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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14. 2024

갑사로 가는 길

계룡산 갑사

예상과 달리 갑사로 올라가는 초입의 식당들은 한적했다.

'갑사로 가는 길'이라는 단편소설이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적이 있어

제법 지명도가 높을 법도 하지만 찾는 이가 적어 보인다.


대학시절 친구 둘과 기차 타고 전국을 여행할 때

부여 부소산성의 낙화암과 무녕왕릉을 답사한 후 출발하여

공주 갑사의 진입로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오랜 역사를 말해 주는 듯

아름드리 고목들과 해묵은 기와지붕 위 풀잎들이 피어나는 고즈넉한 산사를 지나

계룡산 중턱에 위치한 남매탑에서 호랑이와 얽힌 전설을 기억해 내고

부지런히 어두운 밤을 헤치고 산을 넘어 동학사에 이르렀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예전의 산길이 포장되어 깔끔해진 도로를 따라 천천히 올랐다.

여전히 아름드리 노송과 느티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어서 반가웠고

갑사 입구에 서있는 황매화(1) 축제를 알리는 입간판에 놀랐다.

봄이 한창 무르익어갈 즈음에 피어나는 희거나 분홍색 매화는 본 적이 있으나

지금껏 노란색 매화는 본 적이 없다.

갑사지구에 전국 최대 황매화 군락지가 있어 4월에 황매화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시기에 맞춰 다시 갑사를 찾아와 노랗게 핀 황매화를 봐야겠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양편에 있는

'갑사동 신도 일동'이 세웠다고 표시된 석등이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상대석에 토끼와 늑대를 쫒는 호랑이가 그려져 있고

등불을 넣어두는 화창이 뚫려  있지 않다.

화사석에는 사천왕상대신 닭 한 마리와 용이 부조로 새겨져 있어 기묘했다.

닭과 용? 어울리지 않는 궁합을 배치한 까닭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니, 주요 능선이 마치 '닭의 벼슬을 쓴 용'처럼 생겼다고 이름 붙여진 계룡산.

그 북서쪽 자락에 420년 백제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갑사라는 절이 있

산 중턱에는 남매의  의를 맺은 호랑이가 짐승을 물어다 주었다는 전설이 담긴 남매탑이 있음을 알리는 것이리라.



오랜 세월 동안 이 길을 지키며 버티고 서 있는

늙어 허리가 잘리고 속이 패인 노목과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늘아래

완만한 경사로 오르다 보면 멀리 제법 큰 누각이 눈에 들어온다.

500년 된 동종이 걸린 작은 종루 앞 '계룡갑사'라는 현판이 걸린 갑사강당 우편 계단을 오르면

최근에 지은 듯 산뜻해 보이는 대웅전이 나그네를 맞이해 준다.



계룡갑사는 신라시대 의상에 의해 화엄도량으로 지정되어 화엄십찰 중 하나가 되었고

정유재란, 병자호란 전란 중에 훼손되고 중건되는 시련을 겪었지만

현재까지도 15칸이 남아있는 애환과 숳한 사연이 서려있는 절집이다.

대웅전 안에 걸려있는 삼세불 불화로 유명하고  

경내에는 조선 왕실의 비호를 받아 판각한 월인석보판을 보관하고 있는 전각이 있다.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쳐 편찬한 월인석보 판각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판목이라고 한다.    

 



추억을 되새기며 다시 찾은 갑사.

모진 비바람과 풍파를 견디어 낸 모습이 아니었다.    

보존을 위해 반짝이는 기와와 화려한 단청으로 새롭게 단장한 탓에

고즈넉한 산사의 모습이 사라졌다.

옛 모습의 유지와 현대 재료로 보강하는 보존 기술을 적절히 배합하여

상투를 옛사람에게 양복을 입히는 누를 끼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옛 것은  옛 것 그대로라야 제 맛과 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내려오는 길에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혔다.

   



(1) 황매화의 정체 : 잎과 꽃이 매화를 빼닮고 색깔이 노랗다고 하여 황매화라 부르고

이름에 매화가 들어가고 같은 장미과에 속하지만 실제 매화와는 촌수가 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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