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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Sep 06. 2024

2024년의 응급실

(이전 글 <2018년의 응급실>과 함께 읽으면 좋다.)


제목과 달리, 우선 2018년의 응급실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


응급실에는 정말 많은 의사와 간호사, 응급구조사가 배치되어 있다. 아마도 병원 내에서 의료진의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일 것이다. 간호사나 응급구조사는 맡은 구역과 업무가 명확한데, 의사들은 그런 거 없이 상황에 따라 맞춰서 한다. 환자 상태에 따라 우선순위가 변하기 때문에, 대략적으로만 정해두고 그때그때 먼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2018년 당시에는 인턴 3명, 전공의 3명, 교수 3명이 응급실의 약 40 병상을 봤다. 인턴들도 각자 맡은 구역이 있긴 했지만, 어차피 인턴 책상은 하나라서 같이 모여 있다가 일이 들어오는 대로 나눠서 처리하곤 했다. 그러다가 소생실에 환자가 왔다고 하면 다 같이 몰려가서 소생술을 했고, 소생술이 너무 길어지면 전공의가 인턴 몇 명은 나가서 다른 구역 일 좀 처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급한 환자가 생기면 그냥 눈에 보이는 인턴에게 아무 일이나 시켰고, 인턴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전공의나 교수들도 본인 담당 구역이 있긴 했지만, 항상 유동적이었다.


의사마다 맡은 구역의 경계는 모호했지만, 하는 업무는 엄격하게 나눠져 있었다. 교수가 브레인 역할이고, 전공의는 눈, 귀, 손 정도의 역할이라면 인턴은 발 역할이었다. 먼저 전공의가 직접 환자를 살폈다. 눈과 귀, 손을 활용하여 진찰을 하고 의심되는 질환을 교수에게 보고 했다. 교수는 전공의가 놓친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다음에 해야 할 것들을 지시했다. 그러면 전공의가 처방을 냈고, 인턴에게 업무가 전달됐다. 인턴은 열심히 발로 뛰며 그 일들을 처리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전공의와 교수가 최종 판단을 내렸다. 중증 환자가 와도 이 체계가 복잡해질 뿐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응급실 병상이 꽉 찼다. 응급실 병상이 꽉 차고 시간이 조금 흐르면 오히려 응급실 인턴은 편해졌다. '배후진료'의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응급실 업무의 대부분은 환자의 초기 평가 및 처치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환자가 많을수록 바빴다.


배후진료란 무엇일까? 응급실에서 환자에 대한 평가와 초기 처치를 다 끝내면, 환자는 퇴원 또는 배후진료 둘 중 하나의 길로 가게 된다.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고 응급실에서 해줄 게 없으면 퇴원이고 다행이지만, 좀 더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면 다른 전문과(OO내과, OO외과 등)에게 의뢰된다. 의뢰받은 다른 과의 의사는 응급실에 와서 환자를 확인하고 필요한 치료를 시행하게 된다. 이렇게 응급실 의사의 판단과 처치를 이어받아 다른 과의 의사가 치료하는 것을 배후진료라고 한다. 배후진료 의뢰까지 마치면 (환자가 여전히 응급실에 누워있어도) 응급실 의사의 역할은 끝난다고 볼 수 있다.


배후진료과마다 사정이 다양했다. 진료과에서 받아서 입원시키기로 했으나, 입원실이 없어서 응급실에서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의 추후 치료방침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내과와 외과, 응급의학과에서 서로 환자를 데려가라고 싸우는 경우도 꽤 있었다. 진료 의뢰를 했는데도 그쪽 의사들이 너무 바빠서 한참 동안 찾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다음날 출근하면 어떻게 했는지 병상이 텅 비어있었다. 여러 의사의 협동으로 그렇게 응급 환자를 치료해 왔다. 얼마 전까지는.


이제부터는 2024년의 응급실 이야기.


응급실은 인턴-전공의-교수가 한 몸처럼 움직이며 돌아가는 곳이다. 개인의 중요도는 물론 응급실 교수 > 전공의 > 인턴 순이겠지만, 인간이 뇌만 가지고 살 수는 없듯이 발 역할을 하는 인턴 하나라도 부족하면 전체에 부하가 걸리게 된다. 배후진료과에도 마찬가지로 인턴-전공의-교수로 이어지는 업무 체계가 있어서 한 명이라도 부족하면 모두가 몇 배는 힘들어진다. 응급실과 배후진료과 둘 중 하나만 무너져도 응급 환자 치료는 어려워진다. 


몇 개월 전 응급실과 배후진료과의 젊은 의사들이 전부 사라졌다. 인턴-전공의-교수로 이어지는 체계에서 하나도 아니고 둘이 빠져서 교수만 병원에 남아있다. 최근에야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사실 체계는 그들이 나가는 그 순간 무너졌다. 손발 역할을 해주던 의사들 없이 교수들이 직접 몸으로 뛰며 일하려면 평소보다 몇 배는 힘들 것이다. 의사는 3분의 1로 줄었지만 업무 효율은 그보다 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늘 꽉 채워서 받던 응급실에 가리고 가려 정말 안 좋은 환자만 받게 된다. 웬만큼 아픈 환자가 아니면 응급실 침대에 눕지도 못한다. 응급실에서 초기 처치를 다 해놔도 배후진료과 의사가 없어서 입원을 못 시킨다. 응급실에 계속 눕혀놓을 수는 없으니 다른 병원을 수소문한다. 다른 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라 환자를 보낼 수 없다. 결국 배후진료가 불가능하면 환자를 받지 않기로 한다. 아픈 사람은 끊임없이 쏟아질 텐데 받을 수 있는 응급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프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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