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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Jun 15. 2020

리트리버의 코 위에 과자를 올려두고.

'기다려'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몇몇의 사람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보통 나는 글을 적을 때, 유튜브에서 '김동률'을 검색해 그의 명곡 모음을 듣고는 한다. 그렇다고 내게 있어 김동률의 음악이 가장 듣기 좋다는 말은 꼭 아니지만, 적어도 내 귀에는 그의 목소리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흔한 익숙함일 수도 있고, 어쩌면 글쓰기라는 얽매임을 지속하기 위한 또 하나의 작은 얽매임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자유투를 앞둔 농구 선수가 공을 던지기 전 정확히 바닥에 공을 7번 튕긴다던지,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투수의 공하나에 매번 장갑을 뺐다, 꼈다 반복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첨언하자면 아내는 일에 집중해야 할 때면, 반드시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을 플레이시킨다고 한다. 무려 메탈리카라니! 시험 삼아 나 역시 지금 'enter sandman'을 플레이해보지만 이건 전혀 집중할 수 있는 종류의 음악이 아니다. 그러니까 한 줄의 문장도 이어나갈 수가 없다. 물론 좋은 음악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음악으로 나는 절대 자유투를 성공시킬 수가 없을 것이다. 클린 슛은커녕 링에도 닿지 않을 슛을 던질 것이 틀림없어. 그러니까 부부의 세계라는 것은 어쩌면 '김동률'과 '메탈리카'의 협연만큼이나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메탈리카를 지지하는 나의 아내가 절대 지지해줄 수 없는 나의 악습관 하나가 바로 '테이블 두드리기'였다. 테이블 두드리기라 말하면 좀 애매한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두들기며 리듬을 만들어내는 행위였다. 나는 밴드에서 타악기를 가지고 놀았던 탓인지 테이블 앞에만 앉으면 무의식 중에 박자를 만들어가는 습관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어느 식당 한가운데에서 '퀸'의 'We will rock you'의 '쿵쿵 짝, 쿵쿵 짝'하는 박자를 칠 정도의 방자함은 아니었지만, 아내는 유독 그런 나의 습관을 발 빠르게 제지했다. "생각보다 소리가 크다니까"라고.


부부의 세계가 해를 거듭할수록 그렇게 나의 습관은 자연스레 사라져 갔다. 물론 나 역시 소음을 내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질색이기도 하였으며, 리듬을 만들어 낸 것은 악기를 연주하던 습관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지 나는 본디 테이블을 앞에 두고 리듬을 만들어내야 직성이 풀리고야 마는 소울 충만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프리스타일 랩 하나 간드러지게 보여주지 못하는 주제에 'show me the money'의 심사대에 거만하게 앉아있는 래퍼 같은 모양새는 질색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드시'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이 아니던가.


어느 주말 베를린에서 우버를 타고 갈 때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시가 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어에서 '제이미 칼럼'의 'Don't stop the music'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내게는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순간이 된 것이다. 리트리버의 코 위에 과자를 올려놓고 '기다려'라고 명령한다 한들, 코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과자가 아닌 살코기라면 리트리버에게도 '기다려'라고 만은 말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는 조용히 음악에 맞춰 내 무릎을 두드리며 박자를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만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을까. 갑자기 예상치 못하던 일이 일어났다.

나의 박자에 맞춰 또 하나의 엇박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건반에 익숙한 아내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범인은 바로 앞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운전을 하던 아저씨였다. 우리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 4분여간 서로의 박자를 만들어내었다. 더 정확히 나는 그저 나만의 리듬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는 핸들을 두드리며 만들어내는 엇박을 통해 내가 만드는 박자에 하모니를 입혀주었던 것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우리는 별다른 대화도 없이 그렇게 연주를 하고 헤어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 아저씨 역시 어쩌면 '김동률'은 금세 좋아하지 않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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