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카로운 시계침들이 내 시간들을 아프게”
시계는 둥근데 날카로운 초침이
내 시간들을 아프게,
모두가 바쁘게,
뭐를 하든 경쟁하라 배웠으니
우린 우리의 시차로 도망칠 수밖에
-우원재, <시차>
행복을 알아가고 있는 어느 28살의 글.
힙합 가사가 때론 와닿을 때가 많다.
창모의 “메테오”, “빌었어”
우원재의 “시차”.
송민호의 “겁”
솔직히 힙합에 관심은 없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간혹 내 마음에 남는 가사들이 더러 있다.
그런 점에서 아마 대중도 열광하는 것이겠지.
우원재의 <시차> 속 가사가 종종 머리 속을 맴돈다.
언제?
시계침들이
내 시간을, 나를 아프게 할때.
정확히는 내가 원치 않지만 해야하는 것들이
나를 방해할 때. 내가 온전히 존재하는 시간을.
삶에 감사하려 노력은 한다만,
아직 완전히 원하는 삶을 얻지 못하긴 했나보다.
외부의 것들로부터 ‘방해받는다‘고 느끼는 순간이 적지 않다.
‘난 왜이리 유약할까.
난 왜 내면이 강하지 못할까.
난 왜 아직도 휘둘릴까. 여러 생각들 사이에.‘
많은 가능성을 모두 이루고 싶은 욕심이 큰 사람이라
부정적으로 마냥 볼 일은 아니고
스스로가 귀엽고 대견할 때도 있지만(얼마나 욕심이 크길래)
그래도 별 고민없이 툭툭 잘 치고나가는 누군가를 보면
- 아마 그것도 그들의 능력이고 성품이겠지만-
사람은 못가진게 아쉽다고
그런게 또 엄청 부러울 때도 있다.
그런 성격이면 확실히 공부는 잘 못할거고,,
싶다가도
드물게 유니콘처럼 보이는 공부도 잘하고
툭툭 치고 나가는 것도 잘 하는 이들을 보면
- 적당히 털건 털어내고 잊을 건 잊으며 잘 하는 이들-
위를 보고 비교하고, 나도 둘 다 잘 하도록 더 나아져야지.
이런 생각도 많이 든다.
온전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
사람이 하나 씩 가질수록 더 위를 본다고
안정감이 조금 씩 생길 수록
더 행복해지고 싶다, 완전 무결한 행복을 얻고 싶다는
욕망이 아주 강해지고 있다.
스트레스, 불안, 걱정
이런 건 그만하고 싶다고.
물론 긍정의 기운이 세게 나를 감싸면
저런건 느껴지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긴 하다.
요즘 진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그런 삶을 찾고, 살고 싶다고.
그리고 그곳을 향해 가려고 시도하고 노력한다.
발전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나아가고 있다고.
언제쯤 도달하나 싶지만
서른 전엔 도달하지 않을까,
아니 당장 내년이라도.
확실히 머리 속에 아는 건 늘었다.
지식은 많아졌다.
그래서 내가 점점 좋아진다.
유식한 나자신. 어느 분야든 모르는 게 없는 나 자신.
다만 아직 현실에서 구현이 속시원히 되지는 않았다.
‘임계점’을 뚫는 것이 과업이다.
나보다 학업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오랜기간
무시해왔는데
내가 성과를 현실로 내려는 시점에서
사뭇 겸손해지고
그들의 해낸 것들이 존경스러운 순간이 있다.
임계점을 뚫은 사람들,
생각을 현실로 바꿔낸 사람들.
공부를 잘 한다는 건 ‘생각’은 잘 하는건데
원하는 삶을 이뤄내고 살아내는 능력은
또 다른 차원의, 갈래의 것이라 생각하고
‘내가 이게 진짜 부족하고 제대로 해본 적이 없구나
집중하자. 한번만 뚫어보자. 한 번만 이뤄보자
그럼 감 잡힌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집중한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
나에 대한 ‘불확신’에서 오는,
원하는 대로 행동했는데
그게 후회할만한 결정이라면.
근데 이런 걱정으로 평생을 보내고
그렇게 대부분 최선(진심으로 원하는 것)보다는
차선을 택하며
더 나은 삶, 나중의 행복을 위하여
지금의 쾌락은 많이 포기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런데도 아직도 뭔가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아서
아, 그럼 이제는 방법을 바꿔보자!
빙 둘러가서 얻는 행복이 아닌
좀 더 직접적으로 적극적으로 얻는 행복.
그리고 성과.
더 빨리, 많이, 크게 얻을 수 있다면.
나도 적극적으로 얻어보고 이루자! 라는 생각.
그래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파라다이스’를 찾아보려고
그렇게 하고 있는 거 같다.
음, 근데 진짜
유능하고 유식하고 노력해서 많은 경이로운 것들을
이뤄낸 이들이,
가장 행복해 보이긴 한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깨달음을 얻었달까.
불행이든 불안이든 우울이든
다 ‘무식해서‘ 있는거다.
공부하고 아는 거 많고 세상 이치가 보이면
그때부터 행복을 누릴 자격을 얻는 것 같다.
나도 전자에서 후자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건 진짜 맞는 것 같다.
우울은 ‘무식함’이다.
내도 내가 유식한 줄 알았는데,
‘진짜’ 세상을 공부할 수록 저 명제가 맞는 거 같았다.
양면 : 그들은 행복할까? 정말?
뭐든 양면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한 그들은
사회적 안전망을 크게 신경쓰지 않은 그들은
내 눈에 좋은 사례가 많이 보이지만
아닌 이들도 있을까?
뭐가 맞는 걸까.
그들은 ‘정말 행복하다고 외치며 월 수억을 벌거나‘
‘오토바이타고 배달을 하거나’
정말 둘 중 하나일까.
난 후자가 두려워서 그럭저럭 괜찮은 선택을 한 것 같다.
화끈하지 못했다.
강한 화끈함은 온 몸에 불을 질러 보는 이들이 멋있게 쳐다볼수도 있지만
나처럼 약간은 소심한 면모로 인해
순간 불을 냈다가 ‘윽..’ 하며 ‘잠깐만 끄자’ 하며
꺼트렸다가는
괜히 남들에게 알몸만 드러내는 수치와
온 몸에 울긋불긋 화상만 입는 참사가 날 수도 있기에
몸에 계속해서 불을 낼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켜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감당이 되는지는 생각하고 질러야지.
하
난 왜 이리 소심할까.
왜 머리가 더 명민하지 못할까.
주관을 갖고 판단하지 못할까.
조금은 속상한 마음들에 주저리 글을 써본다.
근데 그건 있다.
난 항상 속상해하며 ‘그래도 더 해보자’며 한발자국 씩
더 노력하고
결국 정상에는 나 혼자 가는 경우가 무진장 많았다.
그렇다. 난 포기 하지 않는다.
그렇게 계속 나아가며
또 다시 원하는 것을 이뤄보자고,
돌이켜보았을 때 경이로운 길을 걸어보자고
다시 결심하며 이번 글을 마무리 지어볼까 한다.