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필름 Nov 02. 2021

D-13 | 아주 멀리 가야 비로소 생각하게 되는 것들


MBTI 유형 중 생각이 제일 많다는 INFJ가 생각하는 것들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는

2년 전 프랑스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 쓴 일기와

2년 후 한국에서 그 일기를 보며 다시 하루를 기록한 내용을

하루씩 교차해서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11월 9일 화요일에 출간됩니다!

그때까지 맛보기로 이곳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본문을 공개할게요!

(스포가 안 될 정도로 아주 쪼끔만)


그럼 바로 세 번째 하이라이트 공개합니다!!!








목 뒤가 햇볕에 탔는지 따끔거린다. 선크림을 샀으니 내일은 꼼꼼히 바르고 돌아다녀야겠다. 내일은 자전거를 빌려야 한다. 오늘의 목표는 식당에서 밥 먹기였다. 클리어. 내일의 목표는 자전거 빌리기다. 그것만 성공하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스스로 부담을 주지 말자. 나는 그렇게 용감하지도 뻔뻔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스스로 합의를 굉장히 잘하는 자아를 가졌다.


가진 거 다 털어 프랑스에 왔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싶다. 그러나 이렇게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어도 이건 프랑스에서 글을 쓰는 거기 때문에 특별한 순간이 된다. 식당은 한 번 잘 갔으니 두 번째에도 잘 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은 없지만 0보다는 1이 낫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마트에 있는 모든 음식

을 다 먹어보고 싶다.



그냥 드는 생각


앙티베 다운타운에 갔다오는 길, 동네 골목을 걸으며 차례로 세 명의 남자를 봤는데 세 명 다 손에 페인트나 붓을 들고 집을 수리하고 있었다. 런던 공항에서 오픈 시간을 기다리며 바닥에 누워 자고 있던 여자도 그랬고, 여기서도 그랬고, 엉덩이골이 보이고 팬티가 보였다. 쪼그려 앉은 사람, 의자에 앉은 사람,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손을 위로 뻗는 사람, 그냥 걸어가는 사람… 왜 이렇게 다들 자기 엉덩이를 보여주는 걸까. 나도 어릴 때, 스키니 바지를 입고 쪼그려 앉으면 엉덩이골이 보였을까. 생각해보니 보였다. 그래도 나는 그때 바지가 꽉 끼는 허벅지를 가리기 위해 늘 긴 상의를 입었다. 그러니 10번 중의 9번은 잘 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젠 엉덩이 보일 일이 없다. 살이 쪄서 꽉 끼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 보여주고 싶은 엉덩이도 없다.



하이힐은 특권이다


나는 하이힐이 특권인지 몰랐다. 그러나 여행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이 생각이 든다. 하이힐을 신고 걸으면 발이 너무 아프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을 정도로. 처음엔 괜찮지만 좀 걷다 보면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마치 신발 안쪽에 가시를 심어 넣고 걷는 것처럼 발이 너무 아프다. 내가 왜 미쳤다고 하이힐을 신고 나왔을까, 나 자신을 원망하지만, 힐을 신었을 때 나타나는 당당함과 찰나의 아름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신는다. 나이가 들수록 하이힐을 선택하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어릴 땐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면 무조건 힐을 신었다. 그러나 요즘은 힐을 신어야 할 것 같은 순간에도 에이 뭐 어때, 하며 낮은 구두를 신는다. 그나마도 발이 불편해서 혼자일 땐 늘 운동화를 신는다. 그러나 여행을 하다 보면 정말 꼭 힐을 신고 가고 싶은 장소와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 차를 타면 모든 게 해결된다. 차를 타면 발 아플 일이 없으니까 필요한 순간에만 딱 예쁘게 걷고 다시 차로 돌아와 집에 가면 끝이다. 이걸 아는 나는, 차가 없다.


이틀을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생고생을 하고 프랑스에 왔더니 체력 회복이 잘 안 된다. 아직 낮인데, 이따 밤에 자야 하는데 너무 졸리다. 일단 자고 일어나서 시차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겠다. 한국에 있을 때 밤에 잠을 안 자서 그 상태 그대로 밤낮이 반대인 프랑스에 오면 낮에 깨어있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오는 동안 너무 고생해서 아무 때나 자버렸더니 여기서도 밤에 깨어있게 생겼다. 그러면 안 되지. 여긴 24시 가게가 없어서 밤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면 안 되지.


아침 6시에 해가 떴고 밤 8시가 됐는데 해가 안 진다. 아직 여름도 아닌데 프랑스 뭐야. 검색해보니 여름엔 밤 9시, 10시는 돼야 어두워진다고 한다. 세상에나. 그래서 다들 저녁을 늦게 먹는구나. 나는 조금씩 프랑스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쓰는

하루하루 교차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

매거진의 이전글 D-14| 부모님에게 내가 무겁듯 나도 부모님이 무겁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