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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펜똥 Feb 11. 2022

벼 이야기

과시에 대한 생각


4월.

우리는 모두 땅 속에 놓였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땅의 양분을 먹으며 조금씩

자라났습니다.


깜깜한 땅 속에선 우리는

밝은 세상을 보는 날을 꿈 꾸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제 옆에 있던 친구 하나가 땅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우와! 내가 드디어 세상을 보게 되는구나!

얘들아! 내가 제일 먼저 세상으로 나오게 됐어!"


그의 말에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를 부러워했죠.

 

그의 말에 힘입어 하나둘씩 힘을 내어

땅을 가르고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저 또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죠.


밝은 세상을 보며 우리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모두가 땅 밖으로 나와 회포를 풀 무렵,

가장 먼저 땅을 가르고 나왔던 그가

얘기했습니다.


" 내가 이 중에서 제일 빨리

세상으로 나왔네?"


몇몇은 그의 말에 맞장구쳤지만,

그의 말에 코웃음 치는 무리도 있었습니다.


" 막상  세상으로 올라와보니,

땅을 가르는 게 그렇게 어렵지도 않던데,

빨리 나온 게 뭐가 대수야?"


다소 친구들이 티격 대긴 했지만, 그래도

저는 세상으로 나와 친구들과 얘기하는 시간이

퍽 즐거웠습니다.


시간이 지나, 역시나 가장 먼저 세상으로 나왔던 그는 무럭무럭 자라서, 우리 중에 제일 키가 컸습니다.


그는 이에 자부심을 느끼며 넌지시 말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마시는 공기는 맛이 다르구나"


그의 말은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던 느티나무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느티나무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 하하, 웃기는구나. 그 정도 가지고 높다고 하다니."


느티나무의 말에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죠.


저는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느티나무를 흘긋 쳐다보았습니다.


과연, 느티나무는 크고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었죠.

괜스레 부러운 맘이 들었지만,

저는 제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느덧, 여름에 접어들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숙인 채,

 뿌리를 힘차게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그가 우리 중에 가장 먼저

이삭을 틔웠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는 자랑스러워하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의 모습과 그가 이삭을 벌써 틔웠다는 소문은

빠르게 번져나갔죠.


그리고 그 소문은 잡초에게까지 퍼지게 됩니다.


" 이번에 이삭을 빨리 틔웠다는 벼 얘기 들었어?"

" 응, 걔가 뿌리내린 땅 쪽이 양분이 많나 봐."

" 그럼 그쪽으로 뿌리를 내리자."


잡초들은 뿌리를 그를 향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삭을 틔웠다는 소식은 참새들에게도 전해집니다.

그가 워낙 고개를 들고 있는 터라, 모를 수가 없었거든요.


참새들은 그를 향해 날아가 쪼기 시작했습니다.


참새들과 잡초의 연이은 공격에 지친 그는 점차

메말라가게 되었죠.

.

.


어느덧 시간이 또 흘러 하늘엔 고추잠자리들이

날아다녔습니다.


논에는 이삭이 익기를 기다리며

희망에 가득 찬 벼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 어서 이삭이 빨리 익었으면 좋겠다."


" 그 얘기 들었어?

가장 먼저 싹을 틔웠던 걔, 결국엔

잡초 때문에 양분도 못 먹고,

참새한테 다 쪼이는 바람에

그 많던 이삭이 다 사라졌대."


"근데, 쟤 누구지?

고개 숙이고 있는 황금빛 친구!

정말 대단하다...! 저렇게 잘 익은 이삭은 처음 봐!"


다른 벼들의 시선의 끝엔

고개를 숙인 채 황금빛으로 빛나는

벼가 있었습니다.


네, 그 벼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뿌리를 내리던

바로 그 '벼'였죠.





자랑하고 뽐내고 싶은 마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런 맘이

싹트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자랑하는 것을 나쁜 것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저는 자랑에는 '대가'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자랑은  나도 모르는 '적'을 만들 수도 있어요.


자신이 가장 먼저 싹을 틔웠단 말에 코웃음 치던

다른 벼들, 높은 곳의 공기는 다르다는 말에

그 정도는 높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 느티나무,

그리고 이삭이 익어 고개를 빳빳이 들자

공격하던 참새와 잡초.


이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나의 자랑에 시기 질투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에겐 자랑거리지만 그것이 별게 아니어서

우스워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또, 누군가에겐 나의 자랑거리가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자랑으로 인해 상대방이

자기 자신이 작아 보인다고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의도치 않은 자랑이었다 한들,

은근슬쩍 손가락질하거나 공격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며 시간을 보내지 마세요.


그들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것 만큼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새싹들이 꿈꿔왔던 것만큼 밝지만은 않더군요.

세상에는 나를 둘러싼 적과 위험요소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어쩌면, 나의 자랑거리에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은

몇 없을지도 모르죠.


나를 공격하는 이들, 세상으로 인해 힘들다 해도,

세상 그리고 타인의 마음은 제 마음대로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생각을 한번 바꿔보세요.

나에게 적이 많은 게 싫다면, 그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적이 생기게 할 만한 행동을 했는지를요.


혹시 모르나요.

여러분이 사소한 자랑에도 적이 생길 수 있음을 느끼며

행동하는 순간, 나의 세상이 바뀔 수 있을지.


저는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보세요.

황금빛을 내었던 벼처럼,

당신이 굳이 자랑하지 않더라도

당신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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