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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ZY Oct 28. 2023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내가 길을 걷다가, 신발을 정리하다가, 비가 오는 어느 날들을 모아다가 이야기를 적어본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았다. 분명 내가 쓴 글은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며 채근했다. 글은 쓸수록 더 잘 쓰고 싶어지는 어려운 분야다. 최근 힘이 들어간 책들을 많이 읽었더니 목덜미가 뻐근해졌다. 신경 쓰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도 머리가 피곤해졌겠지만 결국 책은 항상 나에게 숨을 불어 넣어주었다. 이렇게 오늘도 멋진 책을 만났기 때문이다. 서점의 새 책 향기를 맡으며 담담한 에세이를 읽고 싶어 에세이 영역을 기웃거려서 만난 책이 바로 박완서 작가님의 에세이였다. 1970년부터 2010년까지 박완서 작가님이 생전에 쓰신 660편의 에세이 중에서 추린 글들을 엮은 책이기도 하다. ​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으며 소박해서 웃음이 나오고,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간지럽고, 따뜻해서 눈물이 났다.


제목과 문장들이 내 방 어딘가 깊숙하게 숨겨있는 어린 시절 문구류처럼 감성을 일으켰다.


당선작을 쓰고 나서 습작을 썼으니 순서가 거꾸로 됐지만 그 시기는 당선작을 쓴 시기보다도 훨씬 더 소중한 시기였다. 글 쓰는 어려움에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으면서도 속에선 뭔가 조금씩 조금씩 살이 찌고 있는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


: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ㅡ 박완서


박완서 작가님의 '습작기'라는 표현이 김미경 강사님의 '무식한 축적기'와 일맥상통하는 단어로 느껴졌다.


우리의 미래가 하루씩 다가온다는 링컨의 말처럼 매시간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에 집중하다 보면  재능이 부족할지언정 노력은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해보았다.



박완서 작가님이 언급한 표현 중 '순전히 중년으로 접어든 여자의 일종의 허기증으로부터 하나의 작품을 이룩했다.'라는 말이 있다. 문학이라는 작업에 대한 작가님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의 글이 인생의 대선배로서 우리에게 툭툭 던져주는 맛 좋은 열매 같았다. 무엇보다 생활 속 작은 소재와 짧은 순간의 영감을 놓치지 않고 소중히 기록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기록으로 행복을 쌓아보기 위해서다. 행복해지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며, 그 능력은 우리 모두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말을 믿기에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블로그가 20주년을 맞이하여 '기록이 쌓이면 뭐든 된다.'라고 강조하는 것처럼 나의 기록이 언젠가 힘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ㅡ 박완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빛이 나기에 살만한 곳이 아닐까?

@RO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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