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지인 May 28. 2024

팀원이 갑자기 잠수를 탔다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주어진 일 외에도 해보고 싶고 잘하고 싶은 일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그런 욕망 중 하나가 바로 직장인들의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줄 수 있는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한 기획자 분과 함께 몇 번의 회의 끝에 나의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앱을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일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나 역시도 그분만큼은 아니었지만 주말에 노트북을 들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기획하는 시간들이 참 즐겁게 느껴졌다. 몇 번의 미팅만으로 한 사람을 완전히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분 같았고, 무엇보다 신중한 그의 성향이 불도저 같은 나의 단점을 커버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회사 내에서는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계셨고, 이전 회사의 팀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셨던 터라 우리 사이드 프로젝트에 필요한 개발과 디자인 파트의 팀원들을 본인의 인맥으로 충원해 주실 만큼 나에겐 든든한 천군만마처럼 느껴졌다.


몇 개월 정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 사이드 프로젝트는 느리게 하지만 꾸준히 진행되어 갔고, 가끔 내가 조금 더 빠르게 진척되지 않는 것에 답답함을 느낄 때면 그는 팀원으로서 나에게 힘이 되는 말들을 해주기도 했다. 아무래도 나보다 사회 경험이 더 많은 분이었기에 이 분의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고, 나는 이걸 믿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믿음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그와 연락이 잘 안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톡 답장이 늦게 오는 때가 종종 발생했다. 이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답답함을 느꼈던 나는 오프라인 미팅을 제안했고, 한 카페에서 우리는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최근에 회사 일이 많이 바빠졌다고 했고, 여러모로 정신이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말을 하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모습을 보니 내 입장에서 더 이상 닦달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1시간 남짓한 대화 이후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그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카페에서 분명 그는 나와 그의 지인인 개발자, 디자이너가 함께 모여서 오프라인 미팅을 진행하자고 말했고 본인이 날짜를 잡아보겠다고 이야기를 꺼냈었다. 나는 그의 연락을 며칠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에겐 어떠한 답변도 받을 수 없었다. 혹여나 바쁜 상황인데 닥달하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몇 번을 고심하다가 겨우 한 말이었는데, 이것조차 그에게는 부담으로 느껴졌던 걸까?


"00님, 요즘 바쁘신가요?"

.

.

.

한 달도 아니고 몇 개월간 프로젝트에 대해서 같이 논의하며 이야기를 나눴던 터라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일까? 그는 나만큼 이 프로젝트에 간절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렇다면 왜 나에게 한 마디 말조차 없었던 걸까? 연락에 답변을 하지 않는 것이 내 메시지에 대한 그의 대답인 걸까?"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더 이상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이 고민을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떠한 이유인지는 그가 정확하게 알겠지만, 그럼에도 속이 상하는 감정이 완전히 나아지진 않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영원히 우울하라는 법은 없는지 우연한 기회로 지인분을 통해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 참여 제안을 받게 되었고, 결론적으론 설레는 맘으로 함께 만들어 갈 행보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번 경험은 조금 더 유의미하길 바라며. 


남은 6개월 동안 포트폴리오 한 켠에 자리할 수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꼭 완수해 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