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건널목 교차로》는 팀 티티새가 제작하고 조승혜가 작/연출하였으며, 제6회 페미니즘연극제의 일환으로 2024년 7월 17일부터 24일까지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공식 초연한다. 본 리뷰는 2024년 6월 6일부터 8일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실험무대에서 진행된 졸업공연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공연사진. 김하영)
기찻길과 차도가 만나는 건널목 교차로에는 “갇혔을 땐 돌파하시오”라는 표지판이 있다고 한다. 기찻길을 통과하지 못했는데 차단기가 내려갔다면, 차단기를 부수게 될지라도 빠르게 통과하라는 뜻이다. 무언가를 부수며 ‘돌파’하라는 명령은 상당히 과격하게 느껴지지만,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와 속도로 달려오는 기차를 생각하면 피해를 가장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연극 《건널목 교차로》는 이와 같은 도로 위의 규칙을 통해 성소수자들의 ‘커밍아웃(coming out)’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가득한 사회에서, 그들은 마치 기차가 달려오는 철로 위에 선 자동차와 같은 공격을 받는 처지에 놓인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돌파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커밍아웃이다. 자신을 가두고 있던 벽장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것(coming out of the closet)[1]처럼, 커밍아웃은 성소수자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돌파하기 위한 선택이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서율은 이모인 윤정과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집엔 이모의 동성 배우자인 지원도 함께 거주 중이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이모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하는 서율의 눈에 지원은 탐탁지 않은 존재다. 지원 또한 그런 사실을 눈치채고 있지만, 애써 외면한다.
한편 서율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도연은 어떻게든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아웃팅 당했기 때문이다. 친구도, 운동부 생활과 체대입시도, 가족들과의 관계까지도 잃어버린 도연의 삶에서 유일한 안전지대가 되어주는 것은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활동가인 지원과의 상담 시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서율은 도연에게 사실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한다. 도연은 서율의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에 당황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질감에 기반한 우정과 신뢰를 쌓아가기 시작한다. 이후 서율은 자신을 돌아보며 어쩌면 윤정과 지원을 미워했던 것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둘러싼 혼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나긴 고민 끝에 마침내, 서율은 지원에게 윤정에게 커밍아웃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돌파해 나간다.
하지만 커밍아웃 이후 이들 사이는 오히려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한다. 윤정과 지원은 자신들이 부부라는 사실을 밝히는 태도에 대한 미묘한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는다. 결국 지원은 윤정과 잠시 시간을 갖기로 결정하고 집을 떠난다. 한편 서율과 비밀을 공유하며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도연은 어느 순간부터 서율이 자신의 인사를 조금씩 피하고 있다며 서운해한다. 자신이 경험하는 혼란과 고민들이 서로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마치 교차로처럼, 서로 다른 길을 향해 가는 듯 보였던 그들은 다시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도연의 성적 지향에 대해 혐오적인 태도를 보인 학생과 서율 사이의 다툼이 생기고, 도연이 힘을 보태며 큰 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서율의 보호자인 윤정이 학교로 찾아오고, 도연은 부모님 대신 지원을 보호자로 호출한다. 그렇게 네 사람은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윤정은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담임교사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지원의 신원을 보증하며 사건이 일단락된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윤정의 차 안에서, 서율과 지원, 윤정은 서로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서로의 마음은 물론 자신이 겪고 있던 혼란을 진솔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며 이전의 친밀했던 관계를 조금씩 회복해 나간다. 지원과 윤정은 재결합을 결심하고, 서율과 윤정, 그리고 지원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가족이 된다. 도연은 서율과 우정을 쌓아가며 세상의 시선을 돌파해 나갈 용기를 얻는다.
누군가의 삶에 있어 커밍아웃은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다. 당사자는 물론 상대방에게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커밍아웃이라는 ‘순간’에 집중한다. 그러나 커밍아웃은 단 한 번의 벽장문을 열고 나오는 것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깨닫게 된 후, 그 사실을 인정한 후 수용하는 시간을 거쳐, 이것을 주변인과 공유하고 나아가 성소수자 커뮤니티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이어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2]. 또한 커밍아웃은 단 한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 살면서 만나게 될 복수의 사람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즉, 한 순간에 종결되는 사건이 아닌, 그 전과 후의 시간을 관통하며 지속되는 돌파의 여정인 셈이다.
《건널목 교차로》는 네 명의 레즈비언 인물들이 지나온 각기 다른 삶의 맥락 속에서 커밍아웃의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서율은 오랫동안 외면해 온 성적 지향을 인정하고 커밍아웃을 결심하며 돌파를 시도한다. 도연은 아웃팅 이후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한 돌파의 순간들을 마주하며, 학교라는 획일적 공동체를 떠나 고민과 혼란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길 기대한다. 하지만 지원과 윤정이 보여주는 성인 레즈비언의 삶은 그의 기대와 달리 여전히 녹록지 않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긍정하며 동성 결혼까지 선택했음에도, 여전히 기나긴 갈등과 혼란의 시간을 통과하며 힘겨운 돌파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은 커밍아웃을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지속되는 돌파의 여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넘어 그들의 존재 자체를 지우기 위해 노력한다. 성소수자들은 벽장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스스로를 더 깊숙이 가둬놓는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발견할 수 없게 되고, 자신을 드러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과 같은 지향 혹은 정체성을 가진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다. 극 중 서율이 커밍아웃을 할 용기를 얻었던 것도 도연과 윤정, 지원이라는 레즈비언들과 함께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연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혐오하는 학생들에 맞서 지지를 보내준 운동부 친구들을 보며 세상을 돌파해 나갈 용기를 조금씩 키워나간다. 그리고 《건널목 교차로》 속 인물들이 어떤 성소수자 관객에게는 벽장 밖을 나와 돌파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줄 것이다.
《건널목 교차로》가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에겐 이러한 공연의 존재 자체가 지지와 연대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또한 극장이라는 하나의 시공간에서 무대 위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곁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전함’의 감각을 선사한다. 특히 《건널목 교차로》는 한국 연극에서 쉬이 다루어지지 않았던 레즈비언 인물들의 서사를 선보이며, 더 많은 이들에게 극장에서의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비록 연극은 대학로의 극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지지만, 《건널목 교차로》가 만들어내는 안전지대는 공연 이후의 일상을 살아가는 관객들의 삶을 통해 극장 밖 세상으로 확장될 것이다. 극장 밖의 세계에서 극장 안에서와 같은 안전함을 감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세상을 향한 돌파를 이어갈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함께, 돌파할 것이다. 힘겹게 돌파하지 않아도 누구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세상이 찾아올 때까지.
[1]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행위를 뜻하는 ‘커밍아웃(coming out)’은 ‘벽장 밖으로 나온다’는 뜻의 ‘coming out of the closet’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2] 이지하. “성소수자와 가족, 우리들의 커밍아웃,” (한국성소수자연구회,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경기 파주: 도서출판 창비, 2019), 155-168쪽), 1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