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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필름 Nov 04. 2021

D-11 | 알고 보니 내가 관종이었다?


여행이란 진짜 나를 찾는 과정..... 이라면서요? 어쩌면 맞을지도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는

2년 전 프랑스에서 한달살기를 했을 때 쓴 일기와

2년 후 한국에서 그 일기를 보며 다시 하루를 기록한 내용을

하루씩 교차해서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11월 9일 화요일에 출간됩니다!

그때까지 맛보기로 이곳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본문을 공개할게요!

(스포가 안 될 정도로 아주 쪼끔만)


그럼 바로 다섯 번째 하이라이트 공개합니다!!!








난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어설픈 행동으로 어디에서나 시선을 끄는 사람이 있다. 200명이 듣는 대형 강의실로 들어오는 길에 꼭 입구에서 우당탕 넘어져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사람, 조용한 엘리베이터 안이나 조용히 영상을 시청하는 순간에 에취 하고 기침을 해서 주목받는 사람(이럴 땐 꼭 기침 소리도 엄청 특이하다), 뜬금없이 필통을 떨어트려 수십 개의 펜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주변 사람들이 다 나서서 도와줘야 하는 사람, 이렇게 덜렁거리는 성격이면서 꼭 짐을 주렁주렁 이고 지고 다니는 사람, 다른 방향으로 몸을 한 번 돌리기만 해도 와장창 우당탕 뭔가를 떨어트리고 깨트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나는 주목받는 걸 싫어한다. 어릴 땐 반장도 하고 싶었고 무대에 올라가 춤도 추고 싶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난 어딜 가나 조용히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늘 조용히 최대한 가만히 있었다. 차분하게 움직이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런데 여기 프랑스에 와서 그 모든 것들이 다 와장창 깨져버렸다.


피자를 사서 먹으려고 했다. 숙소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도미노 피자집이 나온다. 거기에 가서 피자를 사 와야지. 그래서 커피도 마시다 말고 식탁 위에 둔 채 그대로 나갔다. 그러나 피자집에 가보니 문을 닫았다. 일요일이면 피자집도 문을 닫는구나. 한국의 24시 시스템이 정말 그립다. 누군가 내게 말을 걸거나 물어본 적

은 없지만 여기 와서 하루에도 몇 번씩 ‘한국에는 어디에나 24시간 가게가 있어요. 특별히 큰 도시가 아니어도 외곽 지역이어도 똑같아요. 편의점, 치킨집, 카페, 식당. 이렇게 4개의 가게가 골목마다 세트처럼 있어요.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또 다른 편의점이 보여요. 거기서 또 고개를 돌리면 그다음 편의점이 또 있어요.’ 라는 말을 영어로 하고 또 했다.


피자를 먹을 수 없으니 햄버거를 먹자. 그대로 쭉 더 직진하면 맥도날드가 나온다. 바다가 보이진 않았지만 커다란 리조트들 너머로 해변이 느껴졌다. 테라스에 손님들이 꽉 들어차 있는 맥도날드의 풍경도 마치 바닷가에 있는 느낌이었다. 주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니 자동 주문기(키오스크)가 보인다. 빅맥 세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프랑스어로 주문 번호를 불러주면 나는 어떻게 알아차리고 가져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직원이 메뉴를 사람들의 자리로 직접 갖다주고 있었다. 주문기에서 주문할 때 자리가 안에 있는지 테라스에 있는지 선택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래서였구나. 자리로 배달해주는 맥도날드라니, 대박이다. 직원이 나의 빅맥 세트도 갖다줬다. 아, 하필 그때 카메라의 영상이 끊겼다. 연속 촬영 시간 30분이 넘으면 자동으로 영상이 끊어진다. 배달해주는 걸 찍어야 했는데 이 신기한 걸 놓치다니! 아쉬워하며 직원이 놓아준 트레이를 내 몸쪽으로 돌리는 순간… 커다란 콜라가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기우뚱 몸이 기울더니… 바닥으로 퍽 떨어졌다. 세상에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벌떡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 어떤 직원도 퍽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이걸 어쩌나 싶어서 일단 콜라 컵이랑 뚜껑부터 주워들었는데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직원에게 가서 상황을 알렸다. 직원이 다가왔다. 암 쏘 쏘리…. 어려 보이는 남자 직원이 커다란 티슈 뭉치를 조금씩 뜯어가며 콜라를 닦았다. 나에게 빈 컵을 카운터로 들고 가 콜라를 다시 받으라고 했다. 나는 울고 싶었다. 콜라는 또 왜 이렇게 커서 쏟아진 양도 어마어마할까. 미안하다고 말하며 빈 콜라 컵을 들고 카운터에 가서 서 있는데 너무 염치가 없어서 울고 싶었다. 콜라를 새로 받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아직 바닥에 쏟아진 콜라는 그대로다. 휴지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세상에.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그 와중에 이걸 카메라로 찍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콜라를 한 바가지 쏟아놓고 그걸 닦는 직원을 촬영까지 하고 있으면 진짜 사람도 아닌 것 같아서 참고 최대한 반성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직원이 대걸레 같은 걸로 척척 닦았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휴지를 너무 하나씩 뜯으며 닦아서 더 미안했다. 진짜… 암 쏘 쏘리…. 나는 계속 미안하다고 하고 직원은 계속 괜찮다고 한다. 세상 착한 사람이다. 복 받으실 거예요. 동양인 여자애가 와서 빅맥 세트 하나 시키더니 갖다주자마자 콜라를 쏟아버린다. 그래놓고는 자리를 옮기지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콜라 다 닦을 때까지 가만히 앉아 지켜본다. 사이코패스야 뭐야. 지금 생각해보니 자리라도 옮길걸. 진짜 바보 같았다.


한참 걸려 콜라를 다 닦은 직원이 산처럼 쌓인 엄청나게 많은 휴지를 모두 치운 후, 그 자리에 노란색 ‘Caution(조심)’ 경고 팻말을 갖다 둔다. 그쯤 되니 민망했던 나도 빵 터진다. 내가 푸흡 하고 웃자 직원도 푸흐흡 웃는다. 세상 살다 살다 정말. 나는 노란색 경고 팻말이 세워진 자리에 앉아 햄버거를 먹었다. 미끄러우니까 조심하라고 그런 거긴 한데 맥시멈으로 풀 충전되어 있던 나의 창피함에 하나가 더해지며 펑 터져버렸다. 콜라를 쏟고 암쏘쏘리 한 직후에 바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어야 했는데… 바보. 아니다. 나의 잘못을 내가 온전히 견뎌내야지.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처럼, ‘경고! 이 사람은 언제든 콜라를 쏟을 수 있으므로 위험함’이라는 팻말이 앞에 달린 것처럼. 나는 구경거리가 된 채로 햄버거를 먹었다. 감자튀김에 찍어 먹을 케첩을 주지 않아서 카운터에 가 케첩을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주목게이지가 꽉 차서 움직일 수 없었다. 더는 주목받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힘들지만, 이 이상은 너무 힘들었다.





▼ 그 날 맥도날드에서 있었던 일을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qkgtbY5aSCw&t=6s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쓰는

하루하루 교차 에세이

<여행해도 불행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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