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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Apr 16. 2022

의사 만능주의

<닥터 프리즈너>와 정호영 장관 후보자

쿠팡 플레이에서 남궁민 주연의 <닥터 프리즈너> 정주행을 완료했다. 뛰어난 실력의 외과 의사 남궁민은 재벌 환자와의 마찰로 면허를 정지당하고 병원에서 쫓겨난다. 이 일을 계기로 남궁민은 선인에서 악인으로 변모하고, 복수를 위해 교도소 담당 의사가 된다. 의사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교도소에서 힘을 키우고 재벌과 한 판 붙을 수 있게 되는 걸까? 


남궁민은 '형 집행 정지'라는 제도를 이용한다(실제로 존재하는 제도다). 교도소에 갇힌 사람이 '형의 집행으로 인하여 현저히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는 때'에 형 집행 정지를 신청할 수 있고, 검사가 이를 인정해주면 교도소에서 나올 수 있다. 죽을 정도로 몸이 아파서 자유를 제한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남궁민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수감자에게 의뢰를 받아 형 집행 정지를 이끌어내어 보상을 챙긴다.


남궁민이 형 집행 정지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 의사가 정말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선 가족력을 쭉 훑는다. 치명적인 유전병이 생길 수 있는 빌미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어떤 치명적인 병에 걸린 것처럼 수감자를 꾸며 내기로 마음먹었으면, 그 병에서 나타나는 치명적인 증상을 직접 구현하기 시작한다. 간이나 신장을 나빠지게 하는 약을 먹이고, 음식과 물의 섭취를 엄격하게 관리한다. 그 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떤 검사가 있다면, 그 검사를 하지 못하는 이유를 만들어낸다. 남궁민이 몇 달간 노력하면, 수감자는 죽기 직전의 상태가 되고 감옥에서 빠져나온다(심지어 이 과정에서 실제로 죽는 수감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병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감옥에서 나온 후로는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의학 드라마라기보다는 정치 스릴러 드라마에 가깝기에, '의사가 정말 저렇게 할 수 있나?'라는 의문이 제기되지는 않는다. 형 집행 정지뿐 아니라 의사가 주사 몇 개로 사람 목숨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도 그러려니 하는 느낌이다. 드라마를 쓴 작가뿐 아니라 시청자마저도 의사라면 뭐든 가능하지 않겠냐는 '의사 만능주의'에 의심을 품지 않는 것이다! 도덕성이 전무한 의사라면 교도소에 갇힌 사람을 빼낼 수도 있고, 사람 목숨으로 장난칠 수도 있을까? 


최근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논란을 보며 <닥터 프리즈너>의 남궁민이 떠올랐다. 처음 그가 내정됐을 때는 매우 반가웠다. 그의 출신이 외과 의사이자, 대형병원의 원장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형병원 최전방에서 일해본 경력이 없는 사람이었고, 의료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장관은 현장과의 소통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그의 몇몇 과거 칼럼 논란이 나왔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외과 의사들은 늘 목소리가 크고, 농담을 즐겨하는 경향이 있다. 그 나이에 그 위치면 누가 언행에 대해 비판할 상황도 아니고, 본인이 재밌다고 생각한 농담과 비유를 칼럼에 적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칼럼도 아니고, 10년 전에 쓴 칼럼이니만큼 '한국 사회가 이만큼 발전했구나, 저 아저씨도 이제 정신 좀 차렸겠지'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자녀 논란은 수습이 어려워 보인다. 조국-조민 사건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의사 만능주의의 덫에 빠졌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정호영이라는 사람이 병원 내 지위를 바탕으로 자신의 자녀를 뽑으라는 압력을 가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들이 군 면제를 받을 수 있게 없는 병을 만들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불법은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시도했더라도, 병원의 다른 의사들에 의해 막혔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의혹이 가능하려면, 그가 있던 병원의 모든 의사의 도덕성이 바닥을 기어야 한다.


그는 병원장이기도 했지만,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평범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는 의대에 가지 못한 자녀를 늦게라도 의대에 합류시킬 방법을 잘 알고 있었고,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녀에게 학점 관리를 잘하도록 닦달했을 것이고, 어차피 채워야 할 봉사 활동은 점심이라도 같이 먹을 겸 본인이 있는 병원에서 하기를 권했을 것이다.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는 질병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아들에게 다양한 검사를 시켰을 것이고, 그중 하나에서 실제로 면제받을 수 있는 질병이 진단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본인의 능력을 활용하여, 합법적인 선에서 성실하게 수행했고, 그것이 좋은 결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의사 만능주의의 시선에서 보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자녀를 합격시키기 위해 억지로 특별 전형을 만들었고, 점수를 잘 주도록 면접관을 협박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들의 검사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검사 판독에서 병이 있는 것처럼 꾸미라고 후배 의사를 압박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관여될 수밖에 없는 수십 명의 의사들은 모두 한통속이라 이 사안에 대해 침묵한다고 여길 수도 있다. 


의사 만능주의의 덫, 솔직히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닥터 프리즈너> 속 의사 만능주의에 대해 아무도, 심지어 의사들도 그다지 지적을 하지 않았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미 '의사니까, 병원장이니까 그럴 수 있다, 그랬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여기서 버티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다고 느껴진다. 이제 그만 보내주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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