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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ptonic Mar 16. 2021

필라델피아에서의 한 주 - (1)

여행의 시작, 그리고 Center City 주변 탐색

필라델피아에 사는 동생을 보러 가겠다 다짐하고 망설임 없이 티켓을 결제한 지 대충 세 달이나 지났을까, 나는 공항에 가자마자 집으로 돌아갈 뻔했다. 


내가 티켓을 구매한 항공사는 Spirit Airlines이라는 곳인데, 이 곳은 비행기 표 가격이 충격적으로 저가인 대신 가격을 제외한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 애초에 이 항공사는 비행 시간대부터 선택지가 적고, 이륙 시간도 자주 변하고, 자기네 멋대로 티켓을 취소시키는 경우도 잦은데, 내가 너무 안일했었다. 나는 이메일을 매일 체크하는 편인데도 어쩌다 비행 취소 알림 이메일을 놓친 것인지. 원래의 스케줄에 따르면 아침 6시에 이륙 예정이었는데 그 시간대엔 공항까지 가는 버스도 없는지라 자동차가 없는 나는 거의 $60에 달하는 공항까지의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그 전 날 퇴근하자마자 공항에 가서 밤을 새웠고, 거의 이륙시간에 가까워지고 나서야 티켓이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꾸만 체크인이 거부당하길래 대체 왜 이러나 거의 열 번을 시도하고 알고 보니 아직 열지도 않았던 항공사 고객센터에 전화도 해본 끝에 설마 하고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대략 한 달 전에 취소를 알리는 이메일이 왔었던 것이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걸 비행기 표 값을 대주신 부모님께 알려야 하나, 그냥 이대로 집에 가야 하나, 비행기표 재예약을 해야 하나, 이렇게 갑자기 재예약이 가능하긴 한가. 고심 끝에 결국은 재예약을 하기로 결정한 후 비행 편을 확인해보니 근처 시간대에 하나가 있긴 했다. Spirit Airlines 카운터 옆에 붙어있는 American Airlines의 승무원들이 대충 적어도 1시간은 전전긍긍하던 나를 불쌍히 여겼는지 티켓 재예약을 아주 친절히 도와주었고, 나는 $700 정도를 그 자리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필라델피아를 향해 날아갔다. 신용카드 빚을 전부 갚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내가 겪어야 했던 피로를 보상...해주지는 못하지만 기분전환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는 비행기 밖의 풍경.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1월의 필라델피아는 놀랍게도 생각보다 따뜻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기온이 온건한 서부에만 살다 보면 동부의 겨울 날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롱 패딩으로도 충분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 가득한 채로 공항에서 나온 나는 동생을 만나자마자 "야 필라델피아 별로 안 추운데?"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곧바로 우버를 타고 동생이 사는 곳으로 향했다. 밤을 새운 데다 비행기 문제까지 처리하느라 진이 빠진 상태였기에 우버 기사와 대화를 나눌 여유조차 없이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나는 어느새 동생의 집에 도착했고, 동생이 직접 차려준 따뜻한 저녁식사이자 거의 20시간 만의 첫 끼를 먹자마자 곧바로 잠들었다. 

동생이 직접 끓여준 조개 미역국과 다이어트 용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바나나 오트밀 쿠키. 


나는 하룻밤을 푹 자고 나서야 내가 다른 도시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본격적의 여행의 첫날은 시애틀에서 보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구름 가득한 날씨였지만, 휴가를 내고 여행을 왔는데 뭔들 반갑지 않을까, 나는 가이드를 자처한 동생을 따라 필라델피아의 Center City를 향해 걸어갔다.


첫 번째 목적지는 차이나타운이었다. 차이나타운이야 미국 어디를 가든 있는 흔한 공간이지만, 미국에서 오래 지내며 이런저런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기보다는 익숙한 곳에서 오히려 즐거움을 찾기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작은 골목들의 색다른 공간들을 찾는 즐거움은 포틀랜드에서, 화려한 불빛과 파티의 즐거움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대도시의 웅장함과 고풍스러운 옛 도시의 모습은 뉴욕, 시카고, 그리고 보스턴에서, 따뜻한 바닷가에서 음악과 함께 신나게 뛰어노는 즐거움은 마이애미에서; 이렇듯 각기 다양한 도시들에서 이미 웬만한 미국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았다 보니 예전의 많은 것을 보는 여행에 대한 강박은, 적어도 미국 내 여행에 한해선 많이 줄어든 편이다.


필라델피아의 차이나타운은 시애틀의 차이나타운보다는 더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평일인 데다 코비드 나인틴 시국까지 겹쳐서 그런지 그다지 거리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고, 목적지였던 'Dim Sum Garden'에 가서도 수많은 블로그 리뷰들이 경고했던 긴 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보다시피 익숙한 음식들이지만, 요즘같이 밖에서 무언가 먹자고 하기 어려운 때에 같이 나가서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귀하다!

내가 음식 맛에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라 이 곳의 맛에 대해 뭐라 자세한 평을 남기긴 어렵지만, 딤섬류 요리가 정말 못 만들지 않는 이상 대체로 어느 정도 맛이 있는 편이고, 가격도 괜찮고 유명한데 딱히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단 유명한 곳들을 들르고 나서야 조금 덜 알려진 소위 'Hidden local gem' 들을 찾아다니는 성격이라 모두가 다 가는 맛집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 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그러시다면 한 번쯤 들러도 아쉽지 않을 것 같다.


필라델피아 차이나타운의 입구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동생이 추천하는 빵 맛집에 가서 소보로 빵도 사 먹고, 입구 사진도 찍으면서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레딩 터미널 마켓 (Reading Terminal Market)으로 향했다. 


레딩 터미널 마켓, 혹은 리딩 터미널 마켓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 중 하나라고 한다. 이곳 또한 재래시장들이 그렇듯 온갖 식재료들로 가득하고, 마켓 내의 유명한 가게들로는 Beiler's Donuts (매장 내의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실제로 줄을 서서 무언가를 사는 가게), Bassett's Ice Cream 등등이 있다. 물론 이 도시의 명물인 치즈 스테이크도 먹을 수 있지만, 나는 막 밥을 먹고 온 직후였기 때문에 굳이 사 먹지는 않았다. 여담이지만, 나는 필라델피아를 떠날 때까지 치즈 스테이크를 한 번 도 사 먹지 않았다. 뉴욕에 가서 떠날 때까지 자유의 여신상을 한 번도 보지 않고 떠났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어느 도시를 가든 유명하긴 한데 해보고 싶은 다른 것들이 많아 굳이 1순위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레딩 터미널 마켓에서는 후식들을 주록 즐겼다. Bassett's에서 석류맛+커피맛 아이스크림을, The Famous 4th Cookie Company에서 쿠키를, 그리고 후식에 곁들이기 위해 Old City Coffee에서 드립 커피를. 그렇지만 요즘 같은 때에 사람들이 북적한 마켓 안에서 무언가 먹기는 조금 신경이 쓰여 마켓 바깥으로 나가 사람들이 없는 구석에서 동생과 함께 허겁지겁 후식을 끝냈다. 


마지막 행선지는 Love Park 였다. 동생의 말에 의하면 필라델피아에 살면서 자기도 처음으로 가본다고 했다. 찾아보니 내가 로컬이어도 굳이 누군가 놀러 오지 않으면 한 번 이상 가지 않을 것 같은 장소이긴 했지만, 어차피 근처이기도 하고 사진이나 찍을 겸 열심히 공원을 향해 발을 놀렸다. Love Park도 평상시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소위 사진 명소이지만 코로나의 영향이 컸는지 다행히도 한산했다. 

후자는 Love Park가 아닌 다른 위치에 있다.

Love Park는 보이는 그대로의 공간이라 딱히 더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하늘이 좀 더 파랄 때 왔으면 좋았겠지만 여행의 모든 순간이 원하는 그대로일 수는 없으니 딱히 미련을 두지 않고 동생과 서로 충분히 사진을 찍어준 뒤 공원에서 발을 돌렸다. 필라델피아는 언젠가 꼭 다시 갈 예정이지만 굳이 Love Park에 다시 가지는 않을 것 같다.


Love 사진 옆의 Amor 동상은 나도 동생도 예상하지 못했던 행선지이다. 차이나타운 - 레딩 터미널 마켓 - 러브 파크 이 세 굵직한 동선을 거친 후 아무래도 동생은 좀 지친 모양이었다. 만약 시간이 남는다면 한 군데 더 가기로 생각했던 장소는 Rocky Step이었다. 영화 록키 시리즈에서 주인공이 음악에 맞춰 걸어 올라간 장소로 유명하다는 계단이다. 영화 록키 시리즈를 본 적은 없지만 Center City 주변의 랜드마크 중 하나라고 유명한 곳이어서 동생과 내가 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Rocky Step에 가기로 결정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동생이 아마 대충 이 방향일 거라고 이끌어 방향치인 나는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동생을 따라 걸었고, 야심 차게 도착한 곳엔 Amor 동상이 있었다. 살짝 허탈했지만 이것 또한 예상치 못한 발견 중 하나이니 큰 불만은 없었고, 그쯤 되니 둘 다 꽤 지쳐 바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필라델피아 시청

위의 사진들은 Center City의 어디를 돌아다녀도 보이는 거대한 시청의 사진이다. 너무 거대해서 웬만한 거리에서 찍지 않으면 전체를 담을 수 없는 이 건물은 여행 첫 날 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스쳐 지나가서 돌아갈 때 즈음엔 조금 정이 들었다. 가까이서 보는 것도 좋지만, 주변 거리를 돌아다니다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시청의 모습도 계속해서 내가 여행하는 중임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필라델피아 하면 시청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는 남과 같이 다닐 때 보다 혼자 다닐 때 여행의 양이 많은 편이기에 오히려 동생과 함께 했던 첫째 날엔 기록할 내용이 많지 않다. 조금 더 기록하자면 돌아다니다가 파리 바게트를 보았다든가, 북적북적한 Center City 안에서 동생이 유럽 풍의 거리를 보여주겠다고 해서 한 15분은 헤매며 걸어 다녔다든가, 하는 사소한 이벤트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아쉽게도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필라델피아라는 도시의 개요를 보았다, 라는 것이 여행 첫째 날의 의의가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적으면서 조금 더 볼 수 있지 않았나, 하고 아쉬움이 살짝 드는 것을 보면 여행하면서 최대한 많은 것을 봐야 한다는 강박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나 보다. 그래도 나는 서부, 동생은 동부에 살고 있기 때문에 1년에 자주 봐야 2~3번 볼까 말까 하기에 함께 오랜 시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가족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리워하기엔 내가 너무 혼자 떨어져 사는 것에 적응한 상태이지만, 그래도 역시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면 마음이 편해지긴 한다. 원래도 그랬지만, 혼자 떨어져 살며 워낙 내 삶의 방식이 가족, 특히 동생과는 많이 달라져 예전에는 조금만 오래 같이 있어도 자주 충돌하곤 했지만, 점점 만날 때 그 빈도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나도 동생도 많이 자랐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마 별 일이 없다면 매년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만나며 서로의 장소에서 여행을 하게 될 텐데, 옛날의 나라면 모르겠지만 이젠 그것이 부담이 되기보다는 기대가 된다. 


어쩌다 보니 마지막 부분이 여행후기보다는 가족관계에 대한 수필 비슷하게 변했다. 원래 여행을 떠나고 나면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하는 탓에 쉴 새 없이 발을 움직이느라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딱히 고찰할 거리가 없는 편인데 점점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나도 조금씩 여행 스타일이 변하는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 오랜만이기도 했고. 


아무튼 본격적인 여행의 첫날은 이렇게 굵직한 곳들을 훑고 나서 대략 오후 5시쯤 마무리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월엔 오후 5시면 완전히 어두워지는 데다 미국의 밤거리를 차도 없이 안일하게 다니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기에 하루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이렇게 일찍 일정을 끝마쳤다. 새로운 도시에서의 첫 단추가 무탈히 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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