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필름 Nov 03. 2021

D-12 | 다들 친구 별로 없지 않나? 나만 그런가?


컬러풀했던 인생에 점점 색이 빠지는, 차분한 '30대'에 관하여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는

2년 전 프랑스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 쓴 일기와

2년 후 한국에서 그 일기를 보며 다시 하루를 기록한 내용을

하루씩 교차해서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11월 9일 화요일에 출간됩니다!

그때까지 맛보기로 이곳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본문을 공개할게요!

(스포가 안 될 정도로 아주 쪼끔만)


그럼 바로 네 번째 하이라이트 공개합니다!!!








카페에 가서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 나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좋다. 아직도 철이 없어서 별걸 다 멋있다고 생각하고, 그 멋에 산다.


나는 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할 줄 아는 게 많아서 여기저기에 많이 쓰인다. 나는 결정을 잘 내리고 추진력도 있어서 나와 함께 뭔가를 하면 결과물이 나온다. 얘기만 하다 흐지부지되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나는 늘 친구를 잃었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후 같이 드라마를 하며 알게 된 작가들이 유튜브를 하자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재밌을 것 같았다. 각자 하고 싶은 걸 정하고 함께 출연해주며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나만 하고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상황이 돼버렸다. 나만 영상을 기획하고 구성하고 진행하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업로드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그냥 내 영상에 출연하는 것만 했다. 거기에서 금이 갔다. 같이 하자고 해놓고 나만 하고 있으니 나는 불만이 쌓였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재밌자고 시작한 건데 너무 열심히 하는 내가 불편해서 불만이 쌓였다. 돌이켜보니 그건 그냥 웃으면서 설렁설렁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색하고 열심히 해버리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 우리는 몇 달 못 가 사이가 멀어졌다.


나는 언제나 나를 확신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나는 멍청하다. 그걸 나는 아는데 사람들은 모른다. 나는 안다. 다음엔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어떤 사람들을 힘들게 할까. 사람들은 모른다. 분명 또 누군가가 나에게 같이 뭔가를 하자고 할 것이다. 나는 안다. 그때에도 또

내가 전부 망칠 거라는 걸.



그래서 나는 항상 친구가 없다 


점심으로 엄마가 보내준 파김치와 김치를 섞어 김치전을 해 먹었다. 나는 파김치를 먹지 못 한다. 한 젓가락만 먹어도 속이 더부룩해진다. 나는 아무래도 익지 않은 파를 소화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엄마는 내가 파김치를 먹지 못 한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김치를 보내주실 때마다 파김치를 한가득 같이 보낸다. 나는 이

사실을 엄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아직도 말하지 못 하고 그냥 이렇게 김치전에 넣어 먹거나 김치찌개에 넣어 먹는다. 파김치는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


오늘 작가 한강의 책 《검은 사슴》을 읽다가 다음 부분을 메모했다.


‘인영은 사람들이 먼저 전화해주면 반가워하기는 했지만 결코 먼저 연락하는 법은 없었다. 그녀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조그만 섬에서 혼자서 살아가는 가난한 주민과 같았다. 그녀의 에너지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에게 그에 상응하거나 약간 못한 보답을 하는 것만으로도 녹초가 될 만큼 빈약했다. 더구나 그런 식으로 형성된 인간관계조차, 조금만 더 나아가려 하면 완고한 성벽 같은 그녀의 경계선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호감을 가졌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성벽 바깥에서 물러서곤 했다.’


인생은 무작위로 돌아가는 꿈같다가도 해석을 하려 붙잡고 보면 누군가 일부러 쓴 소설 같아진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쓰는

하루하루 교차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

매거진의 이전글 D-13 | 아주 멀리 가야 비로소 생각하게 되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