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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필름 Nov 01. 2021

D-14| 부모님에게 내가 무겁듯 나도 부모님이 무겁다


30대 여성의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있는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는

2년 전 프랑스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 쓴 일기와

2년 후 한국에서 그 일기를 보며 다시 하루를 기록한 내용을

하루씩 교차해서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11월 9일 화요일에 출간됩니다!

그때까지 맛보기로 이곳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본문을 공개할게요!

(스포가 안 될 정도로 아주 쪼끔만)


그럼 바로 두 번째 하이라이트 공개합니다!!!









아빠의 아빠가 죽었다


잠을 아예 못 자거나 아주 조금 잔 상태로, 무거운 짐을 들고 세시간을 넘게 가서 부모님을 만나면 나는 늘 극도로 피곤해서 신경이 곤두서 있다. 부모님은 너무 배고파서 일단 밥부터 먹는 나에게 다짜고짜 휴대폰 사용법을 묻는다. 카카오 스토리가 안 들어가진다, 애니팡이 안 된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휴대폰을 건네

받는다. 부모님 휴대폰은 내가 쓰는 휴대폰과는 완전 달라서 나는 휴대폰 잠금 화면을 푸는 법도 알지 못한다. 나는 몇 분을 휴대폰을 붙들고 끙끙대다가 이내 짜증이 터진다. 눈물이 왈칵 올라와서 서둘러 심호흡을 한다. 이런 건 매일 보는 남동생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고 해도 엄마는 됐다고 한다. 부모님에게 스마트폰을 알려드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문자 쓰는 법도, 카카오톡 하는 법도, 다 가르쳐드렸지만 더는 불가능하다. 나는 너무 멀리 살고, 거기서 여기까지 도착한 후엔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엄마는 그것도 헤아려주지 않고 내가 갈 때마다 밥도 못 먹게 자꾸만 뭔가를 물어본다. 나는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제발 밥 좀 먹게 해달라고 화를 낸다. 엄마는 알았어, 알았어, 하며 황급히 물러나지만 나는 이미 울음이 터진 후다. 나는 부모님을 만나면, 밥 먹는 게 너무 힘들어서 운다. 힘들어 죽겠는데, 꽉 차서 터져버릴 것 같은데, 거기에 뭔가를 쑤셔 넣으려고 하니 결국 찢어진 것이다. 그래서 아파서 울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췌장암 말기였다. 지금의 아빠는 엄마가 재혼해서 만난 분이다. 새아빠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나에겐 거의 남이다.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병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처음 전화로 엄마에게 들었을 때, 나는 엄청 울었다. 회사에서 일하다 말고 잠깐 나와 전화를 받은 거였는데, 다시 사무실로 들어갈 때 어쩌려고, 무턱대고 마구 울었다. 내가 섬에 찾아갈 때마다 따뜻하게 웃으며 반겨주시던 모습이 떠올라서 울었고, 무엇보다 할아버지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아빠의 슬픔이 떠올라 울었다. 이제 곧 아빠를 잃게 될 아빠가 걱정돼서 울었다.


할아버지는 그 후 6개월을 버티셨다. 새해 선물로 할아버지에게 지리산 벌꿀을 드렸고 뭘 이런 걸 사 왔냐는 할아버지의 말에 돈 많이 번다고 걱정 마시라고 떵떵거렸다. 할아버지가 그 말에 활짝 웃었고 나는 할아버지를 한 번 웃겼으니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했다. 곧 돌아가실 분에게는 절을 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꿀만 드리고 돌아왔다. 그게 내가 본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코로나 19의 감염 확산이 너무 심해져서 아빠는 장례식장에 애들을 부르지 않았다. 나는 서른셋인데도 애들이었다. 그리고 오늘, 할아버지의 산소에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는 수척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아빠에게 미안해서 눈물을 참았다. 봉분이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잔디가 듬성듬성한 할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나는 두 번 반 절을 했다. 꽃을 사 왔어야 했다는 걸 묘지에 도착해서야 깨달았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친가 쪽과 외가 쪽 친척들 모두와 인연이 끊긴 나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의 문화에 무지하다. 돌잔치나 환갑잔치도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친구가 결혼하던 날, 결혼식 시작 시간에 딱 맞춰서 갔다. 나는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구석에 서서 눈물을 꾹 참았다. 예식이 모두 끝난 후 사진 촬영을 할 때, 친구가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핀잔을 줬다. 결혼식에 갈 땐 예식 시간보다 일찍 가야 한다는 걸 몰랐다. 친척들의 경조사에 부모님과 함께 다녀봤었다면 알았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도 할아버지의 산소에 꽃도 없이 창피하게 빈손으로 왔다.


아빠는 나에게 바로 가지 말고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나는 엄마, 아빠,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비싼 곱창구이를 먹었다. 엄마는 맥주를 한두 잔 하다가 내가 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부여잡고 밥을 먹는 걸 보고 편하게 먹으라며 머리카락을 대신 잡아줬다. 그러더니 갑자기 머리를 땋아줘야겠다며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런 엄마를 그냥 두었다. 엄마가 내 머리카락을 만져준 게 20년 만인 것 같았다. 엄마는 내 머리를 한데 모아 잡아보더니 머리숱이 왜 이렇게 줄었냐며 놀랐다. 나는 늙어서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고 말했다. 우리는 별 대화 없이 밥을 다 먹었고 계산은 아빠가 했다.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 부모님과 헤어졌고 꾸벅꾸벅 졸며 겨우 집에 도착했다.


분명 졸려 죽을 것 같았는데, 집에 도착하면 늘 잠을 자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인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쓰는

하루하루 교차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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