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ptonic Mar 28. 2020

 미국에서의 첫 사무직: 콜센터

처음 해보는 제대로 된 Customer Service 일 치고는 적응을 그래도 나쁘지 않게 한 편이다. 시작부터 콜센터를 노리고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학비 절감을 위해 워싱턴주의 거주민으로 인정받고자 1년간 일할 직장을 알아보는 중 한 기관에서 연락이 왔었다. 설거지 겸 마감 알바를 반년 넘게 한 이후로 몸을 쓰는 일에는 이골이 나 있었던 참인 데다 한 달 가까이 큰 수확이 없었던 탓에 지쳐있었어서 곧바로 면접 요청을 수락했다. 채용 과정을 더 자세히 풀자면 너무 이야기가 복잡해져서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중개 기관에서 연락이 와서 나, 중개 기관, 그리고 센터 이 세 곳의 소통을 통해 채용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의 면접을 보았다. 첫 전화면접은 대학에서 첫 강의를 듣던 중 뛰쳐나와서 받아야 했다. 만약 일이 잘 안 풀리면 그냥 대학이나 계속 다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쨌든 강의를 가긴 가야 했었다. 그쪽에서 전화를 예정보다 늦게 주는 바람에 예상 질문도 되새기지 못한 채 당황스러움이 목소리에 가득 담긴 채로 면접에 응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곧바로 다음 면접 스케줄을 잡을 수 있었기에 나름대로 자신감이 붙었다. 직접 만나 면접을 볼 때는 그래도 Customer Service와 연이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한국에서 조교 일을 하면서 전화 대응을 했었느니, 오레건의 작은 동네 수제 초콜릿 가게에서 일하면서 나름대로 고객들과 소통을 했었느니, 하는 말들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쪽에서도 그다지 신경 썼던 것 같지는 않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40분이 넘는 면접을 보았는데 여러 번 연달아 실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채용된 걸 보면 아마 한국어와 미국어가 둘 다 되는 사람을 찾기 힘들어 그대로 데려온 게 아닌가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나름대로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일 자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매뉴얼을 거의 반년 가까이 반복해서 참고하면서 이골이 날대로 익숙해져서 일지도 있지만 사실 주 고객층도  한 직종에 한정되어있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도 대체로 비슷해서인 것도 있다. 보통은 그들이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들어야 하는 수업들에 관한 질문들이 5~70%를 차지한다. 그들의 나이대가 대체로 적어도 4~50을 넘어가기 때문에 아무래도 수업들의 콘텐츠 자체보다는 대체로 온라인 상의 문제들에 대한 전화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메일을 통한 비밀번호 교체와 구글 크롬 브라우저의 설정에서 플래시를 허용 상태로 바꾸는 것에 대한 전화가 40분을 넘어가면 아무래도 지칠 때가 있지만, 그럴 때마다 역시 이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서 또 마음을 다잡게 된다. 물론 그게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거의 한 시간 반에 달하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고객님도 내 목소리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끼셨을까. 쉬는 시간 스케줄을 거의 40분 초월하고서야 전화가 끝나고 나는 거의 쓰러지다시피 했었다.


그래도 대체로 수업들에 대한 전화는 어렵지 않은 편이다. 아무리 전화들이 격해진다고 해도 대부분은 그들이 트레이닝 데드라인을 지키지 못한 것이 원인이기 때문에 전화 끝에 겁박하는 어투로 내 이름을 재차 물어본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며 말해준다. 


- 왜 퍼스트 네임만 말해요? 라스트 네임은 뭔데요?

-고객님, 저는 고객님께 제 라스트 네임을 말해드리지 않을 권한이 있습니다.

-왜요? 쫄았어요? (진짜로 이렇게 물어보았다.)

-아뇨. 단순히 제가 거부할 권리가 있어서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이렇게까지 나가면 고객들이 아무리 납득을 하지 않는 대도 갸우뚱하면서라도 전화를 내 주도 하에 마무리 할 수 있다. 교육받을 때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친절함을 베이스로 하되 내 권리는 똑바로 챙기라는 것이었다. 화난 고객들을 상대로 움츠러들지 않는 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practice makes perfect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코치들이 누누이 강조했던 문장을 실천하고 있다. 그들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마.


물론 전화들이 더 어려워지는 경우들도 있다. 특히 고용이나 월급 같은 문제들에 엮이게 되면 전화가 기본 2~30분은 가겠구나 하고 속으로 한숨을 쉬게 된다. 즉각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제가 고객님께서 말씀하신 부분들을 전부 적어 case들을 escalate 할 테니 걱정 마세요. 이렇게 끝나면 참 좋을 텐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우리를 믿지 못한다거나, 그게 다냐, 하는 반응이 돌아오면 그냥 저희 쪽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는 말만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내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래도 꼭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케이스들도 많다.


미국에서 콜센터로 일하며 겪게 되는 가장 흥미로운 순간들 중 하나는 역시 통역사를 불러와서 나, 통역사, 그리고 고객 세 명이서 대화를 나누는 순간일 것이다. 직업 특성상 영어에 능통치 않은 사람들도 많기에 중국어, 스페인어, 소말리아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태국어 등등 수많은 언어를 접하게 되고, 한 언어가 반복되다 보면 대충 단어 한두 개쯤은 어떤 뜻인지 감을 잡게 된다. 예를 들어 이메일의 @ 부분을 스페인어로는 arroba라고 말한다거나. 예전에 배웠던 언어들의 파편을 알아듣는 순간도 짜릿하다. 투슈관, 아 도서관에 대해 말하나 보다. 뻬로, 그러나, 아 무슨 문제가 있나 보다. 깜언, 아 감사하시구나.


그리고 이 나라의 사람들은 대체로 감정표현이 뚜렷하다. 그래서 공감하기도 더 쉽다. 어느 나라 사람들이건 대체로 그런 걸 보면 미국에서의 삶이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게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아하, 그렇겠네요. 당신이 **했을 마음을 이해해요. 우선 공감하고 나면 전화가 쉬워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경험상 고객들이 화가 나기 시작할 때는 본인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면대면으로 진행되는 대화가 아니기 때문에 말 한마디만 잘못 해도 바로 전화의 핀트가 엇나가기 마련이다. 아무리 내가 진심이 아니라고 해도 일단 '이해'한다고 말하는 데서 성공적인 해결의 단추가 끼워 맞혀진다고 생각한다.


화낼 때의 감정표현이 뚜렷한 만큼 감사할 때의 감정표현도 뚜렷하기 마련이다. 

오 당신 덕분에 십년감수했어요, 당신에게 뽀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음 무와(실제로 muah muah 하셨다)! 

오 당신 같은 사람의 급여는 올라야 해요, 혹시 상급자 있어요? 당신이 너무 좋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너무 친절하시고 참을성 있게 잘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오 당신 덕에 오늘 하루가 훨씬 더 좋아졌어요, 감사해요!

대충 기억나는 멘트들만 해도 이 정도이다. 정말 솔직한 감사의 표현을 여러 가지 형태로 받을 때마다 얼굴에 미소가 만개한다. 


그런데 참 사람 마음이란 게 이상하다. 그 날 받은 50 건의 전화가 무난했어도 딱 하나의 전화만 잘못 걸려도 그 순간부터 전화를 받는 게 무서워진다. 어떤 때는 거의 1시간 동안 가슴이 쿵쾅거려 따뜻한 차를 연신 들이키며 겨우 나 자신을 달랬던 적도 있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일하고 있어? 대체 너 같은 사람한테 왜 돈을 주고 일하게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고객님들의 화가 내 잘못일 때도 있고, 고객의 잘못일 때도 있고, 혹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안타까운 상황이 원인일 때도 있지만, 어쨌든 그 화를 받는 것은 고스란히 나이기에 더욱 힘든 것 같다. 특히 인종차별이 연관되는 순간이 가장 힘들다. 내가 너보다 영어 잘하니까 나한테 똑같은 문장을 두 번 말하지 마, 쎼쎼니, 그래서 넌 어느 나라 사람인데, 미안 내가 영어가 제2외국어인 사람들의 말은 잘 못 알아들어서. 그냥 힘이 빠진다. 악의가 있으면 전화를 끊어버리기라도 하지, 악의가 없는 경우엔 그저 한 문장만을 떠올리게 된다. 무지도 죄다.


CS 분야에 초보인 나에게 여러 가지 쉽지 않은 요소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거의 반년 가까이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해서 일하고 있는 이유는 역시 사내의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다양한 인종, 문화, 성적 지향성, 젠더가 어우러져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는 내가 살면서 어디에서도 겪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공식 행사에서 발언할 때든 혹은 소소한 미팅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든 본인의 젠더를 우선적으로 소개하게 하고, 수시로 서로의 문화들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행사를 부서 내부에서 진행하고, 사원 개개인이 그 이벤트들을 진행할 수 있게 해 준다. 무엇보다 내가 단순히 이 회사의 부품이 아닌, 개개인으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지금 이 곳은 나에게 너무나 매력적이다. 


콜센터들 조차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요즘, 매주 매니저와 weekly-check in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궁금한 것이 있었다면 물어보고,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자기 관리는 잘하고 있는지, 혹시 건의할만한 사항은 없는지 물어보는 시간이다. 엄청난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지만, 사람과 소통하기 힘든 요즘 같은 시기에 회사에서 최대한 직원들이 서로와 교류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시간이다. 이러니 사람들의 애사심이 높구나, 하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어쨌거나 복학을 최종 목표로 두고 있기에 결국 끝을 정해두고 한 취업이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난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발전을 목표로 하고 살아가는 삶은 언제나 새롭다. 이번 주도, 다음 주도, 진상과 좋은 고객들이 번갈아가며 나타나겠지만 그것이 두렵지 않다는 점에서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나의 모습이 비교가 된다. 앞으로 몇 개월 뒤에 또 이 일에 대해 글을 쓴다면 어떤 모습일까? 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잡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