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과 취향, 주관을 객관으로 만드는 스튜디오 슬램
최근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비슷한 시기에 런칭되어, 또 한번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서바이벌은 워낙 예능에서 자주 보이는 포맷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노래 서바이벌 '우리들의 발라드'와 '싱어게인4'이 공개되어 최근 출근길에 자주 보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오늘 이야기 할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예능 '저스트 메이크업'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내 생각에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춤, 노래, 요리, 뷰티 등 예체능 관련 서바이벌과, 두뇌 게임 서바이벌.
이미 춤, 노래, 요리, 운동(예를 들면 피지컬 100...) 예체능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대결이라는 점은 너무나 익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메이크업은 이러한 서바이벌에서 근사한 무대를 만드는 장면에 조금씩 노출되는 정도 였고, 특히 서바이벌 보다는 '뷰티예능'을 위한 소재로 더 많이 쓰이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메이크업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그리고 국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문화가 되었다. 특히, 이를 소재로 예능 서바이벌을 만들 수 있었던 것에는 메이크업의 바운더리가 과거에는 쇼, 뷰티 등 정도였지만, k-pop의 영향으로 K-뷰티가 새로운 트렌드가 되며 메이크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평가받고 있는 요즘에 딱 적절한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다만 아직 프로그램이 종영되지 않았기에, 프로그램 방영 이후 얼만큼의 K 뷰티에 해당 프로그램이 영향력을 끼쳤는지 알 수 없는 이 시점에서 이번 글에서는 딱 두 가지, '저스트 메이크업'의 포맷(내용)과 플랫폼에 집중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1. 포맷
스튜디오 슬램은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제작사로 익히 알려져있다.
특히 싱어게인, 크라임씬, 흑백요리사 이 모든 것을 제작한 윤현준 PD는 나영석, 김태호 만큼은 대한민국의 대표 예능 PD라고 생각한다.
흑백요리사의 대성공 이후, 차기작으로 메이크업 서바이벌을 제작하게 된 것에서, 서바이벌에 정말 진심인 사람들이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뭔가 흑백요리사랑 되게 비슷한 포맷으로 제작되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비교해보니 정말 비슷하다.
1라운드는 자신이 제일 잘 할 수있는 필살기 요리/메이크업을 보여주는 라운드
2라운드는 1:1 데스매치 (같은 재료와 주제로 경쟁하며 한 사람은 무조건 패하는 1:1 데스매치)
3라운드는 팀전 (같은 재료, 곡으로 경쟁하는 팀전으로, 이긴 팀은 전원생존)
4라운드부터는 조금 변동이 있다.
- 흑백요리사는 남아있는 인원 중 한 팀은 무조건 탈락하며, 그 뒤 세미파이널을 한번 더 거친다.
- 저스트메이크업은 4라운드에 참여하는 인원은 10명이며, 그중 7명이 탈락하며 바로 파이널로 이어진다.
- 참고로 흑백요리사는 12부작, 저스트 메이크업은 10부작이다.
입맛과 예술은 말그대로 '주관적이다' 그렇기에 비슷한 포맷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면서도 '요리', '메이크업' 각자의 분야에서만 돋보이는 지점을 고려해 다른 연출 방식을 선보인 지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아래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 경쟁 구도
흑백요리사는 흑수저 셰프와 백수저 셰프간의 대결구도가 명백했다. 흑백요리사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흑수저(?)의 흑을 따와 식당 사장이나, 학교 조리사, 유튜버 등의 흑수저 셰프와 레스토랑을 운영하거나 유명 요리 경연대회에 우승하거나, 대가라는 타이틀이 붙은 백수저 셰프가 경쟁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저스트 메이크업은 메인 경쟁 구도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일반 서바이벌과 같은 포맷이다. 그럼에도 1세대 프리랜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부터 시작해 대부분 청담 등 유명한 뷰티샵을 운영하는 대표들과, 메이크업 브랜드의 간판 아티스트 등의 어떻게 보면 메이크업계 짬밥있는 고참 아티스트들
그리고 뷰티 유튜버(물론 고인물도 있다)와 인플루언서, 유명샵의 직원, 심지어 드랙 아티스트 등까지의 신예 아티스트들의 대비구도가 자연스럽게 나눠지며 시청자들은 당연하게 이 구도를 인식할 수 있었다.
워낙 시대의 흐름을 타는 분야이기에, 사실상 신예 아티스트들도 주목을 많이받았지만, 개인적인 느낌 그리고 화제성은 시대의 흐름을 늘 쫓아가며 10년, 20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프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디테일을 화면 너머로 보면, 직업에 괜히 '아티스트'라는 말이 붙은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퍼스트맨님 우승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ㅎㅎ)
# 눈 가리고 음식 먹기 vs 일란성 쌍둥이 메이크업하기
2라운드 1:1 데스매치는 포맷도 같지만, 심사 형태에서도 비슷했다. 지극히 '맛'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가리고, 오롯이 '메이크업'에 집중하기 위해 너무나 닮은 일란성 쌍둥이를 모델로 삼았다.
(일란성 쌍둥이 15쌍을 한 자리에 모은 제작진 광기가 대단쓰.......)
그런데 아쉬운 점은 음식은 오롯이 입을 가리는 행위로 완벽히 다른 요소들을 차단할 수 있었다. (향은 그나마 잠깐나는 거고, 심사에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메이크업은 (내가 잘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메이크업'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의 '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처럼 아티스트들이 헤어와 메이크업까지 다 준비해야 했었기에, 사실 온전히 메이크업에 집중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이 부분은 내가 메이크업을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1화 때 똑같은 60명의 모델이 머리망을 하고 검은 나시와 바지를 입고 했던 라운드가 있었으니까 상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말하는 그 '룩'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추가 설명이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전문적인 심사와 평가가 이뤄지는 서바이벌에서는 가끔씩 문외한인 시청자들을 향한 배려가 있어도 해가 될 건 없다고 생각한다.
# 심사위원
입맛과 예술은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기에 사실 어떤 평가도 정답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이런 영역일수록 '대중'들에게도 다가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점에 있어서 흑백요리사는 대중입맛의 극대화 그리고 누구나 인정할 법한 국내 유일 미슐랭 3스타 셰프라는 심사위원은 누가봐도 박수치며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요리라는 것은 보여지는 것보다 결국 미각을 통해 느껴지는 것이기에, 우리는 심사평에 의존한 채 고개를 끄덕이거나, 침을 흘리는 경우가 많았고.. 요리예능의 비애(?) 아닌 비애이지 않을까...
그러나, 저스트메이크업에서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시작해서 자신의 이름을 딴 뷰티 브랜드의 대성공을 이룬 정생물 메이크업 아티스트/ KPOP 메이크업의 대가라고 불리며 미친 디테일을 요구하는 서옥 메이크업 아티스트/ 분장실 경험부터 유튜브에서 다양한 콘셉트의 화장을 선보이며 메이크업으로 얼굴을 갈아끼우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대중에게 증명한 뷰티 크리에이터 이사배/ 화장품제조부터 기획까지 자문에서 시작했지만 심사위원으로 거듭난 이진수 아모레퍼시픽 메이크업 마스터 총 4명으로 인원이 두 배가 늘은 셈이다.
너무 여성으로서만 구성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넓은 메이크업 분야에서 탑을 찍은 4명의 사람들의 각기 다른 의견을 들어볼 수 있으면서, OBYB가 적절히 섞여있는 심사위원의 구성에서 납득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특히 1라운드에서 정샘물 심사위원과 서옥 심사위원의 결과가 확실히 상충될 수밖에 없었던 지점이 좋았다. 아래의 유튜브 댓글에서만 보아도, 심사위원들의 심사에 의견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이 아닌, 양쪽 다 팽팽한 반응인 걸 보면 확실히 메이크업의 세계는 역시 정답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2. 플랫폼_ 쿠팡플레이
저스트 메이크업이 넷플릭스에 방영되었다면 지금보다 더 화제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왜냐면 같은 제작진이 만들었기에 포맷도 똑같고, 글로벌 K뷰티 흐름 추세를 보면 지금쯤 해외 반응도 엄청 뜨거웠을 것인데, 파이널을 앞둔 지금까지 흑백요리사만큼의 신드롬 현상은 이어지고 있지 않다.
저스트 메이크업은 쿠팡플레이를 통해서 한국에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서 해외에 공개되었다. 쿠팡 보도자료에 따르면 2주차 공개 이후 첫 주 대비 시청량이 665%, 약 7.6배 상승했으며, 10월 20일 기준으로는 첫 주 대비 748%의 성장률을 보이며 상승세가 이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보도자료에서 내세우는 상승세를 믿디 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주변에 저스트 메이크업을 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물론 주변을 일반화 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인 것은 알지만, 당장 함께 일하는 동료들 중에서도 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고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줄도 모르는 동료도 있었다.
이것을 쿠팡플레이라는 '한국' OTT에서 방영되었기 때문이라고 자부하고 싶지 않다. 한국내에서도 화제성이 아쉬운 상황이고, 이러한 이유는 홍보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디어 환경은 유튜브 혹은 SNS 등을 활용해 충분히 1편당 기본 1시간이 넘어가는 분량인데, 쿠팡플레이 유튜브를 보면 하이라이트 클립의 개수가 한 에피소드당 1개밖에 없으며 분량 대부분 5분 이내로 매우 짧은 편에 속한다. 현재 방영중인 슈팅스타 2도 마친가지이지만 여기는 비하인드 클립이 몇개씩은 올라오는데, 저스트 메이크업은 그마저도 올라오지 않는다.
최근 가장 큰 화제작인 티빙의 '환승연애'만 해도, 하나의 에피소드 당 올라오는 클립 영상들은 7~8개씩 정도로, 간간히 미공개 에피소드 영상도 업로드 되었다. (환승연애 또한 티빙의 '오리지널 시리즈'이다.) 연애 예능이 화제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대탈출이라는 마이너틱한 콘텐츠에도 어김없이 환승연애와 똑같이 여러개의 클립 영상들이 업로드 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쇼츠는 그래도 여러개 생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티빙의 개수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편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있다. 물론 양이라는 게 절대적으로 많은 게 중요하기 보다는, 쇼츠는 보는 3초안에 계속 볼지 말지 결정되는 시스템이기에 확실히 이목을 끌 수있는 영상들로 셀렉하는 게 중요한데 충분히 재밌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쇼츠를 많이 뽑아내지 않고 있는 점이 아쉽다.
더군다나, 금요일에 업로드가 되면 적어도 주말 사이에 쇼츠들이 올라와 더욱 많은 시청으로 유도할 수 있을텐데, 월요일 저녁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도 8화 에피소드 쇼츠는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홍보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부분이 이런 점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정말 오랜만에 매주 금요일마다 쿠팡플레이에 접속하여 재밌는 콘텐츠를 보고 있는 요즘이다.
평소 메이크업에 정말 관심이 없었지만, 에피소드가 거듭날수록 메이크업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람의 안색과 미모를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것뿐만 아니라, 정샘물 아티스트의 말처럼 인간에게 입히는 유일한 예술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메이크업이라 할지라도 정말 '예쁘게' 보이는 메이크업도 있으며, 아트로 선보이고 하는, 그리고 특수분장을 곁들이는 행위까지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의 얼굴이 바뀌는 매력적인 장르라는 것도 이번 저스트 메이크업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저스트 메이크업에서 얻은 가장 큰 통찰은, 1세대 아티스들의 프로페셔널함과 간절함이었다.
아직 사회 경험이 그저 1년밖에 없는 초년생이지만, 나는 내가 걸어온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은 목표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분야가 진정으로 뭘까를 올해 초 퇴사를 하며 아직까지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한 분야에서 인정받기 위해 수십년동안 노력하고 인정받았음에도, 트렌드에 가장 예민하다고 할 수있는 뷰티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며, 참가자의 자격으로 서바이벌에 참여하신 분들을 보니 나도 언젠가 저들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과, 그러기 위해서 수십번 노력하고 부딪혀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웬만하면 신예, 뉴페이스들을 응원하게 되었는데, 모처럼 거장..대가..1세대 들을 응원하게끔 하는 맛이 저스트 메이크업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