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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ptonic Mar 18. 2020

뉴욕에서의 2박 3일


뉴욕에서 여행을 하는 첫째 날,  한적한 아침 산책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막상 숙소를 나오고 나서는 샤워를 마친 꼴이 되지 않는데 집중하다 보니 주변 구경은 사치나 다름없었다. 방패막이되어야 할 우산은 딱 3달러밖에 안 하는 만큼의 성능을 보여줬고, 결국 몇 번이고 뒤집히다 못해 뼈대가 휠 정도의 비바람을 40분가량이나 견디며 도착한 카페는 예상한 대로 붐비고 있었다. 이래서 오픈 시간대에 딱 맞춰 가려고 한 건데, 하지만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다행히도 자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서둘러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 나같이 영화 인턴에 나온 카페라는 말을 듣고 온 관광객 일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 일지, 혹은 그저 힙한 카페를 좋아하는 사람들 일지 궁금했지만 너무나 붐비는 탓에 결국 견디지 못하고 한 15분 만에 카페를 나왔다. 맞은편에 안 그래도 봐놓은 카페가 있었던 덕에 어렵지 않게 장소 환승을 했고, 커피를 또 시키기엔 내가 카페인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탓에 마카롱 하나와 크림 퍼프 하나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자그마한 공간, 그리고 콘센트까지, 내가 선호하는 카페의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공간이었다. 마침 걸려온 한국에서의 보이스톡 또한 반갑게 받으며 오래간만에 대화를 나누다 보니 비가 조금이나마 사그라졌고, 서둘러 이동을 하고 싶었던 터라 바로 브런치를 먹으러 일어났다.


Toby's Estate Cafe. 사람이 지나치게 붐비던 탓에 맘에 드는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인상적이었던 인테리어와 구름 낀 윌리엄스버그의 거리를 공유하고싶다.
아기자기한 공간에 눈이 가던 카페. Caprices by Sohpie가 이름이다. 마카롱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House of small wonder, 작은 놀라움이 있는 집, 사실 며칠 전 윌리엄스버그에서 가볼만한 브런치 장소를 검색하다 이 식당의 이름을 본 순간부터 딱 이곳에 가야겠다는 충동이 일었었다. 일식 퓨전 요리를 하는 곳이었는데, 아무래도 동양 음식은 시애틀에서도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이곳을 갈지 말지 여러 번 고민을 하며 다른 식당들도 찾아보았지만, 여기만큼 끌리는 곳은 결국 찾지 못해, 그리고 이 주변에선 가장 가까운 곳이라 망설임을 누르고 발걸음을 옮겼다.


저 사인들이 없었더라면 과연 저 가게를 찾을 수 있었을까.
다정한 색감의 음식들. 윌리엄스버그에 다시 간다면 꼭 다시 가볼 것이다. 

 

가게의 봄 시즌 음료 메뉴를 알리는 손 글씨가 적힌 사인이 없었다면 찾는데 좀 시간이 걸렸을 법한 장소였다. 입구는 벽돌 가득한 주변과는 조금 이질적인 느낌인 나무로 이루어진 벽에 카멜레온처럼 숨어있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후기에서 웨이팅이 있었다는 말을 본 터라 혹시나 언제 비가 다시 올지 모르니 조금 불안해하며 발을 들였는데 다행히도 내부는 한산했고, 나는 마음껏 인테리어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자리에 앉았다. 짙은 남색의 벽 색깔과 마찬가지로 짙은 목재 인테리어들은 한데 어울려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메뉴를 가져다주었는데, 이 또한 예쁜 비밀을 담은 일기장 같이 생겼던 탓에 메뉴를 고르기 전부터 사진을 찍느라 바쁠 수밖에 없었다. 메뉴는 일반 미국 식당에서 기대할법한 계란 베이스의 요리들과 일본 식당에서 기대할법한 덮밥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한참을 고민하던 찰나 결국 나답게 인스타그램에서 예뻐 보인다고 생각했던 치킨 미트볼 덮밥과 봄 시즌 특제 비트 우유를 골랐다. 따뜻하게 데워져 나온 비트 우유는 생각보다 달달하진 않았지만, 시나몬이 좀 많이 들어갔는지 특유의 정감 가는 알싸함이 짙게 느껴져 비와 추위에 한껏 긴장되어있던 몸이 음식이 나올 즈음엔 노곤해져 있었다. 한껏 부풀어 오른 반숙 노른자를 올린 덮밥은 무난하게 맛있었다. 카운터에서 일본어를 주고받는 종업원과 사장님에게 고치소사마데시다-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이기고 나왔을 때는 11시 즈음, 딱 박물관으로 가고자 했던 시간이었다.


개인적인 취향에 부합하는 짙은 색의 공간.


이 날 지하철에선 매우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지하철에서의 잡상인들과 구걸하는 사람들에겐 지나치게 익숙한 탓에 누군가 카세트를 들고 음악을 틀 준비를 하자마자 대놓고 불쾌한 티를 내며 이어폰을 꼈는데, 그 직후 내가 본모습은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어폰 너머로 들리는 힙합에 맞춰 봉춤을 추는 모습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봉을 붙잡고 이리저리 돌며 360도 회전까지 하는 모습에 어느새 사람들도 동조해 환호를 하고 있었고, 당연한 수순으로 구걸이 시작되자 사람들의 주머니도 조금 더 관대해진 듯했다. 결국 지갑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신기한 공연이었기에 적어도 불쾌하진 않았다.

잠시 거닐었던 센트럴 파크. 우중충한 날씨는 시애틀 주민이라면 누구나 익숙해서 그다지 아쉽지 않았다.

이 이후 결국 실수로 한 번 반대방향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조금 늦게 목적지인 역에 도착했지만, 워낙에 주변으로 새는 걸 좋아하는 성격 탓에 나는 바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가는 대신 바로 옆에 있는 센트럴파크를 거닐기 시작했다. 사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센트럴파크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은 몰랐던 정보였다. 딱 30분만 거닐다 들어가야지, 하고 걷기 시작한 공원에서 평소 같았으면 분명 적어도 4~50분은 허비했겠지만, 날씨가 영 흐렸던 덕에 나는 딱 목표한 시간을 채우고 박물관 안에 들어갔는데, 결국 추위에 시달리다 못한 핸드폰이 꺼져버리는 바람에 전시를 보는 것을 또 미룰 수밖에 없었다. 전시를 사진에 담는 사람이 아니라면 상관없었겠지만, 나는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을 사진으로 남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 전시를 좀 빠듯하게 보는 한이 있더라도 핸드폰을 충전시키는 것을 우위에 둘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박물관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특이하게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기념품을 파는 공간 안에 테이블들과 함께 충전을 시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놓았다. 나같이 전시를 사진에 담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빨리 배터리가 늘지 않는 핸드폰이 영 답답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전시 관련 책들을 몇 개 들여다보았지만, 예술을 눈으로 접해도 어려워하는 사람이 글로 쉬이 접할 리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몇 페이지 가지 못하고 여러 책들을 전부 내려놓았고, 그 대신 쓰기 시작한 것이 이 여행 수기이다. 대략 브런치 가게에 들어갔던 시점에서 핸드폰이 적당히 원하는 만큼 충전되어 목표 도착시간에서 거의 1시간 반이나 지난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박물관 구경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구경했던 것은 1층에 있는 중세 유럽의 미술작품들과 독일 미술가들의 작품들이었다. 작품들의 미적 가치들을 완전히 받아들이기엔 내가 그만큼의 지식이 없기에 자연스레 독특한 작품들에 눈이 가곤 했다. 사실 극 초반의 전시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예술가의 이름은 카라바조와 렘브란트 정도밖에 없다. 그 둘은 워낙 유명하니까. 그 이외로는 예수님 옆에서 혓바닥을 내밀며 기묘한 표정으로 울고 있는 누군가, 아기 예수님을 매우 불쾌한 표정으로 업고 있는 세례 요한, 그리고 그 옛날 중세에서 셀카봉 들고 셀카 찍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누군가의 그림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1층에서 너무 시간 끌지 말고 최대한 많은 것을 보라고 했던 친구의 조언을 따라 1층에선 그다지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바로 접했던 것이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유럽 미술관이었을 것이다. 고갱, 폴 세잔, 르누아르, 모네, 마네 등등의 그림들을 여럿 지나치며 반가워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지만, 내가 실제로 노리고 있던 전시는 따로 있었기에 그들을 보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해서 조급해지고 있었다. 분명 2층에 있다고 들은 전시인데, 아무리 걷고 걸어도 서양의 그림들밖에 보이지 않았던 탓에 결국 물어본 결과, 도로 1층으로 내려가 다른 구역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보일 것이라고 했다. Musical Instrument 전시였다.


세계 각국의 악기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은 누구에게는 동서양의 유명한 화가들과 조각가들의 작품보다는 덜 가치 있어 보이는 곳일 수도 있겠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플루트를 연주해온 내게 있어 이 날 이 전시보다 나를 끌어당기는 것은 없었다. 직원에게 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헤드폰과 리모컨을 받은 뒤 들어간 공간은 기대했던 만큼이나 즐거운 경험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동서양, 그리고 전통과 현대를 망라한 다양한 악기들이 각각의 자태를 뽐내는 공간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도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반투명한 색의 플루트, 공작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이 생긴 현악기, 호화스러운 색의 하프시코드, 생전 처음 보는 디자인의 기타들,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이국적인 악기들이 한데 모인 잡다한 천국에서 나는 소리 하나라도 놓칠세라 전시 공간을 적어도 두 번은 돌아다니며 모든 악기들의 소리를 들으려 노력했다. 물론 내가 플루트 연주자인 까닭에 가장에 기억에 남는 것은 부분들이 금색으로 장식된 하얀 유리 플루트의 소리였다. 몇몇 듣고 싶었던 악기들의 소리가 남겨져있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그 덕에 내가 이렇게 온전한 형태로 전시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웬만큼 다 봤다 싶은 생각이 들 즈음 도로 1층으로 내려갔다. 악기 전시를 보던 와중 눈길을 끌던 갑옷과 무기들의 전시가 있던 공간이었다.


수없이 많은 매체에서 접했던 갑옷들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생기를 뿜으며 늠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홀 중앙에는 아예 갑옷들을 올려놓을 말들까지 만들어 놓았을 정도로 정성을 들여놓았고, 그 이외의 갑옷들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갑옷 근처에 전시된 다양한 검들 또한 당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채 고전미를 뿜어냈지만, 사실 내 눈길을 끈 것은 그것들보다도 화려한 장식들을 품은 총들이었다. 형형색색의 긴, 혹은 짧은 총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유려함을 뽐냈는데, 선명한 색들도 색들이지만 총에 새겨진 장식들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떤 총은 처음부터 끝까지 로마시대의 풍경을 조각으로 옮겨놓은 모습을 하고 있을 정도로 화려했으며, 사람이든 사물이든 화려한 것에 사족을 쓰지 못하는 나는 홀린 듯이 총들의 모습들, 특히 화려한 손잡이 부분을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그 이후로는 잘은 모르겠지만 화려한 여러 귀족들의 방들을 구경했고, 결국엔 지나칠 수 없는 이집트 관에 들어가 딱 기대하는 다양한 돌들의 모습을 보았고, 또 고흐의 그림을 꼭 봐야겠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도로 2층으로 올라갔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로댕의 조각들과 미켈란젤로의 조각까지 볼 수 있었으니 슬슬 다리가 피곤해지는 와중에도 딱히 힘들지는 않았다. 생각하는 남자를 실제로 봤는데 힘들 새가 어디 있겠는가.

수많은 사진들을 찍었지만, 그 중 몇장만 이 곳에 공유해본다.

이렇게까지 보고 나니 굳이 더 찾아보고 싶은 전시가 없어져 한 3시간가량의 바빴던 구경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르뱅 베이커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지인이 이곳의 쿠키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고 해서 반신반의하며 일정에 넣은 곳인데, 마침 센트럴파크를 통해 갈 수 있는 곳이기에 가는 길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과 달리 화창하게 갠 날씨 덕에 더욱 에너지 넘치는 걸음으로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수없이 많이 찍은 길거리와 공원은 덤이다.


우중충한 날씨는 익숙할 뿐, 햇빛이 반갑지 않을리 없다 :)


베이커리는 약간 반지하스러운 공간에 위치해있었다. 예상 밖이었지만, 역시 유명세는 유명세인지 이미 열몇 명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있었고, 나 또한 그 줄에 합류했다. 근처에 또 다른 지점이 있다고 들었지만, 솔직히 걸어가기 귀찮았다. 파랗고 예쁜 가게의 외관도 찍고, 지인들에게 드디어 여기에 왔다며 소식을 알리는 도중 드디어 가게의 메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줄이 줄어들었고, 솔직히 말해서 처음 가격을 봤을 때는 경악했다. 쿠키 하나에 4달러라니. 쿠키 한 두세 개 사서 맛을 보겠다는 계획은 취소해야 했다. 이렇게까지 비쌀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그나마 사이즈도 꽤 큰 편에 속하다는 것이 다행인 부분이었다. 결국 가장 기본적인 쿠키 하나를 사들고 택시를 불러 오늘의 두 번째 주요 이벤트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르뱅 베이커리에서 산 쿠키와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는 건 사실 내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뮤지컬 티켓 자체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사실 이틀밖에 안 있는 와중에 굳이 넣어야 하나 싶어서도 있었다. 아마도 뮤지컬을 보지 않았다면 그냥 타임스퀘어를 구경하거나 아니면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가거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 하나는 꼭 보라며 돈을 대주겠다는 부모님의 제의를 거부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기꺼이 오페라의 유령을 예약했다. 처음 가는 김에 그래도 대표적인 뮤지컬 하나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고른 뮤지컬이었는데, 이후에 말하겠지만, 무난했다. 딱히 Mindblowing 한 경험은 아니었다.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은 혼잡했다. 금요일 저녁이기도 했고, 아마 이 일대가 항상 이러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안에서부터 지치는데 내려서는 어떡할까, 벌써부터 걱정이 엄습했지만 일단은 마음을 비우고 구경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확실히 뉴욕다운 공간이었다. 화려한 뮤지컬 광고들, 곳곳에 있는 입이 저절로 벌려지는 고층빌딩들, 도심 한복판에서 나오는 방탄소년단 광고, 그리고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다양한 가게들. 무언가를 살 의향은 없었기에 딱 두 군데를 들어갔는데, 그중 하나가 라인 스토어였고, 다른 하나는 디즈니 스토어였다.


라인 스토어는 예상한 그대로였다. 개인적으로 BT21 상품들에 돈을 많이 쏟을 의지는 한 번도 없었고, 그나마 안에 전시되어있던 웹툰을 기반으로 한 피겨들이 볼 재미가 있었다. 최근에 마텔에서 공개한 방탄소년단 인형들을 보니 어지간히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암튼 한 5분에서 10분 정도 있었나, 괜히 공간만 차지하고 있기도 그래서 바로 나와서 디즈니스토어로 향했다. 캡틴 마블 관련 상품들이 궁금해서 들어갔는데, 1층엔 미키 마우스와 그간 등장했던 디즈니 프린세스들 위주의 상품들이 주로 있어 바로 2층으로 향했다. 확실히 흥행하고 있는 작품이라 그런지 열정적으로 홍보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포토부스도 있고, 코스튬 전시도 있고. 다만 작품에 등장하는 임팩트도 없는 남자 빌런들 슈트를 꼭 전시해야 했을까 싶긴 했다. 그 공간을 차라리 캡틴 마블의 다양한 복장 전시에 썼다면 훨씬 더 유익했을 텐데. 누가 캡틴 마블에서 남자 빌런 따위들의 옷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아무튼 여기서도 딱히 아무것도 사진 않았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거리의 사람들에 너무 지쳤던 까닭에 곧바로 여유 있는 카페를 찾아 떠났다.


스타벅스라도 있으면 엎드려 절하며 들어가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왠지 카페 비슷한 공간이 보이는 것 같아 고개를 틀었는데, 그게 아마 그 날 가장 잘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놀라울 정도로 사람이 드문, 게다가 충전기까지 있는 예쁜 카페라니. 뮤지컬을 보기 전까지 지친 심신을 안정시키기엔 딱 맞는 공간이라 망설임 없이 들어가 앉았다. 결코 만만한 날씨가 아니었지만 너무 힘들었던 탓에 찬 음료까지 시키며 쉬던 와중, 아직도 내일 저녁때 만날 분과 과연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 사람도 별로 없겠다, 최대한 친화력을 끌어내어 직원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니치 빌리지 쪽에서 들러볼 만한 공간이 있냐고. 카운터에 있던 직원은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다른 직원이 아마 잘 알 거라며 그를 불렀고, 그분은 이내 여러 장소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온 재미있는 사탕들이 많은 가게, 캐주얼한 재즈 바, 그리고 그 일대의 식당들은 전부 맛있다는 유익한 조언까지, 전부 잊지 않고 가보겠다고 다짐하며 슬슬 뮤지컬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 일어났다.


처음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과연 공연 시작 전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길디 긴 줄에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다들 조금의 당혹스러움을 안은 채 줄을 서있었는데, 걱정이 무색할 만큼 줄이 금방 줄어들어(그만큼 검사를 설렁설렁해서) 관람 전에 필요한 행위들은 전부 쉽게 끝낼 수 있었다. 가능하면 술 한 잔을 곁들이며 관람하고 싶었는데, 한 병에 $6짜리 물은 그렇다 치지만, 한 잔에 $16짜리 보드카와 한 팩에 $27인 와인이라니, 질색할 수밖에 없는 가격이었다. 술은 다음에 마시기로 속으로 생각하며 그냥 공연에 집중하기로 했다.


처음엔 익숙한 넘버들에 신났지만, 사실 이미 영화로 여러 번 본 내용이다 보니 조금 루즈한 기분으로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라울과 팬텀에 비해 조금 존재감이 밀리는 것 같은 크리스틴 역의 배우도 조금 아쉬웠다. Think of me에서 고음으로 올라가기 전에 아아아 아-아-아-아 / 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는 부분을 전부 부드럽게 처리해서 속으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전부 끊어서 하는 것에 익숙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결코 배우 분이 못 하신 건 아닌데, 개인적인 취향으로 인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작년 11월쯤부터 크리스틴 전속 배우로 활동하고 계신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더 익숙해지시겠지 싶다.


공연이 전부 끝나고 10달러를 기부한 대가로 오페라의 유령 토트백을 받고 나온 뒤엔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내일엔 약속이 두 개나 있기도 했고, 너무 피곤하기도 했다. 숙소에서 한 사람이 코를 너무 미친 듯이 고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는 슬픈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긴 하지만, 굳이 줄을 많이 들여 설명할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니니 스킵하도록 하겠다.


커튼콜


암튼 첫날치곤 매우 알차게 잘 보냈던 하루였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는 대신 박물관에서 여유 있게 구경할 수 있게 시간을 둔 덕에 여러 가지 변수들을 감당할 수 있었어 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이 전부 끝난 지금도 자유의 여신상을 못 본 게 그다지 아쉽지는 않아서 상관없는 것 같다. 어차피 계속 그 자리에 있을 동상인데, 죽기 전 언젠가는 보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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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아침의 시작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웠어야 했으나, 전날 코를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요란하게 골던 백인 남자 탓에 잠을 설쳐 결국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갈 수밖에 없었다. 어제 브런치를 먹었던 장소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공간에서 만나기로 한 터라 그래도 주위가 익숙했다. 다시금 산책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지는 동네였다. 아무튼 목적지는 Five Leaves, 팬케이크가 유명한 브루클린의 맛집은 얼굴을 후리는 것 마냥 불어대는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미 웨이팅이 1시간 반 가량 생겨있는 상태였다. 사실 다음 약속과 텀을 조금 두고 브루클린 브릿지를 갔다 오고 싶었던 터라 가능하면 웨이팅 없는 곳에서 먹고 싶었으나, 워낙 다른 두 친구들의 의지가 확고하기도 했고, 또 맛집이란 타이틀이 붙으면 결국 사족을 쓰지 못하는 나인지라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참 맛있었는데, 내 자리에서의 조명이 그다지 좋지 못해 사진이 이렇게 어둡게 나와버렸다.


두 명 이상의 사람과 만나면 말 수가 어쩔 수 없이 조금 줄어드는 나라, 아마도 두 사람은 내가 조금 낯을 가린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 나름대로는 매우 반가웠고,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두 사람은 평소에 실제로 알던 사람들이 아닌 sns에서 만난 인연들이다.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두고서 이야기하다 친해진 케이스인데, 아이돌 얘기도 아이돌 얘기지만 사실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대학에 관한 이야기였다. 두 사람 다 디자인 쪽 전공에 발을 들이거나, 혹은 들일 예정인 사람들이었고, 후자가 마침 고3이었던지라 꽤나 심도 깊은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뉴욕의 고등학교는 내가 알던 미국 고등학교의 이미지와 꽤나 상반된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고등학교에 한정된 이야기 일 수도 있겠지만, 매년 말 평소에 보는 중간 기말과는 별개로 모든 과목에 대해 테스트를 실시하고,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졸업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사실 한국과 미국 통틀어 처음 듣는 커리큘럼이었다. 매 학기 중간 기말만으로도 벅찰 텐데, 게다가 이 상황에 SAT와 ACT까지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역시 대도시는 다르구나 싶었다. 내 동생이 다니던 미국 고등학교가 비교적 위치가 시골에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들었던 고등학교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학생의 자율적인 과목 선택을 존중하고, 수업을 따라가는 것 이외의 활동들을 강조하는 것이었기에 정 반대의 이야기가 신기했다.


나라고 대학에서의 미래가 당장 아주 밝은 것은 아니었기에 세 명의 분위기가 조금 침울해졌을 즈음, 결국 우리의 대화는 다시 방탄소년단으로 들어갔고, 소위 인생 베팅을 했다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분위기는 도로 밝아졌다. 친구 한 명은 일을 하러, 나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나러 이동해야 했기에 우리는 나름대로 밝게 대화의 마무리를 짓고 작별을 했다.

야외에서의 매그놀리아

나의 다음 목적지는 그리니치 빌리지, 혹은 그린위치 빌리지라 불리는 곳이었다. 뉴욕 안에서도 여유 있는 공간에 속하는 곳, 그리고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본점이 있는 곳. 조용한 거리는 적색의 예쁜 건물들로 가득했고, 가을에 오면 꽤나 예쁘겠구나 싶었다. 여러 사람들이 도로 곳곳에서 이미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 또한 열심히 거리를 사진으로 남겼다. 사실 친구에게 이곳에서 만날 것을 제안했을 때 이미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본점을 주목적으로 두고 물어봤던 지라 거절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본인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며 반겼고, 마침 친구가 도착했을 때는 길던 줄이 다 사라졌던 차라 곧바로 시그니쳐 메뉴인 바나나 푸딩과 레드벨벳 머핀을 사들고 밖으로 향했다. 디저트가 다 그렇듯 맛이 생전 처음 먹어보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의 그것은 아니었으나, 왜 유명한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나나 푸딩이 괜히 시그니쳐 메뉴 인 게 아니었구나 하며 야외에서 잠깐의 수다와 디저트를 끝낸 뒤, 우리는 어제 카페 직원에게 추천받았던 socketbit이라는 사탕 가게로 향했다. 온통 하얗고 넓은 공간을 보니 확실히 북유럽스러운 공간에 들어왔구나 싶었다. 색색의 사탕들은 대체로 이미 익숙한 비주얼들이었지만, 어차피 내일 4시간가량 보스턴으로 이동해야 하기도 하고, 북유럽에서 만들어져 넘어온 사탕이란 말에 이미 넘어갔던 나는 종류별로 열심히 담았다. 해골 젤리가 귀여워 여러 개를 담았는데, 하나같이 내가 싫어하는 입에 쩍쩍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끈적끈적한 느낌의 젤리이었기 때문에 내가 고른 것들 중 가장 아쉬운 선택이 되었던 것 빼곤 다들 맛있었다.


매장 안에서 찍은 사진들은 어째서인지 전부 흐릿해서, 어쩔 수 없이 사탕들의 사진은 생략한다...


이다음엔 Fat Cat이라는 재즈 바를 갔어야 했으나, 아쉽게도 그곳의 분위기는 내가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앉을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공간 전체가 당구장과 탁구장으로 가득했고 곳곳이 소란스러움으로 가득해 대화하기도 어려운데 재즈 공연이 시작해도 제대로 들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어 도로 나왔다. 둘이 가기보다는 한 넷이서 가서 캐주얼하게 당구도 좀 치고 맥주 한 잔을 걸치며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기엔 좋은 공간일 것 같았다. 나야 재즈 바를 이미 몇 번 가봤지만 친구는 이번이 첫 경험이었던지라 좀 아쉬워하는 것이 보였지만, 음악을 즐기기에 좋은 공간인지는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비건 지향이라는 말은 이미 들었기에,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될 즈음 우리는 비건 식당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비건은 아니지만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이 지속 가능한 비건 생활(혹은 이념)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기에 간간히 비건 식당을 가는 편이다. 한 명이라도 더 소비를 하면 이런 행위가 쌓이고 쌓여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비건도 아니면서 나이브한 행동을 한다고 비판당한다면 할 말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튼 Urban Vegan Kitchen이라는, 이름부터 정체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공간은 마침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원 월드 전망대를 가는 길에 위치해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목적지로 향했다.


그곳은 딱 힙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바 공간 바로 옆에선 디제이가 추억의 노래들을 틀고 있었고, 식당 안은 다양한 그림들로 가득했으며, 무엇보다 바텐더들의 활발함이 다른 식당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나는 비건 치-컨(Chick-Un) 샐러드, 친구는 비건 새우 샌드위치를 시켰다. 바텐더가 너무 말이 많았던 탓인지, 식당이 너무 시끄러워 사실 뭐라 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던 탓인지, 주문하는 와중 내 샐러드에 버펄로 소스를 추가했는데, 나중에 보니 3달러나 더 청구가 되어있었다. 사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종류의 소스였는데, 아쉬운 일이었다. 식당이 붐비던 탓에 적어도 20분은 기다리며 바텐더가 무언가를 위해 코코넛 세 개를 깨는 모습도 보고,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들도 보던 와중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은 아니었기에 우리 둘은 열심히 식사를 끝냈고, 밖이 완전히 어두컴컴해졌을 즈음 전망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던 고층 빌딩들은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 이상으로 독특한 모양새들을 갖춘 경우가 많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젠가 마냥 건물 층층마다 무언가 유리로 된 방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있던 건물이었다. 왜 존재하는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뉴욕 젠가 빌딩이라고 검색한다고 무언가 나올 것 같지도 않아 그때는 그냥 미스터리로 남겨두자고 생각했다. 마침 이 글을 쓰는 와중 생각이 나 별생각 없이 뉴욕 젠가 빌딩 하고 검색을 해보니 나만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관련 글들 여럿이 보였다. 펜트하우스이며, 내부가 무척이나 예쁜 건물이며, 또한 비싸다는 것이 글의 요지였다. 어차피 내가 가볼 일은 없을 테니 부유한 누군가가 제대로 즐기고 있기를 바라야겠다.


높디높은 건물들 사이에서도 원 월드 전망대는 특히나 눈에 띄었다. 뉴욕 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니 그럴 만도 했지만, 실제로 보니 새삼스레 와 높다, 하는 뻔한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득하게 뻗은 몸통을 따라 시선을 올려 뾰족한 건물 끝을 보면 하늘을 찌를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지금에야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입장 예약 시간을 5분밖에 남겨두지 못하고 있었던 탓에 서둘러 들어가는 데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하나에 담을 수 없는 높이


다행히도 건물 안에 도우미들도 많았고, 지시도 꽤 명확했기에 우리는 어렵지 않게 102층을 향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소지품 체크를 하고,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과 관련 있는 것 같은 동굴을 지나고 나서야 나타났다. 내부는 생각보다 작았기에 한 칸 당 많아야 6~7명이 타는 듯했고 102층까지 고속으로 올라가는 도중엔 엘리베이터의 벽에서 빌딩의 역사, 그리고 뉴욕의 발전 역사를 요약한 영상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조금만 더 뒤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너무 생각 없이 엘리베이터 안에 딱 붙는 바람에 영상의 일부분만 볼 수 있었어 서 조금 아쉬웠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고 바로 전망대가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전망대로 들어가기 전, 몇몇 사람들은 감동적이었다고 평가하는 영상 하나를 보여주는데 인상적이긴 했다. 또한 영상이 끝나고 전망대로 가는 길에 일행끼리 온 사람들을 모아 즉석에서 사진들을 하나씩 찍어줬는데, 폴라로이드로 건네주나 살짝 기대했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사진 하나에 $45를 청구하는 바람에 단 칼에 거절하고 나왔다. 돈을 요구하는 것 까지는 이해가 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돈은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찍힌 사진들 중에서는 가장 잘 나온 사진이었는데 참 아쉬운 일이다.


본격적인 전망대의 안은 딱 적당히 붐비고 있었다. 뉴욕 전체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의 전체가 사람으로 덮인 것은 아니었기에 우리는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분주히 서로를 찍어주고 셀카도 찍어주며 즐겼다. 이미 수많은 나라의 야경을 수없이 많이 봐온 나이기 때문에 이번 야경이라고 막 특별하다고 평가하기엔 조금 그렇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화려함의 정도가 다르긴 했다. 까마득하다고 생각했던 건물들이 장난감처럼 보이는 건 언제나 재미있는 구경거리이기도 하고, 거리 전체가 빨간색으로 보일 정도로 거리가 차로 꽉 찬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했다. 물론 저곳에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온갖 욕으로 가득 차 있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즐거움에 일조를 했으니 다행이지 않을까요, 하고 닿지 않을 혼잣말을 했다.


말 그대로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던 지라 구역마다 보이는 야경의 분위기가 달랐던 것도 주목할만한 점이었다. 어떤 구역은 전형적인 도시 야경의 형태를 띠는 반면, 어떤 구역은 당장 블레이드 러너 같은 영화의 소재가 될법한 사이버펑크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런가 하면 어떤 구역은 다리와 강이 어우러져 한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뉴욕을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듯이, 뉴욕의 야경 또한 하나로 정의할 수 없었다. 원월드 전망대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었다. 너무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 사진에 덜 화려하게 담길지는 몰라도, 거진 1달을 넘게 있지 않는 이상은 결코 전부 볼 수 없는 뉴욕의 다양성을 간접체험을 통해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   


몇 장의 야경을 공유해본다. 이 광경은 직접 봐야만 그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의 구경을 마치고 난 뉴욕의 거리는 아까보다도 더 쌀쌀해져 있었다. 패딩 하나만 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하필이면 시애틀이 반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더워져 있을 때 뉴욕으로 건너온 탓에 두꺼운 옷을 별로 챙겨 오지 않아 여행하는 내내 날씨가 좀만 추우면 지하철이든 어디든 들어가려 기껏 뉴욕의 밤거리를 누비면서도 그다지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아 아쉽긴 하다.


이렇게 뉴욕에서의 일정은 전부 끝이 났고, 이 이후에 뉴욕에 대해서 할 얘기는 우선 호스텔 방에 코 시끄럽게 골던 사람이 다행히도 나가 있어 다음 날 6시에 무사히 일어났다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다. 뉴욕에 대해서 사실 사람에 대한 부분은 그다지 기대하고 오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면 꽤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워낙 뉴욕의 사람들은 건조하고 친밀감 있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랬던 걸까, 생각보다 다정다감한 사람들도 많이 마주쳤고, 짧지만 즐거운 대화도 간간히 나누었기에 딱히 피부로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이 이후에는 1박 2일간의 보스턴 여행이 있었고, 보스턴은 오히려 뉴욕보다 즐기고 온 도시이나, 보스턴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나중에 나누고 싶다. 동부의 도시들은 서부와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갈 때마다 설렘이 클 수밖에 없다. 낯선 것에 대한 설렘은 내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한 문장 한 문장 설렘을 풀어나가다 보면 글은 어느새 내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 기분 좋게 잃는 통제이지만, 조금 나중에 더 준비가 되었을 때 풀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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