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숙부 님과의 조우.
한 번은 아내의 작은 외삼촌, 그러니 내게는 외숙부님을 만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동네의 유명한 보쌈집에 가서 정식을 먹었는데 당시 외숙부님을 제대로 뵙고 인사를 드린 적이 처음이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할까. 평소 즐겨먹던 그 보쌈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게 있어서 제법 연령차이가 나는 손윗사람을 처음 대면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적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꼭 한 명씩은 그런 모임에서 제법 사근사근하게 처신을 잘하는 녀석이 있기 마련인데 나로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나이가 들면 좀 나아지려나.
다만 외숙부님을 만나기 전에 한 가지 전해 들은 사항이 하나 있었는데, 외숙부님은 상당히 역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는 것이었다. '이거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소개팅을 나간다한들 '이거 좋아하세요?, 저거 좋아하세요?' 하며 취조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공통 관심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다행히 나 역시 역사를 좋아하는 편에 속하니, '적당히 말 상대를 해드리면 되겠다.'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많고 많은 사람들 속의 많은 관심사 중에 역사에 흥미를 가진 외숙부님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상도동의 유명 보쌈집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판단이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 복기해보아도 떠오르지 않은 그날의 주제는 실로 광범위했다. 그러니까 나의 영토가 불과 조선에 불과했다면, 외숙부님의 영역은 러시아를 넘어선 상황이어서 도무지 그 흐름에 맞춰 상대해드리기가 어려웠다. 러시아의 정세라면, '푸틴이 상의 탈의한 채, 말을 타고 있는 사진 보셨나요?' 정도가 기껏 인 나는 금붕어 마냥 눈만 껌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 참, 러시아라면 그나마 내 지인을 통틀어서도 용진이만이 여행을 다녀왔던 게 전부이다.
어제저녁,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갑작스러운 아내의 요청으로 다시 한번 '카모메 식당'과 '중경삼림'을 보았다. 중경삼림은 벌써 수차례 보았지만 항상 감탄하는 부분은 변하지 않아서, 양조위가 제복을 입고 처음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입을 모아, '캬아아'하고 '저 형은 러닝셔츠에 백양 팬티 차림으로 담배를 펴도 멋있네'하며 감탄한다. 그런데 어제는 잠깐 스치듯 지나간 왕정문의 영어를 듣고 이제껏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재발견했다. '아, 맞다. 이 나라 사람들 사실은 영어 잘했었지!'라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매년을 거듭하며 홍콩, 대만의 사회이슈는 잠잠해지지 않는데, 나는 참 냉정할 정도의 무식함을 유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모르는 것에 대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크게 부끄럽지 않은 직업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최소한 매일매일 세계의 이슈 정도는 읽고 살아야겠다 다짐했다. 다시 한번 외숙부님을 뵈었을 때 '러시아에는 가정집에서 불곰을 키우는 사람이 있더라고요.'와도 같은 이야기나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래서 첨언하자면 현재 프라하, 체코는 전면 '락다운'중 이랍니다.
이 글 역시 작성한 지는 이미 몇 개월이 지났는데요, 그 사이 '락다운'은 2주 정도 잠시 풀렸다. 다시 잠겼습니다. 덕분에 헬스장을 마지막으로 방문한지도 정말 오래된 것 같네요. 물론, 여러분들이 상상하시는 그대로 저는 헬스장을 따질 만큼의 머슬마니아는 전혀 아니고요,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는 것이 비로소 목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 일 수 있기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최근 몇 주간 한국에는 눈이 펑펑 왔다죠. 프라하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얌전하게만 내리던 눈이 연달아 이틀 동안 새벽만을 틈타 신나게 퍼부었습니다. 걷거나 운전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고, 머지않아 길은 엄청나게 더러워지긴 하겠지만. 왜인지 반가워 혼자인 새벽에 밖에 나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세상 조용한 가운데 눈이 내리는 소리를 느끼는 것은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운이 맞아야 만날 수 있는 평화로운 광경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