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경력 2N년, 그즈음

(전) 모범생, (현) 방황하는 취준생

by 그즈음

인사와 간단한 소개


안녕하세요, 그즈음입니다. 글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재수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된 거라, 이 공간이 꽤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브런치에서 글을 읽을 때면 작가 분들에 대한 궁금함이 생기곤 했는데요,

그래서 저에 대한 소개의 글을 먼저 하나 적어둘까 합니다.



K-모범생 12년


저를 해시태그 몇 개로 표현해야 한다고 하면

그 중 하나는 분명 #모범생을 써야 할 것 같아요.


모범생이라고 하면 다들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실 텐데, 그대로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일반적인 모범생들보다 똘기(?)가 있다, 친구들 웃기는 걸 좋아했다는 정도)


잔머리 한 올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꽉 잡아맨 머리,

중학교 때까지는 거기에 머리띠까지 쓰고 다녀서

친구들은 다들 '머리띠'로 저를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도 크게 변하지 않아서,

야자 시간 내내 체육복으로 갈아 입지도 않고

불편한 교복을 입고 있는 그런 타입의 학생이었습니다.


혼자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불편하고 힘들게 만든 건

꼭꼭 채운 교복 단추뿐이 아니었습니다.


외면보다 더 답답한 건 내면이었어요.

중학교 3학년짜리가 공부와 미래에 대한 과한 걱정으로 새벽에 깨서 울고,

(요새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건강도 안 좋아졌을 정도로 저는 옛날부터 스트레스를 참 많이도 받았습니다.


돌아보면 이런 스트레스의 원인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과한 의식,

그리고 그로 인해 제 자신에게 요구하게 된 과하게 높은 기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전에는 완전한 자랑거리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꽤나 후회 섞인 회고에 가깝게 저의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졸업을 할 때까지 빠짐없이 반 1등이었고,

늘 10등 안에 드는 게 당연한 전교권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라는 공간의 특성상 주목과 칭찬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언제나 기대의 말과 훌륭한 장래를 빌어주는 말들을 들었습니다.

(떠오르는 것만 생각해봐도 초등학교 때는 서울대 가라, 변호사 말고 판사해라, 선생님이 반 친구들에게 "OO이 서울시장 나가면 우리 다 같이 뽑아주자~" 식의 말과 분위기, 중학교 때는 외국 명문대에 도전해 봐라, 과학 선생님은 연구자가 돼라, 누구는 뭐가 돼라, 고등학교 때는 당연히 서울대 가야지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당장 생각나는 것만 이 정도니,

사실상 아무것도 아닌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으로서

참 과하고 과분한 말들을 오래도 들어왔다 싶네요.


저는 제가 자신 있는 극소수 분야를 빼 놓고는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고

노력파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 중에는 과대평가도 상당히 많았고

(예: 저는 상식이 다소 부족한데 '우리 반에서 가장 박학다식한 친구'에 뽑히거나,

심지어는 '건치를 가진 친구'에 뽑히는 등 (저 이 안 좋습니다.))

저는 성실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성과를 거둘 수 있었기도 했는데 말이죠.


어쨌든 이런 좋은 성적과 칭찬들을 뿌듯하게 담아 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외동에 외손주이기도 한 제 소식은 곧장 엄마의 전화로 양가에 퍼지고

가족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저는 또 칭찬을 받는 식이었습니다.


한편 공부와 함께 저의 학창시절에 있어 참 중요했던 것은

저의 드러나는 사회성, 평판과 이미지였습니다.


'기껏해야 학생이 무슨!' 싶으실 수도 있겠지만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건 저에게는 큰 문제였고

사실상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부담스러운 과제입니다.


생각해보면 실제 실력보다 더 좋은 평가와 기대를 받았던 것도

제가 늘 '썩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썼기 때문에 얻은

약간의 포장의 결과, 곧 좋다고만은 못할 후광효과가 아니었나 싶네요.


좋은 사람 콤플렉스 때문에 모든 친구들과 잘 지내고,

가능하면 호감을 사고, 늘 웃으면서 다니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나 '내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쓰였던 학기 초에는

집에 돌아오면 입 주변 근육이 아프기까지 했던 것,

공부해 둔 필기도 항상 웃으면서 모두에게 보여줬던 것,


그래서 언젠간 한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저에게

"OO이 너 특유의 그 미소가 있는데"라는 말을 해 줬던 것 같은 기억들이

아직도 조각조각 남아있습니다.


물론 제 노력보다 얌전히 공부하는 분위기의 학교와 착한 친구들 덕이겠지만

(다른 분위기의 공동체에서 지냈다면 아마 전 이것과는 다른 시간을 보냈겠죠.)

많은 친구들은 저를 아주 좋아해 줬고, 거의 매년 회장을 하고 친구들과도 사이 좋게 지내며

저는 학년 말이면 생기부에 늘 '품행이 단정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으며~' 류의 말을 당연한 훈장처럼 받곤 했습니다.


그리고 전 그런 제 자신이 좋았습니다.

나는 모두와 잘 지내고, 인성도 괜찮고, 능력도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고

그것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저의 위상을 뿌듯하고 든든하게 보증해줬으니까요.


그러나 뿌듯함으로 느낄 수 있는 기쁨과 함께

그 부작용도 참 크게, 오래 남을 수도 있다는 걸 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제 자아의 커다란 부분은

'인성 좋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보낸, 그러기 위해 노력했으며

또 그게 중요하고도 당연했던 초, 중, 고 12년의 시간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의 말이란 건

지금쯤엔 저라는 사람을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을 스쳐가는 인연들의

지나가는 한 마디 말들에 불과했겠으나,


꽤 긴 시간 여럿으로부터 그러한 칭찬과 기대의 말들을,

최고라고 치켜세워주는 분위기를 살아온 저에게는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제게 있어서 잘한다는 말, 참 성실하다는 칭찬을 오래 받아온 것의 문제는

그러한 외부의 시선들 자체에 대한 공포나 부담보다,

그러한 칭찬과 과대평가를 '내면화' 해 버린 것에 있었습니다.


외부의 자극과 시선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고유의 성향과 합쳐져,

성실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크게 돼야 한다'는 무조건적인 생각과

이를 충족시킬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자기 인정 같은 것들이

저의 내면을 너무 크게 잡아 먹고 말았다는 걸 나중에야 느꼈고,

사실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넘어졌으면 좋겠어'


제 얕고 짧은 인생에 있었던 가장 깊은 골은 고2 말 - 고3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는 길지 않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로 아직도 약간의 트라우마처럼 기억됩니다.

(벽이 막힌 독서실이나 수능 지문은 아직도 별로 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동시에 제 인생에 있어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돼 주었는데,

이때의 힘들었던 과정과 그에 비해 형편없었던 결과 덕분에


'최선을 다해 성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짐이 됐는지를

나중에서야 조금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수험 생활 당시, 저는 쉬는 것과 자기 친절의 중요성을 몰랐고

적절히 쉬어주고 스스로 격려해주지 않아 지친 마음과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효율성을

저의 부족이고 게으름이라고 탓하며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앉아서 친구의 말도 못 들은 채 하고 귀마개를 끼고 공부만 하고,

새벽 2시에 독서실에서 나오고, 밥 먹는 시간도 초조해하며

열심히 해도 부족하다는 생각만 들었고 괴로웠지만,

높게 잡아둔 하루하루의 공부량을 줄일, 스스로의 과한 기준을 낮출 생각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게으름이고 또 실패라고 느껴졌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사실 이 정도밖에 못하는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걸 수도 있겠고요.

시간 강박도 심해져서 흘러가는 시간이 늘 초조하고 불안했고,

항상 째깍거리는 시계를 마음에 달고 사는 피폐한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때의 제 상태가 참 안 좋았다는 걸 생각할 때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하루는 독서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저도 모르게 문득

'지금 여기서 넘어져서 굴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입원을 하면,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스스로 정당하게 좀 쉴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었어요.


돌아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참 미련하다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 쉬는 게 간절했으면 그냥 쉬었으면 되는데,

저는 그걸 스스로 용납해 줄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결국 이런 과한 자기 통제와 자기 비난으로 인해 저는 안 좋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수능을 심하게 망친 거죠.

그렇게까지 초조해하고, 스스로 괴롭히고, 안달하던 시간의 결과로서 말입니다.





연세대 국문학과, 경영 복전, 교직이수?


초등학교 때부터 서울대 가라는 얘기를 들었던,

고등학교 입장에서는 학교 실적에 '서울대 +1'을 해 줘야 하는 학생 중 하나였으나

이 정도면 공부를 왜 했나 싶게 허무하도록 수능은 '폭망',

수시는 서류부터 탈락하며 서울대입구역이 아니라 신촌역에서 내리는 대학생이 됐습니다.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라며:

연세대학교는 저에게 고맙고 감지덕지한 학교입니다. 제가 그토록 안달하던 시간의 결과로 수능과, 서울대 수시를 허무하게 망쳐버린 것이 저의 실패의 경험이라고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공간, 그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

그렇게 삶에 큰 변화가 생길 시기.


그러나 대학 입학식보다 먼저 찾아온 건 코로나19.

입학 후 약 2년 반 동안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인터넷 강의만 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뿌듯한 자아를

지탱해 줄 친구들을 사귀지도 못했고요.


집에만 있어 환기되지 않는 시간과 마음 상태가 지속되며

좀 더 어둡고 예민해져서 생긴 고민들도 있습니다.


수능을 망친 이후 얻은 깨달음은 물론 있었지만,

저라는 사람이 무언가 크게 바뀌기에는 부족했던 경험과 시간으로 인해

걱정이나 초조함은 전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어도 그대로였고,


늘 해 오던 건 그저 바보 같이 공부만 하는 거라

높은 학점을 받았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는 않았고,


약간의 관심에 더해 '안 하기에는 불안하니까' 하는 생각으로

경영학 복수전공에 교직이수까지 하게 됐습니다.



왜 대답을 못할까, "그래서 뭐 할 건데?"


진로.jpg


학창시절이 (씁쓸하게도) 대학을 위해 달려가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대학은 어쩌면 '좋은 곳'으로의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고등학교 3년 동안 사실 제가 큰 고민 없이 가져왔던 꿈은 PD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한 성향상,

계속해서 PD를 저의 꿈으로 생각하고 이런저런 대외활동에 인턴에 이것저것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고민에 마음을 내 주는,

제가 '진짜로'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시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어쩌면 당연하게도 혼란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어쩌다 취준생


벌여놓은 게 많아 들어야 하는 학점은

(4-2학기가 끝난 지금도) 아직 '9학점'이 남은

대학교 5학년 초과 학기 예정생.


어쩌다 보니 이름부터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취준생'이라는 신분이 되어버렸습니다.

진짜로 먼 얘기가 아닌 내 일이 되어버린 취업이라니.


그리고 어쩌면 가장 무서운 건 이제는 전부터 들어온,

그저 희망적이었던 미래의 무궁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의 말들을

슬슬 실현해야 하는, 어쩌면 이미 했어야 하는 타이밍이 됐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모든 가능성을 가능성의 영역에 남겨둘 수 있었지만,

이제 점점 몇 번의 선택과 시도라는 것으로

저에게 가능한 것의 범위가 줄어들게 되는 나이가 돼 버렸습니다.

마냥 눈부실 것 같았던, 막연히 성공적일 것 같았던 미래였는데 말이죠.


그런데 이 타이밍에 저는 멈춰버렸습니다.


인턴만 4번째, 심지어 그 중 하나는 일주일 다니고 퇴사.

진로 고민은 아직도 하는 중.


공부해야 한다고 5분 단위까지 초조해하던 제가

휴학 2번에 초과학기 한 학기로 졸업만 1년 6개월이 늦어지게 될 줄은,

그러고도 아직 직무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No답' 상태가 되어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즘의 제가

흘러가는 시간들,

매일의 경험들,

머릿속에서 엉키는 생각들과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추락하고 마는

감정 상태 같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나눠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딱 이 시기.

나중에는 분명 또 '그랬었지' 하고 돌아보게 될,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진리인 것 못지 않게

지금으로선 상.당.히. 심각한 것도 사실인

'그즈음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누군가의 시선에 대한 신경은 조금 접어두고,

성공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부담도 조금 내려두고

당장 하고 싶은 게 뭘까 생각해 봤을 때의 '나'는

이런 기록들을 차곡차곡 남기고 싶더라고요.




브런치에 적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 '모범생'으로서의 학창 시절, 느낀 점들, 여전히 극복 중인 것들

# 나 자신에 대한 혹독함과 자기 친절에 대하여

# 한창 고민 많을 시기, 2N살의 이야기

# 메뉴 고르기도 힘든데 직업을 고르라니

# 일상 조각과 매일의 단상 등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제 삶의 기록과 생각들을 차곡차곡 남겨두고

그것들이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는 장으로만 쓰인다 해도 괜찮을 거라고,


그리고 정말 혹시라도 비슷한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으면 아주 기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여기에 글을 쓰는 의미를 찾고 또 큰 기대는 조금 접어봅니다.


이 정도로 장황한 글쓴이 소개를 마칩니다.

글로 만나지만,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