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참가자들이 학교 시스템에 속해있음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참가자들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이는 시그널송 「FANTASY」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들은 교복을 입은 채 학교 교정을 연상시키는 공간을 누비는 방식으로 영상이 구성된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는 이들이 학교 안에 속해있다는 사실이 각인된다. 또한, 촬영 기간에 이들이 생활하는 합숙소는 고등학교의 기숙사의 컨셉을 차용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진행되는 신체검사 등의 프로그램 또한 학교의 기숙사 운영 방식과 닮아있다.

    기숙사에서의 일과나 연습과정에서 모든 참여자들이 동일한 교복이나 체육복을 입고 생활한다는 점에서도, 복장 규제를 통해 학생을 통제하는 학교의 시스템과 높은 유사성을 보인다. 영국의 사회학자인 폴 윌리스는 『학교와 계급재생산』에서 옷이라는 소비재는 반(反)학교문화의 구성원들이 학교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대표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보았다.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이 복장을 둘러싸고 이루어지며, 학교의 복장규제 또한 여기서부터 비롯된다[2].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참여자들의 복장을 획일화하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을 넘어 학교 이데올로기를 더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참여자들 또한 복장규제 속에 생활하면서 프로그램이 주입하고자 하는 학교 이데올로기에 더 쉽고 자연스럽게 순응하게 된다.


    <소년 판타지>에서는 학교의 시각적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기존에 재생산된 포맷을 활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참가자들간의 오해를 해소하고 진심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코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너 나와!”이다. 한 명의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를 지목하면 이들이 서로 복싱 글러브를 낀 채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것은 학교를 배경으로 구성원들이 복싱 링 위에 올라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나누는, 2005년 방영된 <해피선데이>의 ‘자유선언: 주먹이 운다>를 연상시킨다.

    심사자의 역할을 겸하는 프로듀서와 참가자들의 관계에서도 학교 이데올로기가 여실히 드러난다. <소년 판타지>의 심사자는 참가자를 평가하고 심사하는 역할을 넘어, 참가자를 지도하는 교사의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특히, 보컬트레이너와 같이 일상 속에 밀착해서 테크닉을 가르쳐주는 ‘교과 교사’가 함께 존재하고, 심사자들은 인성교육과 생활지도, ‘원 포인트 레슨’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참가자들의 담임교사의 역할과 상당 부분 닮아있다. 사실 이렇듯 담임교사와 심사자의 역할이 결합하는 것 또한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 장르의 문법이기도 하다. <소년 판타지>는 여기에 더해 이들에게 직접 아이돌 그룹 제작을 담당하는 프로듀서의 역할도 함께 부여함으로써, 심사자와 참가자 간의 사제(師弟) 관계를 통해 학교 이데올로기를 견고하게 만든다.



'아이돌스러움'이라는 강박과 주체성의 상실

열 맞춰! 무조건 억제하고 다그치고
열 맞춰! 낙오하면 버림받고
열 맞춰! 모든 개성들은 잘라버려.

- 「열맞춰!」(H.O.T., 1998)


    연습생을 교육하는 시스템에서 한발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교육의 내용과 가치 측면에서도 학교의 시스템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학교 교육이 지적 욕구의 충족과 학문적 탐구가 아니라 주입식 교육을 통한 지식의 습득에 열중한다는 것은 시민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이것은 아이돌 산업의 연습생 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가수이자 아티스트로써 가진 예술적 역량과 예술관 등을 발견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가창력과 안무 등의 테크닉을 충실히 습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 과정에서 연습생들은 개성과 주체성을 상실하고, 시스템이 요구하는 기량을 완벽하게 체화할수록 ‘실력 있는’ 아이돌로 평가받는다.

    <소년 판타지>의 참가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소년 판타지>에서는 참가자들의 음악적 취향이나 스타일은 중요하지 않은 요소로 판단된다. ‘아이돌스러운’ 역량과 테크닉의 습득 여부가 중요할 뿐이다. 이들은 평가를 위한 노래를 선곡할 권한조차 없다. 이미 정해진 노래에 편입될 뿐이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예술적 정체성 대신 자신의 분량과 기술적 완성도에 초점을 맞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음악적 스타일에 선행하는 ‘아이돌스러운’ 테크닉은 마치 강박처럼 느껴질 정도다. 심지어 이것은 이들이 가진 음악적 실력 혹은 성취와는 무관하게 주어진 테크닉을 습득한 정도를 재단하는 방식에 가깝다. 심지어 한 참가자는 “보컬적으로만 보면 노래를 제일 안정적이고 시원하게 잘했”음에도 “아이돌을 뽑는 소년판타지에 어울리지 않는 색을 입고 있는 느낌”이라는 평가를 받고 “내 목소리는 필요 없는 목소리”라며 좌절한다. 참가자가 가진 고유의 실력이 아닌 아이돌 산업이 ‘요구하는’ 테크닉만을 강박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것이다. 학교가 ‘학생다움’을 요구하듯 연습생은 ‘아이돌스러움’을 요구하며 이들에게 ‘아이돌스러운’ 스타

일을 주입한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가진 실력의 무가치함을 마주하고 음악적 주체성을 상실해간다. 제도가 요구하는 교육과정에 대한 습득만이 가치있게 평가받고, 그 외의 지적 탐구는 무용(無用)한 것으로 여겨지는 학교 이데올로기처럼 말이다.

    아이돌스러움에 대한 강박은 <소년 판타지>라는 제목에서부터 예견된 바이기도 하다.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당신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줄 소년에게 투표하세요”라고 말하며 시청자들의 투표를 유도한다. 이것을 역으로 말하면, ‘소년’들은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중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소년 판타지’는 기성세대의 문화를 충실히 습득한 청소년들에게 붙여지는 ‘학생다움’이라는 형용사와 맞닿아있다. 즉, K-POP 산업이 추구하는 ‘아이돌스러움’은 ‘소년 판타지’라는 형태로 변형되어 제목에서부터 강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돌스러움이라는 강박은 이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근본적 요소가 된다. 애초에 출연자들이 주체성을 획득할 기회는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들을 심사하는 심사자들은 주체성을 확보하고 있을까? 사실 심사자들 또한 ‘아이돌다움’을 완벽하게 학습한 존재들이다. 현역 아이돌만로 심사자를 구성한 <소년 판타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입된 ‘아이돌다운 테크닉’을 고스란히 참가자들에게 전수한다. 참가자들의 다양성을 획일화하겠다는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들이 성공한 것처럼 참가자들도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이것은 학교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학생들의 성공을 바라며, 진정한 지적탐구보다 교육과정과 대학 입시를 위한 교육만 진행할 수밖에 없는 학교의 교사들처럼 말이다. 이렇게 <소년 판타지>의 심사자들은 교사의 역할을 수행하며 학교 이데올로기를 강화한다.


    심사자와 함께 또 다른 평가의 주체인 시청자들은 어떨까?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기존 오디션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시청자들의 참여인데, 참가자들의 데뷔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투표이기 때문이다. <소년 판타지>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투표는 마치 시청자들의 주체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신이 직접 아이돌을 선택한다고 믿는 시청자들마저도 사실은 카메라의 선택을 받은 모습만으로 평가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선택의 근거가 되는 것은 모두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반영한 제작진의 시선이다. 게다가, 시청자들마저도 거대한 아이돌 시스템의 질서를 학습한 ‘덕후’들이기 때문에, 아이들다움을 충실하게 내재한 참가자에게 투표하게 된다. 결국엔 이들마저도 <소년 판타지>가 내재한 학교 이데올로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과거의 아이돌 산업이 ‘유사연애’에 기반했다면 최근에는 ‘우리 애를 데뷔시키고 말겠다’는 ‘학부모의 마음’이 더해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시청자들의 이러한 선택 또한 자녀의 관심과 취향보다는 교육과정의 충실한 습득과 대학 합격을 통해 자녀의 성공과 행복을 바라는 학교 이데올로기 속 학부모의 역할을 떠올리게 한다. <소년 판타지>는 이렇듯 시청자마저도 아이돌 산업에 내재된 학교 이데올로기에 편입시킨다. 참가자와 심사자, 시청자는 모두 주제성을 상실한 채, 학교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역할을 재현할 뿐이다.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또 다른 학교의 탄생

Oh oh oh 누가 이기는지 해볼래
Oh oh oh oh 이 기회는 못 참지

- 「FANTASY」(<소년 판타지> 시그널송, 2023)


    <소년 판타지>는 이렇듯 학교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하지만 이것이 비단 <소년 판타지>로 대표되는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이들이 이러한 질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프로그램이 모방하고 있는 것은 대형 기획사 중심의 연습생 양성과 아이돌 제작 시스템이다.

    심지어 최근의 아이돌 산업은 학교 ‘이데올로기’를 넘어 학교 그 자체로 변화하고 있다. 2022년, SM엔터테인먼트는 종로학원과의 합작을 통해 SM의 음악성을 교육하는 기관인 “SMU(SM Universe)”를 설립을 시도한 바 있다. 학력인정기관으로의 인가에는 실패했지만, 검정고시 준비과정을 교육과정에 편성하며 학교의 기능까지 흡수한 형태로 운영 중이다[3]. 또한 HYBE의 방시혁 의장은 Bloomberg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아이돌 트레이닝 시스템을 체육분야에서의 국가대표 훈련, 혹은 클래식음악과 무용에서의 아티스트 양성과정에 빗대어 설명한 바 있다[4]. 뿐만 아니라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나 한림예술고등학교 등은 이미 수많은 아이돌을 배출한 ‘아이돌 명문학교’로 자리매김했다. 학교 이데올로기가 아이돌 산업을 잠식하는 것을 넘어 ‘아이돌 학교’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탄생시킨 것이다.


    물론, K-POP 산업이 나날이 성장하면서 산업을 지탱할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돌스러움’에 대한 강박에 기반한 학교 이데올로기로 대중음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소년 판타지>는 단 한 번도 1%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할 만큼 대중을 사로잡지 못했다는 사실을 봐도 그렇다. 장르의 문법을 넘어 고착화 되어버린 양산형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는 급변하는 대중음악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소년 판타지>의 교훈이기도 하다.

    미디어 연구자인 신윤희에 따르면, 오늘날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킴으로써 대중의 기획력을 빌려와 방송의 자본력을 활용하고 있다[5]. 즉, 대중과 방송을

기획과 자본의 도구로 바라보는 것이다. 실제로 <소년 판타지>를 통해 데뷔한 그룹의 프로듀싱을 담당하는 포켓돌스튜디오는 프로그램의 공동 제작사로 이름을 올렸다. 방송이 기획사의 아이돌 프로듀싱 과정의 채널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국이 학교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유통 채널로 전락해버린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차별적으로 양산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현행 학교 시스템을 비판하는 대안적 목소리와 시도들이 조금씩 대두되고 있다. 학교 이데올로기 하에 놓인 아이돌 산업에서도 그런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학교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새로운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고착화된 프로그램의 관습적 양산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TV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의 TV프로그램이 관습과 이데올로기를 답습하는 대신, 대중문화의 또다른 판도를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1] 일반적으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이돌 데뷔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프로그램까지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 글에서는 연습생들이 모여 시청자 투표를 통해 신인 그룹을 프로듀싱 하는 것을 목표로 제작되는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추어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 명명하였다.

[2] Paul Willis (1978). Learning To Labour. (김찬호·김영훈 (역) (2004). 『학교와 계급재생산』. 서울: 이매진. 64-66쪽.)

[3] SM Universe 홈페이지(http://www.smuniverse.com/sub/smu2_1_1.php).

[4] Bloomberg (2023.10.13.). HYBE’s Bang Si-Hyuk on Making Music for the Masses. https://www.youtube.com/watch?v=wfgu3sj_mQQ. 5분 00초부터

[5] 신윤희 (2019). 『팬덤 3.0』. 서울: 스리체어스.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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