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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way of seeing Sep 18. 2022

Egreenlife 걷기의 미학 ep.1

걷기를 시작한 이유. 걷기의 의의

새로 연재를 시작하는 이 글은, 어쩌면 가을 한 계절을 넘어 나를 위한 시간들을 위한 기록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 글쓰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오늘의 건강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글에는 감정을 새기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그게 좋은 감정이든 좋지 못한 감정이든,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글을 쓰는 시간과 글을 쓰는 이유를 명확하게 기록하게 하고, 자칫 휘발되어 날아갈 것 같았던 잠깐의 즐거움도 꽤나 오래 붙잡아 두는 힘이 있다.

어머니는 나에게 7살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 쓰기를 시켰지만,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 일기 쓰기를 그만둔 이후도 그와 같이 스쳐지나가는 감정 모두를 남길 필요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걷는 동안의 감정을 이렇게 글로 남기는 이유는,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과거의 내가 스친 귀한 깨달음들을 미래의 나와 이 글을 읽는 이에게 나누고 싶어서이다.


처음 걷기를 시작한 이유는 

오롯이 건강을 위해서였다. 

올여름, 나는 존경하는 교수님과 신뢰하는 동료와 프랑스에 잠시 다녀왔었고, 그 간에 2년 동안 공부를 핑계로 멈추었던 걷기의 불씨를 8,960 km 먼 Vista 정원의 나라에서 다시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고 20분인 파리 시내 곳곳의 우리의 목적지들은 걸어서는 25분, 30분이기 일수였고, 

그 시간은 둘 중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르기에 퍽이나 애매하여서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교수님을 짧게나마 고민스럽게 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역시나, 나보다 훨씬 건강하시고 튼튼하신 내 교수님은 시끄럽고 좁은 지하철보다는 '센 강'을 가로질러 가로수에 떨어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나와 내 동료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기를 즐거워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어쩌면 타의시작되었고, 자의였던 사만보씩 걸어서 파리 투어는 나름으로는 걸음의 즐거움을 다시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오늘까지 쭉, 시간이 난다면 새벽 시간이나 밤 시간을 쪼개어 하루에 1시간 이상 걸음을 위해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하루를 쓰는 시간을 고르라면, 나는 이 걸음의 한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또 내 가족의 안녕을 위해 쓴다고 말하고 싶다.





나의 산책 코스는 운이 좋게도 서울의 대표적 경관축을 따라 펼쳐지는데, 두 블록을 지나 보이는 예술의 전당을 바라보며 밤바람을 맞으면서 우선은 걷는다. 




처음 걷는 동안은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들이나 남아있는 감정들을 정리하는데 보통 1km가 쓰이는 것 같다. 인지 과학적으로, 뇌 속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감정, 또는 '화'는 50초 정도만 유효하게 지속되는데, 이 이상 같은 감정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나 스스로 그것을 되새김질하기 때문에 뇌에서 계속 '인지'하고 있는 인식이라고 한다.



우선, 그런 것들 중에서 뭐가 흘러야 하는 것이고, 뭐가 남아야 하는 것 인지를 솎아 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비워지고, 머리는 투명해진다.


곧, 예술의 전당으로 올라가서 우면산의 산 바람을 맞는다. 체력이 된다면 우면산으로 야간 산행을 가도 좋다. 그렇게 바람처럼 걷다 보면 2km는 금방이다.

이 바람을 단어로 굳이 정리하자면, '하루의 인사'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바람 속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그 날의 온도, 습도, 심지어 사람들의 밀도까지도...ㅎ)

잠깐 스쳐 지나가는 또는 시작하는 하루와 24시간의 변화를, 계절의 변화를 짧은 시간이지만 강렬하게 체감한다.




그렇게 몇 바퀴 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 피어있는 나무들,  거리의 스치는 불빛들과 함께 멀리 누애 다리를 바라본다.





잠시 빌렸다 가는 이 지구에서 누군가 나보다 부유한 이의 자본을 비뤄 만든 이 멋진 도시를 나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바람 하나 빛 하나 다 놓치지 말고 나의 안녕과 내 가족의 안위를 위해 잠시 빌려 쓰는 감사한 시간이다.



걷다가 오늘, 무릇 이런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 '조경'의 의미를 묻는다면, 

나와 내 가족의 삶의 풍족하게 하고자 했던 

누군가 이름 모를 타인의 마음이 

다른 타인의 스치는 일상 속에 스며드는 모든 장면들이라고.



각자의 프레임 속에서 각자의 배경 음악에 맞춰 흐를 씬, 
그 멋진 장면을 위해 공공과 개인 그리고 오늘의 계절이 만들어준 멋진 배경




여러 의미를 찾아가는 일 중에서,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오늘은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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