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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아저씨 May 19. 2022

거시적 허무함에 대한 해석

미시적인 삶의 단편에서 인생을 음미하다.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영웅 중심의 거시적 세계관 속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특별함이란 없다. 저 미디어를 달구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존재를  변방의 끝 미천한 존재로 밀어낼 뿐이다.


하지만 허무주의에 매몰되어 스스로 살아가야  의지를 상실할 필요는 없다.


거시적 세계관 속 삶에서 평범함이란 여름날 뜨거운 뙤약볕 아래 함박눈이 내리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거시적 관점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미시적 관점에서 짧고 간결하게  필요가 있다.

미시 세계에서는 양자역학으로 해석되는 모든 입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의식한  상호작용한다. 과학자들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우주의 모든 입자는 모두 고유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보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 나를 이루고 있는  자체가 존재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살아있는 사실 자체를 음미하게 되는 문장이다


집집마다 서재에는 위인전이 있다. 특히, 어린아이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책꽂이의 가장 명당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위인전을 참으로 많이도 읽었다. 그것이 거대한 업적에 대한 욕망의 씨앗이 되어 자라났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인생을 성공이라는 척도로 판단하는 사회에서 앉을 수 있는 좌석은 너무나 한정적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평생을 도시민으로 살아온 나에게조차 서울은 과도하게 붐비는 곳이다.


그런데 성공과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은 욕심은 사그라들지를 않는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사람으로 살기를 하고 있다.  자신을 바꾼다는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역설이다.


현대 물리학은 아주 작은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천문학은 우주의 광대함에 대하여 이야기해준다. 그런데 최근 이 두 가지의 전혀 상반된 학문이 점점 가까워진다고 한다삶도 비슷하다. 한없이 큰 인생에는 방향도 답도 없다. 그저 끝없는 욕망만 존재할 뿐이다. 반면 작고 소박한 일들 사이에서는 행복이 있다. 그리고 작은 행복은 나를 실재(實在)하는 존재로 만들어 준다.


지금의 글쓰기도 이와 마찬가지다. 작품을 쓰려고 했다면 오늘의 펜조차도 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때 또 한 편의 브런치 글이 완성되고 있다.







main image : Pixabay로부터 입수된 Stefan Keller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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