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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현 Mar 02. 2024

애상

哀想




고개를 들어 잠깐 통유리 너머에 시선을 두었다가

뿌연 하늘색이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려 있어 쓸데없이 옷깃을 여미었다.

오늘은 십년지기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

어지러진 바탕화면이 보기 싫어 대충 아무 폴더나 만들고 문서를 쓸어 담았다.

지금 출발하면 늦진 않겠지 아마도.


스무 평 남짓한 작은 이자카야 가게는 이미 때 이른 취객으로 가득하다.

종업원은 마지막 남은 구석 자리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한잔, 두잔 술잔을 비워낸다, 내가 너를.


취기가 오를수록 네가 보인다 나는.

바 반대쪽 구석에는 어느 젊은 여자가 혼자 소주잔을 홀짝이고 있었다.  

친구 어깨너머로 그녀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소주잔을 비워냈다.


갑자기 테이블 위에 올려둔 휴대폰을 노려본다.

이어폰을 끼고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그녀는 무언가를 애타게 전하고 있었다.


주변 소음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단지 그에게 닿지 않는 자기 목소리를 탓하며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이었다.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나에게 닿지 않는 네 목소리를 탓하며,

너에게 닿지 않는 내 목소리를 탓하며

무언가를 애닯게 읊조리고 있었던 것이다.


삼십 대의 술자리는 마감 시간이 빠르다

열한 시가 조금 지나서 자리를 파하고

각자 갈 길을 갔다.


내일은 너를 만나러 가야 하는구나

강을 넘고, 산을 넘어 네게 가야 하는구나


닿지 않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닿지 않는 로의 목소리를 탓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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