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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타PD Jul 20. 2024

지치지 않고 일하는 힘

“OO님은 에너지가 떨어지면 어떻게 충전하시나요?”


어느 날 동료가 물어왔다. 

본인은 활력이 떨어질 때가 많은데, 좋은 에너지를 유지하는 방법이 궁금하다고 말이다.

직장 생활 5년 차, 나 역시 항상 에너지가 넘쳤던 것은 아니었다. 

내게도 마의 3년 차 법칙이 찾아왔었으니까. 


늘 “너무너무 좋아요”를 외치던 나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OO님의 순수한 열정에 감동받고 꼼꼼함에 든든하지만, 혹여 지치진 않을까 걱정된다’라는 동료들의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때는 ‘왜 나를 걱정하지? 나 무리하고 있나? 왜 지치지..?’라며 어리둥절했었다. 


만화를 좋아하던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발굴하고 기획하는 일을 좋은 동료들과 하다 보니 출근이 기다려졌고, 회사 생활이 너무 즐거웠다. 맡게 되는 일들 역시 재미있기도 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며 기획부터 운영과 회고까지 새벽까지 업무를 하는 등 열정을 쏟아부었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 스스로 이만큼만 더 하면 완벽하겠다, 너무 좋겠다는 욕심에 계속 수정과 추가와 정리로 완성시켜 가던 업무들. 정해진 기한 안에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놨을 때 스스로 해내었다는 성취감과 더불어 무한 칭찬을 해주던 동료들 덕분에 계속 신나서 일을 할 수 있었다.


노력한 만큼 목표보다 더 좋은 성과들을 여러 번 받고 나니, 동료들의 신뢰를 얻기도 하고 스스로도 자신감이 생겼다. 다만, 다만… 일을 잘 끝내고 나니, 휴가나 보상이 아닌 바로 다음 일이 떨어지는 상황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숨이 턱 막혔다. 지난번 잘해주셨고 기간이 촉박하니 다음 프로젝트도 담당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라는 말에, 인정받았다는 기쁨보다 3개월간 해왔던 야근들이 생각나며 끝나면 쉬는 게 아닌 잘하면 일을 더 주는구나라는 생각에 기운이 쭉 빠졌다. 

더 이상 열심히 즐겁게 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없었다. 나의 컨디션은 누가 챙겨주지 않는구나, 내가 사수해야 하고 돌봐줘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번아웃이라는 단어는 남 얘기인 줄 알았는데, 어떤 일을 해도 기쁘지 않고 해야 해서 하는 일이 되니 출근해서도 웃음이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냐는 동료들에 물음에 번아웃이 온 것 같다며 극복하는 방법들을 열심히(이것조차 열심히 묻고 다녔단 사실이 웃기다) 묻고 다녔다.

다만 동료들의 방법이 아닌 내가 스스로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 일지를 알고 여러 방법으로 처방하는 임상 실험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최대한 칼퇴를 하려 노력했다. 점심시간에 일을 하거나 집중해서 일하거나 다음 날 일찍 출근하는 형식으로 6시 퇴근하는 날을 최대한 자주, 많이 만들려 노력했다. 그래야 퇴근 후 바로 쓰러져 자고 다시 일하는, 일을 위해 사는 하루에서 벗어나 저녁 시간만큼은 수고한 나를 위해, 그리고 수고할 나를 위해 잘 쉬어주고 충전해 주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기에.  


    그래서 저녁 시간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정말 푹~ 잘 쉬어주기를 목표로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줬다.  

    이 생활이 무료해질 때쯤, 운동을 시작했다. 필라테스, 헬스를 PT로 정적(?)인 운동을 마스터하고 나니 지루한 운동 대신 멋져 보이고 재미있어 보이는 킥복싱을 끊었다.  

    피곤하고 쉬어줘야 한다는 핑계로 늘 저녁은 배달 음식으로 먹었는데, 이제는 장을 보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주 1~2회는 나를 위해 예쁘고 건강한 밥상을 만들어 선물했다. 스스로 요리를 한다는 성취감과 그 시간이 내게 아무 생각도 안 할 수 있는 쉼을 주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걸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쉽사리 연락과 만남을 가지지 못했던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추억을 다시금 떠들고 근황을 나누고 맛있는 걸 먹거나 재미있는 영화나 전시를 함께 보는 시간을 나에게 선물했다. 소소한 일상 같지만 그것만으로도 회사일로 가득했던 내게 환기가 되고 좋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  

    주말에 집에서만 쉬었더니 시간이 금방 가지만, 기분 전환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약속이 없더라도 혼자 우선 나간다. 그동안 제대로 둘러보지 않았던 풍경과 날씨를 느끼며 보고 싶었던 책을 구매하러 서점에 갔다가 그 책을 들고 뷰가 좋은 한적한 카페에서 책을 보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고 오는 것. 혼자이기에 더 주변을 살펴볼 수 있고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업무로 인해 야근이 계속되고 앞으로도 바쁠 게 예상될 때, 너무 숨이 벅차거나 몸과 마음이 지칠 때 그때는 다급히 캘린더를 확인해 본다. 회의가 없는 날, 담당 작품 연재일이 아닌 요일이 있다면 냉큼 휴가를 써서 그날을 나를 위해 선점해 둔다. 그날은 나를 위해 늦잠을 자고 여유로운 점심을 챙기고 업무로 바빠서 미뤄뒀던 개인적인 일들을 하거나 혹은 정말 온전히 방콕을 한다. 책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며 최대한 더 움직이지 않고 잘 쉬어주는 걸 목표로! 꼭 무슨 일이나 일정이 생겨야만 휴가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를 잘 살펴보고 휴식을 처방해 주자.  

    돈을 벌어 선물한다, 남을 위해 나를 위해. 처음 직장 생활을 했을 때 처음이라 더욱 낯설고 힘든 일이 많았다. 이렇게 힘들게 돈을 벌다니 씁쓸하면서도 기쁘지가 않았다. 그래서 생일 선물로 아빠가 돈을 줬을 때 버럭하고 울기도 하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라는 생각이 든 후로 가장 먼저 한 일은, 돈을 버는 의미를 여럿 만들어두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부를 시작했고 어린이들에게, 장애인들에게, 노인들에게, 자립 청년들에게, 주거취약계층에게 조금이나마 응원하는 마음을 보태었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 부모님에게 그동안 필요했던 에어컨과 건조기를 선물했다. 야근이 잦아 힘들어 보이는 동료에게는 홍삼을 한 포씩 쥐어주곤 했다. 일상 속 남을 행복하게 해 줄 선물을 찾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준비하고 목격하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나 역시 기쁘기 때문이다. 내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곧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좋은 말 상자를 꺼내본다. 좋은 말 상자는 <나를 리뷰하는 법>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방법인데, 아주 효과적이라 여기저기 추천하고 다닌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동료나 친구와 가족에게 받은 좋은 말(칭찬, 응원, 감사)을 캡처하여 휴대폰 앨범에 별도로 모아두면 완성! <나를 리뷰하는 법>의 김혜원 작가님은 이렇게 모아둔 글을 마음이 가난한 날, 응원과 용기가 필요한 날에 꺼내본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만들어본 좋은 말 상자 폴더에 벌써 100개 가까운 좋은 말이 쌓였다. 매일 칭찬만 들을 수는 없으니까,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응원과 격려가 필요할 때 지칠 때 외로울 때 이 폴더를 열어본다. 나, 이렇게 많은 응원을 받았었구나. 

(▲ 친구, 동료, 작가님, 독자분들로부터 받은 좋은 평가, 응원, 칭찬, 감사의 메시지를 모아두는 앨범)


내가 지치면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아쉬운 결과를 내는 것을 알기에, 달려야 할 때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힘을 비축하기 위해, 더 오래 행복하게 일하기 위해 오늘도 내 몸과 마음을 잘 살펴본다. 

쉼이 필요하다면 휴가를, 응원이 필요하다면 좋은 말 상자 소환을, 기쁨이 필요하다면 선물을, 사랑이 필요하다면 가족과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처방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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