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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타PD Jun 05. 2024

웹툰 PD를 졸업하며..

습관적으로 자기 전 내일 원고 세팅이 되었는지 확인하러 11시에 일어나야겠다고 알람을 맞추다가 깨달았다. 이제 만화경이 없단 사실을..!


만화경은 독자일 때부터 궁금한 곳이었다. 저긴 어떤 사람들이 일하길래 이렇게 다정하고 빠르게 독자 의견들을 반영할까?

들어와 보니 알 수 있었다. 안 된다는 말보다 해볼 수 있는 걸 다 해보는 사람들. 함께 일하는 즐거움에 늘 행복하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서비스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작가님과 만나는 첫 미팅 때도 늘 자신 있었다.


문구 하나부터 모든 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반응을 보며, 기뻐하며 만들어갔던 곳이었다. 독자들이 좋아할 작품, 선보이고 싶은 새로운 재미를 가진 작품을 찾아 매일을 떠났다.

어떻게 하면 더 작가님들과 독자들이 편하게 즐겁게 안전하게 플랫폼이라는 장을 활용하여 소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1년간 기획, 디자인, 개발자분들이 만들어주신 구름톡과 태그톡을 통해 작가님들은 작품의 시작부터 구름톡으로 독자들의 응원 댓글을 마지막은 태그톡으로 독자들의 완결 팬아트를 받아볼 수 있었다.


학원 갔다 온다던 댓글들, 서로 클린하고 평화로운 댓글과 커뮤니티를 만들려 방범대처럼 나섰던 독자들, 만화 어떻게 만들어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기획했던 만화, 12시에 들어가 보니 안 자는 사람들 모여라라는 게시물에 작가님이 등장해서 노는 모습, 30분간 열린다는 고민 상담소글에 휴대폰 하느라 늦게 자서 피곤하단 고민을 남겼더니 부모님께 폰을 맡기라는 귀여운 답변까지 우리 어린이 독자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팬사인회에서 부모님들 손을 잡고 제주도에서부터 새벽같이 출발하고 작가님께 드릴 손편지와 간식과 점토로 만든 캐릭터들까지 그 순수한 마음에 감동이고 행복했다.


우리가 애정을 담아 만든 서비스에 애정으로 답하는 독자들과 더 재미있고 좋은 작품으로 빛내주신 작가님들의 노력을 여과 없이 볼 수 있던 PD라는 직업이 참 감사했다.


서비스 종료 소식을 듣고 저도 이렇게 놀라고 힘든데 PD님은 얼마나 더 상심이 크냐며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고 앞으로 좋은 인연으로 만날 날을 바란다는 말로 오히려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주시던 작가님들. 이 서비스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와 좋은 영향을 주었는지를 댓글과 앱 리뷰, 애독자 엽서를 통해 매일같이 보내오던 독자분들. 마지막이 정해지자 ’만화경이 정말 많이 사랑 받았구나‘라는 걸 더욱 느낄 수 있었다. 이 다정한 마음을, 과분한 사랑을 잊지 못할 것 같다. 파란색 보물상자에 차곡차곡 담아 만화경과 넣어두려 한다. 소중히 잘 간직할게요!


2024년 5월 31일, 만화경 마지막 날.

믿기지 않고 헛헛한 마음에 오랜만에 편집부 계정으로 만화경에 로그인을 했다. 내 소식란을 통해 알림이 계속 와서 보니, 1분 간격으로 작년 10월 올린 서비스 종료 안내글에 계속해서 작가님들과 독자분들의 댓글이 2천여 개가 달리고 있었다.

7개월간 매일 생존신고라며 학원 갔다가 댓글을 남기고 서로 댓글창에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자신에게 만화경이 어떤 의미와 존재였는지를 나눠주던 독자들.

서비스 종료를 안내한 후 작년부터 앱 리뷰와 애독자 엽서와 공지글과 편집부 작품에 대한 댓글로 만화경에 대한 독자들이 보내주신 애정과 진심이 쌓여갔다.

그래서 그 마음에 작게나마 보답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인사까지 만화경스럽게 하고 싶은 마음에 기획했던 <만화경 편집부는 구층입니다> 마지막화에 달린 800개의 댓글에 편집부 공식 계정으로 접속해 좋아요와 마지막 알림이 가도록 답글을 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애독자님! 오후 6시, 만화경이 종료됩니다 그동안 많은 애정과 관심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6시가 되자 앱 연결이 끊어졌고 준비된 메시지가 팝업으로 떴다.

-5/31 서비스 종료, 그동안 만화경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의 카피 하나부터 배너와 기획전과 구름톡과 태그톡 이벤트까지 하나하나 기획하고 디자이너, 기획자, 개발자, 사업, 마케터분들과 함께 만들고 운영했던 어느 곳 하나 마음과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기에 더 애정이 가득했던 서비스를 이제는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다행히도 앱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파란 아이콘의 만화경 앱이 담겨있는 이 휴대폰을 두고두고 간직해야겠다.

”이제 진짜 안녕, 만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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