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제로웨이스트를 도와준 소소한 아이템들
제로웨이스트는 다이어트처럼 시작할 수 없다. '오늘까지만 먹고, 내일부터'가 안된다. 특히, 주방은 더 그렇다. 보통 주방용품은 대량으로 구매하기 때문이다. 주방 세제나, 키친 타월, 일회용 장갑, 비닐봉지, 지퍼백... 모두 한번 구매하면 몇 개월은 거뜬히 사용할 수 있으니까. 내일부터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어도, 그럼 쌓여있는 이 많은 주방용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제로웨이스트(라고 쓰지만 사실은 0.5웨이스트..)를 조금씩 실천한 지 반년이 넘은 지금까지 나는 아직 주방세제를 사용한다. 남들처럼 상큼하게 설거지바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작년 초에 사둔 대용량 주방세제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멀쩡한 주방세제를 버릴 순 없으니 일단 모두 쓴 다음에 설거지바로 갈아탈 생각이다.
플라스틱 용기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이 가져다준 반찬용기가 하나 둘 모이다 보니 집에 플라스틱 반찬통이 꽤 됐다. 싹 다 버리고 스테인리스나 유리 용기로 대체할까, 도 싶었지만 더 나은 사용처를 찾기로 했다. 뜨거운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을 담지 않고 전자레인지 사용이 필요 없는 손질한 야채를 담아 냉동실에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예전에 사둔 일회용 장갑, 지퍼팩, 비닐백 등도 여전히 주방에 그대로 있다. 대신 사용빈도를 확 줄였다. 이것들을 어떻게 대체했는지는 아래 글에서 계속 풀어가겠다.
*키친타월, 스카치, 세제 등 포장조차 뜯지 않은 새 상품들은 지인이나 당근 마켓을 통해 무료 나눔 하기도 했다. 나눔 하기 애매하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용품들만 끝까지 사용할 계획이다.
천연 수세미와 브러쉬
주방용품 중 가장 쉽고 빠르게 대체할 수 있는 용품으로 추천한다. 사용하던 아크릴 수세미가 헤질 때쯤 천연수세미와 천연솔(설거지용 브러쉬)을 샀다. 가장 처음에는 '더 피커(the picker)' 천연 설거지 수세미를 골랐다. 아크릴 수세미와 비교해 거품이 덜 날 뿐, 세정력은 큰 차이 없고 오히려 뽀득뽀득한 느낌이 더 잘 느껴져서 상쾌하다. 하지만 냄비나 프라이팬 닦기에는 약하다.
더 피커 설거지 수세미를 몇 개월 쓰다가, 국산 천연 통수세미로 교체했다. 바게트처럼 기다랗게 생긴 통수세미를 숭덩숭덩 내 손에 맞는 크기로 잘라 쓸 수 있다. 비용이 더 저렴하기도 하고, 샤워할 때도 샤워타월로 쓰고 있어서 통수세미 하나로 주방과 욕실 +a까지 해결 가능하다. 어차피 같은 천연 수세미라 모양만 다를 뿐 사용감은 똑같다.
브러쉬는 냄비판 프라이팬 닦을 때 사용한다. 천연 야자섬유로 만들었다고 한다. 스테인리스 냄비와 프라이팬을 사용하고 있어서, 설거지할 때 브러쉬는 거의 필수템이다. 브러쉬 역시 더 피커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더피커 광고 아님..)
브리타와 소다스트림
집에서 나오는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줄여준 제품이다. 이전에는 330ml 물과 500ml 탄산수를 시켜먹었었다. 나는 물, 남자친구는 탄산수. 둘이 하루에 플라스틱 물병을 하나씩 꼬박꼬박 배출했었다. 집에서 나오는 가장 많은 플라스틱이 물과 탄산수 병이라는 걸 깨닫고 바로 대체했다.
브리타는 수돗물을 통에 담으면 천연소재로 만들어진 정수 필터를 거치는 방식이다. 필터 가격이 좀 비싸긴 한데, 필터 하나 당 보통 한 달 정도 사용하는 듯하다. 물병보다 확실히 귀찮긴 하다. 물 마실 때마다 컵에 물을 따라 마셔야 하니까. 그래도 1년 정도 사용하니 어느 정도 적응되어서 큰 불만 없이 사용한다. 필터 안에 담긴 소재는 천연 소잰데 필터 자체가 플라스틱이라 미국이나 영국, 독일의 브리타는 자체적으로 필터를 회수해 재활용한다고 한다. 한국 브리타는 따로 재활용 프로그램이 없어서, 몇몇 제로웨이스트 가게와 소비자들이 전국에서 회수한 필터와 함께 국내 필터 수거 및 재활용 프로그램 시행을 요청하는 '브리타 어택'을 진행하고 있다.
소다스트림은 전기코드도 필요 없이 탄산수를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다. 탄산을 만들어주는 '실린더'를 기계 뒤에 꽂고 버튼을 몇 번 눌러주면 정수가 탄산수가 된다. 브리타 필터처럼 이것도 실린더 가격이 좀 비싸다. 그래도 실린더 하나에 500ml 기준 120병 정도의 탄산수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실리밀리와 유리 컨테이너
실리밀리는 지퍼백을 대체한다. 전자레인지 사용도 가능하고 끓는 물에 넣어도 괜찮다. 냉장 냉동 보관 모두 가능하다. 먹다 남은 야채나, 국이나 찌개를 넣었다가 어느 방식으로든 덥혀먹기 좋다. 단점은 부피가 크고, 세척이 어렵다는 것. 완전 밀봉되진 않아서 국이나 찌개를 보관할 때는 반드시 세워둬야 한다. 제품 자체가 혼자서도 잘 서있게 나와서 세워두는 건 어렵지 않다.
유리 컨테이너는 일회용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반찬통을 대체한다. 해동이 필요한 제품을 보통 비닐봉지에 많이 넣어두었는데, 이제 비닐봉지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밥이나 요리를 넣어 냉동보관했다가 바로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다.
만능 실리콘 덮개
어느 그릇에나 정말 만능으로 쏙쏙 덮인다. 랩, 포일, 비닐봉지를 대체할 수 있다. 남은 반찬이나 과일, 쓰다 남은 반쪽 짜리 레몬 등을 보관할 때 좋다. 본가에 갔다가 괜찮아 보여서 가져왔는데 굉장히 유용하게 쓰고 있는 아이템이다.
생분해 싱크대 거름망
거름망을 안 쓰는 게 가장 좋겠지만, 나의 수고를 덜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다.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바로 넣어서 버릴 수 있어서 간편하다.
에어프라이어 실리콘 용기
요리 알못인 나에게 에어프라이어는 거의 죽은 빵도 되살린다는 '발뮤다'급이다. 야채든 고기든 구황작물이든 뭐든지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면 평타는 치기 때문에 애용한다. 에어프라이어가 세척이 쉽지 않아서 항상 종이 포일을 깔고 사용했었는데, 매번 쓰레기가 나오는 게 마음에 걸려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실리콘으로 대체했다.
행주
일회용 키친타월에서, 빨아 쓰는 행주(스카치)로, 그리고 완전한 행주로 진화해왔다. 사람들은 소창 행주를 많이 쓰던데 예전에 사둔 면 행주가 몇 장 있어서 있는 행주를 잘 쓰기로 했다. 아직 100% 행주만은 사용하지 못하고 스카치와 함께 쓰고 있다.
사실 내 주방의 제로웨이스트는 걸음마 수준이다. 아직 포기 못한 것들이 너무 많고, 포기할 수 없다면 노오력이라도 하자는 마음이다. 그래서 이미 사용된 것들을 용도를 달리해 재사용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보기도 좋고 사용하기도 좋은 유리병
재사용이 가능한 유리병에 담긴 상품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 머스터드 같은 경우도, 플라스틱 통에 담긴 더 저렴한 제품이 있었지만 나중에 재사용할 것을 생각해 유리병에 담긴 제품을 골랐다.
수명이 다한 스카치는 걸레로 마무리하고 버리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면 행주와 라텍스 고무장갑을 삶을 때, 수명이 다한 스카치도 함께 삶는다. 깨끗이 건조한 다음 바닥 청소할 때 사용한다.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기에 좋다.
지퍼백 재사용하기
냉동 블루베리나, 닭가슴살, 베이킹 소다 등을 주문하면 담겨오는 커다란 지퍼백이 의외로 튼튼하다. 버리기 아까워서 이런 것들은 깨끗하게 씻어서 재사용한다. 다른 냉동식품들을 담아두기도 하고, 일회용 비닐봉지를 대체할 용도로 휘뚜루마뚜루 쓰기 좋다.
플라스틱 수납 바구니 대신 종이봉투/종이박스 사용하기
제로웨이스트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물건을 '정리'하게 된다. 두서없이 나열된 물건들을 보면 수납 바구니를 사서 싹 다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수납 바구니 또한 플라스틱인 것을... 그렇다고 친환경 라탄 바구니를 사자니 제로웨이스트 시작하다가 거덜 날 것 같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종이봉투를 활용해 물건을 간편하게 수납하는 방법을 만났다. 두툼한 종이봉투를 안쪽으로 접으면 가벼운 물건들을 넣어두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