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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태 Dec 05. 2021

#1979 프리츠커상의 탄생

건축계의 노벨상 Pritzker Architecture Prize

이 시리즈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를 연대기별로 소개하는 글입니다. 첫 건축가를 소개하기에 앞서, 프리츠커상이 어떤 상이며,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봅니다:)


호텔과 프리츠커

시작하기 앞서 잠시 호텔체인을 운영하는 브랜드를 떠올려보자.


아마 지금 독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 중에, 이 프리츠커상을 운영하고 매년 수여하는 재단이 있을 것이다. 바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하얏트 재단이다. 그리고 이 하얏트재단의 창립자 제이 프리츠커(Jay Pritzker)가 아내 신디 프리츠커(Cindy Pritzker)와 함께 1979년 프리츠커상을 제정했다.


호텔은 운영하는 가문이 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건축상을 만들었다니, 어떤 이유였을까?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이 하얏트의 역사를 조금 더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하얏트(Hyatt)의 역사

'하얏트 하우스 호텔' 간판 (1957)

하얏트는 1957년 당시 프리츠커가(家)의 장남이었던 제이 프리츠커가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근처의 하얏트 하우스 호텔을 설립자였던 하얏트 폰덴에게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형제였던 도널드 프리츠커와 가문의 사업을 위해 함께 일하면서 단순한 호텔 운영이 아닌, 경영 회사로 성장시켰고, 1962년 상장하게 된다.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성장하던 하얏트는 1967년 자신들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준 시그니처 호텔 '하얏트 리젠시 애틀란타'를 오픈하게 된다. 이 호텔이 상징적인 이유는 '아트리움 구조'를 적용한 호텔건축을 선보였기 때문인데, 이 구조는 오늘날까지 많은 호텔 건축설계에 영향 끼치게 된다.


아트리움 구조 - 모든 객실이 건물 안쪽의 로비를 바라보도록 설계되어 정서적인 안정감과 보안에 대한 신뢰를 제공하고, 수직적으로 개방하여 시각적으로 쾌적함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프리츠커의 혜안(慧眼)

제이 프리츠커는 대성공을 이룬 하얏트 리젠시 애틀랜타를 보면서 호텔의 디자인이 직원들의 태도와 손님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확신했고, 디자인이 단순한 미적 감동을 넘어서 인간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1978년에 노벨상과 같은 건축상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의미 있는 상이 건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 건축이라는 분야에서 더 큰 창의성을 고취시킬 것이라 생각했던 제이 프리츠커는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수락하였고, 곧 아내와 함께 프리츠커상을 제정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해인 1979년 미국의 필립 존슨 수상을 시작으로 프리츠커 상의 역사가 시작된다.


(좌) Jay Pritzker, (중앙) Cindy Pritzker


그렇다면 프리츠커상은 어떤 사람이 받을까?


재능과 비전을 보여주는 건축 작업을 한 사람

건축예술을 통해 인류와 건축환경에 일관되고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

현재 살아있는 사람


하얏트 재단은 위 조건 3가지를 모두 충족한 인물에게 수상하며, 그 과정에서 인종, 피부색, 종교, 출신 국가, 성별, 장애 또는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 제이,신디 프리츠커 부부가 상을 제정한 배경과 하얏트 재단이 운영해오고 있는 방식을 참고하면, 왜 40여 년 동안 노벨상과 견주는 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된다.



다양한 국가의 수상자

현재까지 43번을 수상했으며, 팀에게 수상한 적도 있기 때문에 수상자는 총 47명이다. 옆 나라 일본은 미국과 함께 가장 많은 수상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수상의 영예를 느껴보지 못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보고 죽을 것이야...)


수상자 중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들이 있다. 아마 아래 말씀드리는 것 중에 하나 정도는 사진으로라도 마주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2004), 제주 본태 박물관을 설계한 안도 다다오(1995), 갤러리아 광교를 설계한 OMA 건축사무소의 램 콜하스(2000), 그리고 최근 아이유가 분양받아 유명해진 청담 에테르 노를 설계한 라파엘모네오(1996)까지 생각보다 많은 외국 건축가가 한국의 상징적인 건축물들을 수주 받아 설계하고 있다.


우리나라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는 공공건축물들을 외국에 수주하기보다, 조만간 대한민국 국적의 수상자가 자국의 건축예술로 표현하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 앞으로  시리즈를 연재하려고 한다.


다음에 시리즈 처음으로 소개할 건축가는 강원 뮤지엄산, 본태박물관, 유민미술관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1995년 수상자 안도 다다오(Tadao Ando)입니다.


현재는 공간디자인에서 조금 벗어나 IT업계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취업, 커리어전환에 대한 고민이 있으신 분들에게 언제나 열려있으니, 메일로 연락 주시면 성심껏 답변을 드리고 있습니다. - 24woos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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