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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연 Jul 04. 2022

EP.5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노라

220704의 입출력 일지

오늘의 입력

- 사무엘상 21장 ~ 사무엘하 5장

- 디트리히 본회퍼, 교회가 세상에 소망을 말할 수 있을까

   챕터 7. 교회가 세상에 소망을 말할 수 있을까?

   챕터 8.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챕터 9. 하나님께 굴복할 수 있을까?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는가


        인생에서 사울과 다윗은 모두 극심한 두려움의 상태를 마주한다. 그러나 두려움을 마주한 두 사람의 반응은 크게 다르다. 전쟁을 앞두고 길보아에 진 친 사울은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마음이 크게 떨렸다고" 사무엘서에 기록되어 있다. 사울의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블레셋 사람의 군대가 자신의 군대보다 강해 보였던 모양이다. 하나님의 힘에 의지해서 전쟁에 승리한 경험이 거의 없는 사울에게는, 어쩌면 두려움이 엄습한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두려움이 자신을 지배하고야 하나님께 문제를 가져가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신다. 자신의 불순종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갔으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사울을 떠나셨어도 다시 돌아보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이 답변하지 않으시자, 그 자리를 속히 떠나 무당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무당에게 죽은 사무엘을 불러달라고 한다. 하나님이 답변하지 않으셨는데,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이 전쟁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 할리는 만무했다. 사무엘은 이미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넘기셨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과 그 아들들이 전사할 것을 예언한다.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진다.



        다윗은 그와는 달랐다.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 만사를 제쳐두고 자신을 죽이기 위해 찾아다니는 상황이었다. 사울은 다윗을 도와준 사람들은 제사장이어도 모조리 죽이면서 다윗을 추격했다. 다윗은 어느 무엇보다 빠른 의사 결정과 행동이 중요한 상황 속에 놓인 것이다. 그렇지만 다윗은 전쟁에 임할 때도, 행동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그에겐 두려움보다 하나님이 먼저였다. 사울을 죽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자신의 손으로 끌어내릴 수는 없다며 그 기회를 잡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선되시기에 가능한 반응이었다. 아무리 두려워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과 씨름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찬송을 올려드린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하나님을 진노하시게도 하고, 기쁘시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려움에 속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붙들린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비웃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를 비웃으신다는 이야기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사랑의 하나님을 너무 강조한 오늘날의 기독교 컨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즈음엔 더더욱. 그러나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을 들으면, 분명 우리를 조소하신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기드온은 하나님이 명하신 미디안과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군사를 모은다. 그래도 강력한 미디안의 군대를 대적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수의 군대였다. 기드온이 군대를 모은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를 따르는 군대가 너무 많다. 이 많은 수의 군대가 싸워 미디안을 이기면 너희가 잘해서 이겼다는 이야기를 할 테니, 그들을 돌려보내라." 하나님은 처음 군대를 다 돌려보내고 300명만이 남았을 때, 미디안의 수많은 군대를 기드온의 손에 넘겨주셨다.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준비를 해온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돌려주신 것은 조소였다. 아직도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줄 모르고, 승리하기 위한 방비를 해온 기드온에게 진정한 무기와 군사는 하나님임을 보여주셨다. 우리가 준비하는 것, 우리가 이뤄낸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보여주시는 사건이었다. 



        우리가 스스로의 길을 준비하고 계획하려고 하는 주된 이유는 두려움이다. 계획이 있으면 두려움이 없이 앞만 보고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드니까. 하지만 그 결과는 둘 중 하나가 아닌가?

         자만 혹은 절망. 내가 세웠던 계획과 결과물을 비교하면서 성공한다면 '내가 계획을 잘 이수해서 성공한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자만하게 된다. 실패하게 되면, 자신이나 상황을 탓하면서 좌절하거나 낙심한다. 자신의 길을 계획하고 실행하려는 과정은 자만과 두려움을 낳는다. 그런 기드온의 미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비웃으셨던 것이다.



        이쯤 되면, '계획도 못하면, 우리는 희망도 없이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대목이다. 맞다. 우리에겐 소망이 없다.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잘 이행해도 내 삶에 소망을 가져올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소망이 된다.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내가 키를 잡고 간다는 사실은 나를 아찔하게 한다. 풍랑이 일고 배가 뒤집히려 하면, 나는 패닉에 빠질 것이다. 본회퍼 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리스도인만큼 많은 공포와 두려움을 겪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삶을 뒤집기 위해 노력한다. 믿음을 갖고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파도는 더더욱 크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제자들이 배가 풍랑을 만나 죽겠다고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그 배에 타고 계셨다는 사실 말이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 외치고 싶은 내용이다. 내가 예수님을 만난 순간부터, 예수님은 나와 한 배를 타셨다. 사탄이 던지는 두려움의 속박을 받아서 몸에 걸치지 말고, 예수께 내 인생의 키를 내어드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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