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5년차 협력사업 기획자편-
4년 전, 무더운 여름날. 마케터로 첫 회사에 취직했다.
다른 기업의 마케팅을 외주로 받는 마케팅 대행사였다. 크고 유명한 회사는 아니었지만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관에 공감했고 간절히 바란만큼 설렘도 컸다.
그리고 3개월 만에 퇴사했다.
자려고 누우면 일에 대한 부담에 잠 못 이루었고(머리만 대면 10초 만에 잠드는 나였지만), 달콤한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이면 즐거움보다는 월요일이 몽둥이를 들고 “어디 한 번 놀아봐라”라고 무섭게 노려보고 있듯 턱 숨이 막혔다. 일의 양이 많기도 했고 코로나19가 무섭도록 확산하던 때라 재택근무로 소통의 어려움도 컸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 스스로도 답을 내리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는 “직무가 나랑 맞지 않아서”, “일이 빡세서” 라며 얼버무렸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이유를 알았다.
나는 무서워서 도망쳤다. 자신의 미숙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두려웠다. 일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 질문은 힘들었고 실수는 괴로웠다. 복합기에서 문서를 스캔하는 데에도 30분 이상 걸렸고 그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복합기는 너무 어려웠다!) 내가 상상하는 퍼포먼스는 나이키의 역동성, 애플의 창의성, 배민의 키치함을 아우르는 수준이었지만, 현실은 인스타그램에 상품 소개하는 문장 하나 쓰는 데에 2~3시간은 넘게 걸렸다. 하루 온종일 걸린 게시글 하나는 팀장님의 잔혹한(?) 피드백에 난도질 당해 뒤집히기 일쑤였다. 스스로의 미숙함을 도저히 인정하지 않았다. 그토록 좋아했던 기획과 마케팅도 내 적성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미숙함을 회피했다. 모든 업무는 부담이 되었고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혼자서 캠페인 하나를 맡아보라는 지시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GG를 쳤다.
퇴사를 앞두고 팀장님과 면담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힘에 부쳤다는 속 이야기를 하자 팀장님이 이렇게 말했다.
“신입은 원래 느리고 익숙하지 않은 거예요. 그게 당연한 거예요. 모르는 게 있으면 귀찮을 정도로 물어봐도 좋고, 도저히 못하겠으면 못하겠다 말해도 괜찮아요. 그게 신입이에요. 팀원이 그런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한 저의 잘못이에요. 미안해요.”
얼떨떨했다. 미숙해도 괜찮다고 말해준 어른이 처음이어서 그랬나. 당시 팀장님의 말 덕분에 다음 회사에서는 한결 수월하게 적응했다.
다음에 들어간 회사에서 다시 한번 신입사원이 되었다. 이전과 달리 모르는 게 있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마음껏 질문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스스로에게 조금은 관대했고, 회사도 신입에게 10년 차의 퍼포먼스를 요구하지 않았다. 업무에 자신감이 붙었고 작은 프로젝트를 해낼 만큼 무럭무럭 자랐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 그리고 새로운 문화까지 모든 것이 낯설면서도 설렜다.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했고 업무 커뮤니케이션은 나이스했다. 개성과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자유롭게 일하는 곳. 멋진 가치관을 사람들의 언행에서도, 회사 곳곳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유토피아 같은 회사였다.
이쯤 되면 모두가 의아할 것이다. 그게 말이 되나? 그렇다. ‘이상적’이라는 수식어와 ‘일’이라는 명사는 화학적 결합이 불가능하다. 문제가 없는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덜 싫고, 더 좋은 일은 있을 수 있겠다만. 여느 때와 같이 알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주어진 일을 해냈고, 모르는 일이 있으면 열심히 물었다. 누구나 친절하게 답변해 주었다. 그러나 시키는 대로 해도 절반은 먹고 가는 ‘신입’이라는 튜토리얼을 지나고 나면, 이제는 일에 ‘나의 생각’, ‘나의 의견’이 늘 붙어야 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며 칭찬받던 내게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열심히 정리한 보고서에 ‘내 생각’을 붙이려고 하니 빽빽했던 워드 파일이 텅 비어 보였다. 열심히 단서를 달며 붙인 생각은 너무도 조잡해 보였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니즈를 수용하고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상생의 가치를 창출하는 업무이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변수도 많았다. “어떻게 생각해요?”라는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식은땀을 흘렸다. 어떻게든 쥐어 짜낸 내 의견은 작은 질문 하나에도 무너져내리는 모래성 같아 보였다. 주간 회의 시간이 조금씩 두려워졌다. 나는 어떤 의견을 내야 하며, 업무의 변수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그럴 때 찾은 돌파구가 바로 ‘잡담이 경쟁력이다’라는 문구였다. 동료들과 출근하면 얼굴을 마주하고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부터, 새로 입양한 강아지가 밥은 잘 먹는지, 넷플릭스에서 뭐가 재밌는지 잡담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업무 이야기로 넘어간다. 업무 얘기는 주로 한숨에서 시작해서 잘 모르겠다로 끝이 나는데, 이상하게 얘기를 나누다 보면 고민하고 있던 대부분은 정리가 되고, 누군가에 한 마디, 단어 하나에 해결점을 찾게 된다.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작업물의 빈틈이 적나라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 빈틈을 보는 건 마치 내 단점을 마주하는 일처럼 어렵다. 단점 없는 사람은 없듯 작업물도 모자란 점이 있는 게 디폴트 값이다. 혼자 완벽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시간에 빨리 보여주고 빈틈을 함께 찾아 개선해 나가는 편이 낫다. 서로 솔직할수록 더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으니까.” (프리워커스, p.97)
그 뒤로는 내 생각을 말하는 데에 조금 뻔뻔해졌다. 어차피 업무란 게 틈이 있는 것이 디폴트라는 생각으로 빈틈 투성이 의견을 말하고 서로의 의견을 더하다 보면 그럴싸한 모양새가 만들어진다. 리더는 더욱 넓은 관점에서 방향성을 잡아주고, 다른 팀원은 예상되는 어려움이나 해결 지점을 가감 없이 말해준다. 나는 실무적인 관점에서 디테일한 부분을 잡아가고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업무를 유관 부서와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내놓는다. 그들의 피드백으로 더욱 다듬어지며 완성된 업무를 세상에 내놓는다.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오픈하는 일은 어렵다. 신입 때도 그렇지만 연차가 쌓이고 일이 익숙해질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건 더욱 어렵다. 누구나 작업물의 빈틈은 있기 마련인데 그 빈틈을 쿨하게 인정하고 함께 논의하여 서둘러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진짜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다. 매사에 대충이어도 문제겠지만, 완벽한 상태로 만들려는 강박이 때로는 올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완벽주의’라는 편안한 핑계로 잠재력을 강점으로 다듬는 일을 게을리해서도 안 되겠다.
완벽하고자 하는 당신, 스스로에게는 관대하게 때로는 뻔뻔해져 보는 게 어떨지. 야수를 믿고 마음껏 원하는 공을 던지는 투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